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S 진출 2년차 황인범, 새 시즌 준비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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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 한일전 결승골로 전환점 맞은 황인범
▲여전히 유효한 유럽 진출설, 선수 본인의 생각은?
▲"팀 경기의 템포를 만들어주는 선수로 성장하겠다"

[골닷컴,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호야] 한만성 기자 = 작년 한 해 동안 희로애락을 경험한 황인범(23)이 소속팀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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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유럽 진출 가능성이 제기된 황인범은 작년 이맘때쯤 북미프로축구(MLS)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까지, 심지어는 이적이 이뤄진 후에도 줄곧 유럽 구단과 연결됐다. 무려 2년간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해외 무대에 도전한 그는 작년 하반기부터 체력 저하 탓에 대표팀에서는 경기력 논란이 제기됐고, 소속팀에서는 팀 성적이 부진하며 적지않은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국내 언론을 통해 황인범의 독일 진출설이 제기됐고, 취재 결과 덴마크와 스페인에서도 물밑 접촉을 시도해 그에게 데 관심을 나타낸 구단도 있었다. 실제로 올 시즌 현재 덴마크 리그 선두를 달리며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유력한 미트윌란은 구단 기술이사가 1년이 넘도록 오매불망 황인범 영입을 시도해왔다. 스페인에서는 황인범이 MLS에서 펼친 활약상을 영상으로 확인한 몇몇 에이전트가 라 리가 진출을 주선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겨울 이적시장의 특성상 황인범은 우선 밴쿠버에 잔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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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
 

# 유럽 진출? "주어진 자리에서 즐긴다면 기회는 온다"

'골닷컴 코리아'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진행된 소속팀 밴쿠버의 프리시즌 전지훈련에 합류한 황인범을 만나 2020 MLS 시즌을 준비 중인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작년에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었는데, 그게 외부에서 온 게 아니라 저 스스로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거 같아요. 제 경기, 제 퍼포먼스, 제 팀에 대해 더 집중했어야 됐는데 늘 100% 그렇게 하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다른 생각들, 그러니까 유럽 진출에 대한 꿈, 이런 것보다는 지금 당장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하니까 이제는 팀 훈련도 너무 재밌게 잘 즐기고 있고요."

사실 유럽 진출에 대한 꿈은 황인범이 MLS 진출 전후로 숨기지 않은 목표 중 하나다. 밴쿠버 구단도 그를 영입하며 1~2년 후 유럽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황인범이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던 지난겨울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빨리 유럽에 가고싶다"고 말한 내용이 번역돼서 북미 언론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현지에서는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밴쿠버 팬들도 작년까지는 "유럽 빅리그로 갈 재목이 우리 팀에 왔다"며 황인범의 목표 의식을 높게 샀지만, 그가 '빨리' 유럽 진출을 하고 싶다고 밝힌 인터뷰 내용이 와전되며 오해의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황인범

# AS 로마 출신 사장, 샬케 출신 단장, 포르투갈 출신 감독이 이끄는 밴쿠버

밴쿠버 사령탑은 첼시, 포르투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포르투갈 출신 마크 도스 산토스 감독이다. 또한, 올겨울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 마인츠와 샬케에서 각각 팀 매니저와 단장직을 역임한 악셀 슈스터가 밴쿠버 기술이사로 부임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 AS 로마 최고경영자(CEO) 출신 마크 팬스가 밴쿠버 사장으로 임명됐다. 다행히 밴쿠버 구단 측은 국내 언론과 황인범의 인터뷰 내용이 현지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가운데서도 그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황인범은 이 문제와 관련해 도스 산토스 감독, 슈스터 단장과 면담을 가졌다고 말했다.

"전지훈련 소집 첫날 감독님, 단장님이 저를 부르셨어요. 감독님도, 구단도 제 의도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걸 정확하게 잘 알고 계셨어요. 제가 밴쿠버에 처음 올 때부터 구단도 제 의지를 알고 있었고, 유럽 진출을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저한테 전달했던 상황이고요. 그런데 제가 그런 말을 한 게 구단 내부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제가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밴쿠버 팬분들이 볼 때는 조금 오해를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팬분들은 서운해 하실 수 있죠. 특히 그런 말을 번역된 글로만 보면 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 거니까."

