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뉘른베르크] 정재은 기자=
"제가 좀 까불거려요, 하하."
특정 이미지를 타고난 이들이 있다. 홀슈타인 킬의 서영재(24)도 그렇다. 그는 타고난 '남동생' 이미지다. "재성이 형이 너무 좋다"라고 눈웃음을 마구 발사하며 상대를 무장해제 시킨다. 알고 보면 여동생이 있는 반전 있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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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 시즌 킬로 이적했다. 함부르크와 뒤스부르크를 거쳐 2019-20 시즌 킬에 합류했다. 동료 이재성(27)이 자리를 잘 잡은 팀이다. 이전에 인연이 없던 둘은 킬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끈끈하게 뭉쳤다. 지금은 장난도 스스럼없이 칠 정도로 가까운 형, 동생 사이다.

2019-20 2.분데스리가 17라운드 뉘른베르크전이 끝난 후 서영재를 만났다. 방금 킬은 15일 오후(현지 시각) 킬은 후반 막판에 극적 동점골을 넣으며 원정에서 승점 1점을 챙겼다. 이재성은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서영재는 이날도 벤치를 지켰다.
그래도 밝은 표정이었다. '극장 경기'였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벤치에서 보는데 다들 너무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잘 따라갔죠. 골이 들어갔을 때 너무 좋았어요"라며 서영재는 웃었다.
사실 그는 킬에서 유명인사다. 유쾌하고 발랄한 분위기가 팀을 '하이텐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킬 전문지 <킬러 나흐리히텐>의 안드레아스 볼프 기자는 "세오(Seo)는 진짜 웃긴다. 농담을 잘 친다. 저번에 '리(Lee)' 인터뷰할 때 세오가 통역을 했는데 얼마나 웃겼는지. 그는 타고난 입담꾼이다"라고 웃었다. "그래서 늘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라며 서영재를 칭찬했다.
서영재도 부정하지 않는다. "제가 워낙 까불거려서…"라며 웃었다. "제가 많이 까부는 편이고, 형이 잘 받아줘요. 그래서 더 편안해요."
볼프 기자의 말대로 서영재는 이재성의 통역까지 도맡는다. 감독, 코치, 취재진 모두 이재성에게 할 말이 생기면 "세오!"부터 부른다. "제 독일어도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이해도 잘 하는 편이에요. 킬에서 뭔가 취재하고 싶으면 재성이 형을 안 부르고 저부터 불러요. 운동 끝나고 남아줄 수 있냐고요."

도움이 되는 건 독일어뿐만 아니다. 심리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재성은 시즌 초반 <골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영재네 가족이 킬에 와계셔서 같이 밥을 먹는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시즌 초반 한 달 반 정도 서영재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킬에 머물렀다. 현재는 이재성의 어머니와 이모가 킬에 거주하며 '두 아들'의 식단을 책임진다.
서영재가 설명했다. "전에는 형이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지금은 제가 형네 집에 가서 밥을 먹어요. 다행이에요. 굉장히 가족 같고 편해요. 시즌 아주 초반에는 둘 다 혼자여서 매일 뭔가를 사 먹었어요. 운동 끝나면 뭘 먹을지 매일 고민했어요. 지금은 두 어머니가 번갈아 해주셔서 너무 좋아요."
이재성이 심적으로 편해지니 경기력이 덩달아 상승했다. 이재성의 형 이재혁 씨는 "재성이가 올 시즌 더 잘할 수 있는 데는 영재의 도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볼프 기자 역시 "'리'가 '세오'가 온 뒤 더 편해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서영재도 인정했다. "제가 재성이 형의 경기력 20~30%를 책임졌다고 생각해요"라며 크게 웃었다.

그런 이재성은 존재만으로도 서영재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서영재는 이재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감사하다. "하루하루 행복해요. 하루하루 설레요. 매일 얘기하고, 매일 아침 보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형, 오늘도 설레'이러고.(웃음) 국가대표 형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형이 제 옆에 있으니까 너무 설레요."
"정말 매일 설레요. 매일 버스에 같이 있고, 호텔에 같이 있으면 제가 맨날 팔짱끼고 다녀요. 놓칠 수 없어요."
짓궂은 장난도 빼놓지 않는다. 그에게 '이재성의 객관적인 독일어 실력'을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Katastrophe(재앙)!"라고 대답했다. "아니, 진짜예요. 시즌 초반에는 공부를 좀 하더라고요. 같이 호텔에 있으면 팀 단체 '톡방'에 있는 독일어 다 적어서 공부하고. 그런데 지금은… 자빠져서(?) 자던데…"
서영재의 증언에 따르면 이재성이 자신있게 할 줄 아는 독일어 단어(?)는 이렇다. "Moin(좋은 아침), Ja(응), Kalt(춥다), Muede(피곤하다) 정도예요. 그거 말고는 못해요. 아니다, 하나 더. '세오!' 맨날 '세오한테 물어봐'라고 하니까요.(웃음)" (*물론 이재성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
]인터뷰 내내 서영재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재성이 형"을 얘기할 때 특히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유쾌한 그에게도 물론 고민은 있다. 경기 출전이다.
아직 서영재는 마음껏 뛰지 못하는 중이다. 올 시즌 리그에서 딱 3경기를 소화했다. 두 경기서 풀타임을, 한 경기서 39분을 소화했다. 서영재는 "그래도 구단이 신뢰를 보이고 있어요"라며 묵묵하게 기다리고 있다.
"기회 잡기가 쉽지 않아요. 왼쪽 수비(같은 포지션) 선수가 경기력이 늘 좋은 건 아니었어요. 감독님과 대화도 많이 나눴어요. 그런데 경험이 많은 선수가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저 훈련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도 팀에서 저를 좋아해주는 건 확실히 느껴요. 신뢰가 있어요. 하지만 신뢰만 있지 경기를 못 뛰니까…(웃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최근 서영재는 직접 이적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라운드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팀과 이야기를 했어요. 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요. 그랬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팀에 제가 필요하다고요. 저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줘서 여기에 있기는 한데 못 뛰니까…" 그가 다시 한번 말을 흐렸다.
후반기에 기회를 더 받을 수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도 없었다. 서영재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그래도 그가 긍정적인 마인드로 기회를 기다릴 수 있는 건 '형' 이재성의 존재 덕분이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킬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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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서영재는 "팀에서 제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해줬어요"라며 웃었다. 그 신뢰를 계속 마음에 새기며 운동에 집중한다. 스물넷 청년은 "한국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형"과 킬에서 함께 승리를 만끽하는 꿈을 꾼다. 그때가 되면 이재성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영재 경기력의 30%는 내가 책임졌다'라고.
사진=정재은, 이재성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