데얀 대구대구FC

데얀, K리그 ‘테스트생’에서 최고가 되기까지

[골닷컴] 박병규 기자 = K리그에 역사를 새긴 외국인 선수의 시작은 테스트생이었다. AFC는 13년간 한국을 사랑하고 있는 데얀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시각으로 26일, AFC는 K리그의 전설 데얀을 조명했다. 데얀은 K리그 통산 357경기 189골 45도움으로 외국인 선수 최다 출전 및 최다 득점을 기록 중이다. 뿐만 아니라 2011년부터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김도훈, 샤샤와 함께 통산 6번의 최다 해트트릭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주요 뉴스  | "​[영상] 카타르 조직위원장 "월드컵 준비 문제 없다""

데얀의 어린 시절 기억은 ‘전쟁’이다. 1990년대 초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그의 유년 시절은 힘들었다. 데얀은 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도시 모스타르에서 태어났지만 전쟁으로 피난을 다녔다. 그는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 현재는 다시 각각 분리되었다)로 이동하였고 이후 시넬리치 베오그라드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하였다.

기사는 아래에 이어집니다

데얀은 해마다 새로운 팀을 옮겨 다니며 기회를 찾아야 했고 베자니아 구단에서 만난 은사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로 6개월 임대를 떠났다. 이는 데얀의 첫 번째 아시아 국가이자 첫 해외 생활이었다. 추운 세르비아와 따뜻한 사우디의 기후 차이나 음식의 차이가 있었지만 데얀은 11게임에서 10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세르비아에 복귀하였고 2007년 1월 한국의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연락이 왔다. 

데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행을 묻는 에이전트에게 데얀은 "당신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를 데려가라"고 했다. 이유인 즉, 전 소속팀 구단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구단이 재정적으로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데얀이 향한 곳은 인천의 전지 훈련지 괌이었고 그곳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데얀은 뛰어난 활약으로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를 회상한 데얀은 "솔직히 나는 그 테스트에서 너무 잘했다"며 웃었다. 

인천은 데얀이 한국에 적응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이었다. 이미 세르비아 출신 라돈치치, 드라간 등이 있었고 음식 및 문화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데얀은 "처음에는 한국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다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음식보다 더 힘든 것이 있었다. 바로 처음 겪어보는 축구 스타일이었다. 그는 "정말 힘들었다. 훨씬 빠른 속도였고 압박이 강했다. 나는 플레이 스타일을 많이 바꿔야 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데얀은 첫 시즌에 19골을 득점하며 주목을 받았고 FC서울로 이적했다. 비록 서울에는 동유럽 출신 동료가 없었지만 세르비아에서 뛰었던 아디와 김치우가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데얀은 서울 이적 후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얼마나 큰 클럽인지 깨달았다.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고 이전 팀과 많이 달랐다"고 했다 

서울에서 지내온 7년간의 시간은 데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는 "팬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였고 팬들이 만든 노래도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했다"고 했다. 이어 "내가 서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두 잘 알고 있다"며 다시 강조했다. 

데얀 베이징

2014년 그는 중국으로 떠났고 장쑤 쑤닝과 베이징 궈안에서 활약하다 2016년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데얀은 장쑤에서 감독과 마찰이 있어 베이징으로 이적하였고 중국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데얀은 베이징에서 18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지만 구단이 더 명성 높은 외국인선수 영입을 희망해서 한국 복귀를 결정했다.

2016년 서울로 돌아온 데얀은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편견과 맞서야 했다. 그는 “주변에서 ‘이제 35살인데 여전히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드리아노와 함께 맹활약했다. 나는 13골을 넣었고 내 결정이 맞았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해 서울은 K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서울과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을 떠올리며 “그때는 불행했다. 나는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고 19골도 넣었지만 재계약 소식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경력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사실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진 않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이룬 것과 기록 갱신을 위해 계속 선수로 뛰고 싶었다. 그래서 이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데얀 서울 수원한국프로축구연맹

그는 이듬해 수원으로 이적하였고 친정팀 서울은 강등 위기까지 맞았다. 친정팀을 지켜본 데얀의 마음도 착잡했다. 그는 "내가 팀에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건데…"라고 했다. 그러나 수원에서의 생활도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데얀은 "수원이 어린 선수를 키우기 원했고 마지막 몇 달은 내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에이전트에게 K리그에서 명예 회복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데얀은 대구로 이적했다. 

대구를 선택한 이유에 “대구의 조광래 사장과 좋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팀의 훌륭한 외국인 선수 및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단 1년 만이라도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아마 대구가 마지막 팀이 될 수 있다. 우선 최선을 다해 올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코로나19가 빠르게 지나가 시즌이 시작되면 멋지게 증명하고 싶다"며 다짐을 밝혔다. 


주요 뉴스  | "​[영상] 언변의 마술사 무리뉴의 첫 기자회견"

그는 은퇴 후 향후 목표도 밝혔다. 데얀은 “서울에 있을 때는 코치보다 디렉터나 에이전트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로지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기에 돕고 싶다”고 했다. 이어 “가족과 함께 있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이 내가 언제 오는지 자주 물어본다. 아내는 사업을 하고 있고 나는 몬테네그로에 호텔을 가지고 있다. 고국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데얀 대구대구FC

그러나 데얀은 한국행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내가 선택한 일의 95%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아시아에 온 것은 최선의 결정이었다. 나는 이제 아시아의 한 사람이며 사람들이 나를 '데얀민국', '한국인 데얀'이라고 부른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대구FC 제공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