"저도 지금은 일단 밴쿠버에서 이 팀에 제가 돌려줘야 될 게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여기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처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리그가 시작되면 작년보다도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는 거 같아요."

이날 기자가 만난 밴쿠버 사령탑 도스 산토스 감독도 자신이 궁극적으로는 유럽 진출을 꿈꾸는 황인범의 목표를 존중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심지어 그는 "(황)인범이 유럽으로 가게 된다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나다. 나도 언젠가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겠다는 꿈이 있다. 인범이 유럽 진출에 대한 야망이 없는 선수라면 우리도 그를 영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인범이 우리 팀을 거쳐 유럽으로 가게 되면 그가 공항으로 갈 때 꼭 내가 그를 데려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범은 내가 100% 믿는 선수다. 그러나 그는 더 발전해야 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인범은 늘 누구보다 자기 힘으로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선수다. 그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지금 당장의 능력과 이를 더 잘해낼 가능성이 있다. 인범은 누가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책임감을 발휘한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그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데 집중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그가 축구를 즐기기를 바라고, 앞으로도 계속 그를 도와주고 싶다. 인범은 팀이 경기하는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소화하는 선수가 되기를 원한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선수다." (마크 도스 산토스 감독)

황인범

# 황인범은 지향점은 미드필드의 '템포 세터(tempo setter)'

여기서 도스 산토스 감독이 언급한 '템포를 조절하는 선수'는 올 시즌을 준비하며 황인범이 지향점으로 삼은 목표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부터 대표팀에서 경기력이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은 그는 당시에도 순간순간 상대 수비 블록을 단숨에 꿰뚫는 날카로운 패스 능력을 보여주다가도 원터치 패스로 단순한 연결을 하는 상황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상황이 팬들의 뇌리에 남으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를 파악한 도스 산토스 감독도 비디오 미팅과 훈련을 통해 황인범에게 개선해야 할 점을 냉정하게 지적하며 그를 돕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팀 사정상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두루 소화한 황인범은 올해는 프리시즌부터 4-2-3-1 포메이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사이를 연결하는 8번,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고정돼 활약 중이다.

"프리시즌 경기(콜럼버스전) 영상을 보면서 팀 미팅을 했는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팀이 공격을 전개할 때 템포를 올려주려고 한번에 넘기는 패스를 시도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잘리는 상황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미팅에서 영상으로 그 장면을 계속 보여주면서 지적을 하셨는데, 다음 팀 훈련 때 저를 따로 불러서, '절대 너를 질타하거나 뭐라고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걸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네가 공을 가졌을 때는 팀의 모든 선수가 안심할 수 있는 선수, 팀의 경기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해주는 선수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셨어요. 저도 감독님이랑 이런 대화를 하기 전부터 올해는 이런 점을 가장 먼저 생각하면서 발전해야겠다고 생각했었고요."

황인범

# 2년 만에 휴식 취한 황인범, 올해 비상을 자신하는 이유

대표팀에서 황인범의 경기력이 화두가 되며 떠오른 또하나의 관심사는 그가 잇따른 장거리 비행과 2년간 휴식이 없는 고된 일정을 병행한 탓에 저하된 몸상태였다. 황인범은 2018년 3월 아산에서 K리그2 시즌이 시작된 시점부터 2019년 12월 동아시안컵까지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아산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밴쿠버로 소속팀을 옮겼으며 휴식기 없이 소속팀(아산, 대전, 밴쿠버)과 국가대표팀(U-23, A대표팀)을 통틀어 총 88경기에 출전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북미 대륙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매주 소속팀 일정을 소화할 때도 장거리 비행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올 때부터 쉬지도 못하고 와서 몸도 힘든 상태였고, 처음 외국에 온 거라 영어도 진짜...(웃음) 축구 선수한테는 의사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게 잘 안 되니까 힘들었던 게 사실이죠. 더군다나 제가 팀에 합류했을 때는 시즌이 한달도 안 남았을 때 와서 쉽지 않았고. 거기다 팀 전체적으로도 작년에는 베스트 일레븐 선수 중 프리시즌을 같이 한 선수가 몇 명 안 됐거든요. 올해는 거의 다 선수단이 완료된 상태에서 같이 했기 때문에 팀 전력이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 경기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진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기력을 매 경기 보여주고 싶고요. 그렇게 할 정도로 체력 회복을 잘 했다고 믿고 있어요. 작년에는 첫 시즌이라는 게 핑계라면 핑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올 시즌에는 그런 핑계를 전혀 만들고 싶지 않아요. 팀이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고, 팬들이 즐길 수 있는 경기를 하는 데 중심이 돼서 저도 잘 즐겨보고 싶어요."


다만, 그렇다고 황인범이 지난 시즌 MLS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선보인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가로채기, 기회 창출(키패스) 횟수로는 팀 내 1위를 기록하며 공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또한, 황인범은 시즌 막바지에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기 전까지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으며 MLS 전체 가로채기 횟수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지난 시즌 밴쿠버 선수 중 유일하게 팀이 치른 2019 시즌 34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도스 산토스 감독은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친 황인범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를 매 경기 출전시킨 이유가 있다. 매 경기 출전시키는 게 '네가 한국에서 어떤 비판을 받아도 나는 너를 믿는다'는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인범도 지난 시즌 겪은 시련을 바탕으로 올 시즌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나름대로 작년을 돌이켜보면, 체력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서 다치지 않고 모든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저만 저희 팀에서 리그 34경기를 전부 다 출전했고. 대표팀에서도 두 경기 제외하고는 다 경기를 뛰었으니까요. 선수가 팀의 모든 경기에 다 뛸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저뿐만 아니라 소속팀이나 대표팀이나 팀이 잘하는 게 당연히 더 중요하죠. 올해는 팀도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 역시도 작년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자신이 있어요."

"작년에는 몸 회복이 덜 된 상태였고, 여기가 비행이 정말 엄청 많은 리그이기 때문에(웃음). 그래서 힘들었죠. 그런데 올해는 제가 겨울에 대표팀 차출이 있긴 했지만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고 동아시안컵 이후에는 한달간 쉬었잖아요. 몸을 잘 회복한 상태에서 왔으니까 이번 시즌에는 작년보다 더 잘할 자신감이 있어요."

황인범

# 일취월장한 영어 실력

황인범은 축구 외적으로도 그동안 영어 공부를 충실히 한 탓에 동료들과의 원활한 소통도 가능해졌다. 그는 올해부터 작년까지는 밴쿠버에서 함께 생활한 통역 없이 홀로서기에 나섰을 정도다. 도스 산토스 감독은 "팀 미팅을 할 때 인범에게 특별히 배려해주지 않아도 될 수준까지 영어 실력이 늘었다. 그와 1대1로 얘기할 때도 신경 써서 더 쉬운 단어를 쓸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도스 산토스 감독은 지난 시즌 황인범과 함께 영입한 모로코 출신 수비수 자세르 키미리를 가리키며 "키미리와 얘기할 때는 여전히 몸짓으로 얘기하고, 그림도 그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인범과 (10년째 밴쿠버에서 활약 중인 캐나다 대표팀 미드필더) 러셀 타이버트와 얘기할 때와 똑같이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타이버트, 그리고 이라크 출신 왼쪽 측면 수비수 알리 아드난은 밴쿠버에서 황인범의 '절친'이다. 특히 아드난은 황인범과 같은 아시아 무대에서 성장해 터키 리그를 거쳐 이탈리아 세리에A 무대에 진출해 4년간 우디네세, 아탈란타에서 활약한 유럽 빅리그를 경험한 선수다. 그는 궁극적으로 유럽 진출이 목표인 황인범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저한테 있어서는 너무 고마운 친구들이죠. 지금도 부족하긴 하지만, 이 친구들이 없었으면 이 정도까지도 영어를 못 했을 거 같아요. 제가 뭘 틀리게 말하면 이 친구들이 항상 알려주고, 편하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니까. 어느 순간부터 셋이 훈련장에서 같이 항상 다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같이 밥을 먹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영어도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거 같고."

"알리(아드난)는 보고 있으면 신기해요. 아시겠지만 알리는 이라크에서는 슈퍼스타잖아요.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터키, 이탈리아까지 갔다가 왔기 때문에 자부심이 굉장해요. 저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랑 러스티(러셀 타이버트의 애칭)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거나, 우리는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을 하고 싶은데 팀 훈련이 러닝 훈련일 때는 저희는 불만이 있어도 그걸 표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알리는 불만이 생기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정말 다 표현을 하는데, 그런 면이 유럽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선수가 뻔뻔해야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게 진짜 중요한 거니까."

황인범 새시즌

# "한국과는 다른 MLS, 배우며 성장하는 중"

물론 영어를 배우는 게 황인범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MLS가 언젠가는 자신을 유럽 무대로 보내줄 수 있는 리그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MLS는 미국 스포츠가 중시하는 운동 신경, 피지컬 능력 등을 중시하는 리그다. 평소 체격이 왜소하다는 평가를 받은 황인범은 거친 MLS에서 체구가 작은 선수들이 기술적 역량을 발휘해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제가 지금 있는 이 위치가 제가 꿈꾸고 목표로 했던 최종 위치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당연히 더 노력해야죠. 유럽 5대 리그 정도가 아니라면 어디가 수준이 높고, 수준이 낮고는 절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K리그는 정말 90분 내내 조직적인 압박을 버텨야 하고, 정말 스피디한 경기를 하는데, MLS는 그런 부분이 조금 달라요. 여기는 개인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아요. 그래서 분명한 건 제가 한국 선수로서 MLS에 와서 배우고, 느끼고, 분명히 얻어갈 수 있는 게 진짜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드필더니까 비슷한 포지션의 선수들이 공을 받을 때 어떻게 하는지, 팀이 공격을 나갈 때 어떤 위치로 움직임을 가져가고, 또 볼을 뺏겼을 때는 어떤 전환을 해주는지. 팀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어떤 팀은 볼을 뺏겼을 때 내려서는 팀도 있고, 또 반대로 바로 압박을 하는 팀들도 있는데 그런 점을 배우고, 느끼는 게 정말 많았어요." 

이 때문에 황인범이 MLS에서 상대하며 가장 눈여겨보게된 선수는 지난 시즌까지 LAFC에서 활약한 후 올겨울 인터 마이애미로 이적한 중앙 미드필더 리 응우옌(33)이다. 베트남계 미국인 미드필더 응우옌은 과거 PSV 에인트호벤에서 두 시즌간 활약했으며 2014년에는 MLS에서 MVP를 수상한 미국 대표팀 일원이기도 하다.

"제가 MLS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드필더는 작년까지 LAFC에 있던 리 응우옌. 그 선수를 가장 인상깊게 봤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거든요. 볼을 정말 쉽게쉽게 차는. 그 선수랑 같이 경기에 뛰면 되게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다른 선수들도 정말 개인 기량이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배우고 느낀 게 많았어요."

황인범

# "국내 선수들에게 MLS 추천? 이 길이 옳다는 걸 내가 먼저 증명해야"

냉정하게 말해 MLS는 국내 축구 팬들에게 잘 알려진 무대가 아니다. 국내 선수가 유럽이 아닌 미국 무대로 진출한 점을 가리키며 MLS의 경쟁력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직 국가대표 황인범이 MLS에 진출하고, 지난 시즌에는 시애틀 사운더스에서 김기희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선수들 사이에서도 미국 무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현재 한국 대표팀의 간판 골잡이로 떠오른 황의조(27)도 지롱댕 보르도 이적을 앞두고 MLS 진출설과 연결됐다.

황인범에게 직접 MLS가 국내 선수들에게 추천할 만한 리그냐고 물었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황인범을 만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후배 이동경(22)이 밴쿠버 이적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제로도 저희 팀에서도 저한테 영입할 만한 한국 선수들에 대해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다른 팀들도 에이전트를 통해서 물어보기도 했고요. 한국에 있는 선수들도 저한테 MLS 어떠냐고 많이 물어봐요. 그런데 한국에서 MLS에 대한 인식을 생각하면 제가 어떤 선수한테 MLS 진출을 추천하겠다고 말하는 건 아직 조심스러운 거 같아요."

"사실 여기에 처음 올 때, 목표했던 것 중 하나가 좋은 모습 보여서 한국 선수들에게 길을 열어주자는 거였는데요. 다만, 제가 한국 선수들한테 MLS 진출을 추천할 정도가 되려면 저부터 여기서, 대표팀에서 잘해야죠. 그래서 유럽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국 선수들도 분명히 제가 가는 길을 보고 확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일단 제가 열심히, 잘 해야죠. 제가 MLS에 있어서가 아니라, MLS가 좋은 리그인 건 분명히 틀림없는 거 같아요. 물론 비행 거리, 비행 시간처럼 분명히 힘든 부분도 있어요. 선수들한테는 그런 부분이 진짜, 너무 힘든 게 사실이니까(웃음)."

황인범

# 큰 힘이 되는 대표팀 선배, 그리고 구자철과 기성용

이 와중에 대표팀 선배들의 조언은 황인범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작년 초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구자철, 기성용은 여전히 황인범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작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구자철과 기성용이 말한 "국가대표로는 은퇴하지만 한국 축구에 대한 책임감을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겠다"는 그들의 약속과 일치한다.

"형들이 언론 인터뷰를 하면 배울점도 있고,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 꼭 챙겨서 읽어보거든요. 실제로도 (김)신욱이형, (정)우영이형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자철이형도 동아시안컵 할 때 부산까지 오셔서 저를 따로 불러주셔서 좋은 얘기를 해주셨고. 성용이형도 많이 연락해주셔서 항상 응원을 해주시는데, 너무너무 감사하죠."

"대표팀이 소집돼서 훈련을 하게 되면 그 순간순간은 정말 소중하고 남다르거든요. 매번 소중한 기회라는 걸 알고. 진짜 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국가대표팀에 소집이 된다는 건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나 대표팀에서 제 또래 친구들은 국가대표가 된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더 열심히 해야죠."

황인범은 지난 10월 초 밴쿠버에서 시즌을 마친 후 개인 훈련을 하며 대표팀의 10월 말 레바논 원정, 12월 동아시안컵 소집 준비를 해야했다. 그는 독립구단 TNT FC 훈련에 합류해 준비한 10월 레바논 원정 경기력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이후에는 고향 대전에서 월드컵보조경기장을 빌려 훈련을 하며 구슬땀을 흘린 끝에 동아시안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2019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황인범

# 경기장까지 빌려 개인훈련으로 준비한 동아시안컵

"레바논 원정 소집 전에 나름대로 개인 운동을 열심히 하고 갔는데도 몸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동아시안컵 전에는 천연잔디 위에서 운동을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대전보조월드컵경기장을 빌려서 와줄 수 있는 친구들을 다 불렀어요. 여섯, 일곱 명씩 불러서 실제 팀 훈련처럼 볼 돌리기, 패스 게임, 패스 훈련, 슈팅 훈련, 크로스 훈련, 프리킥 훈련 다 했는데도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죠.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아무리 이렇게 해도 팀에서 하는 훈련이랑은 많이 다른데...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쉽지 않았거든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스스로 핑계대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했어요." 

동아시안컵 세 경기를 통틀어 벤투호가 기록한 득점은 네 골. 황인범은 홍콩전 프리킥, 일본전 중거리슛으로 터뜨린 결승골 외에 나머지 두 골에도 관여하며 대표팀이 기록한 모든 득점을 자신의 발끝으로 만들어냈다. 홍콩전 나상호의 추가골은 황인범이 오른발로 올린 코너킥을 김보경이 머리로 떨구며 득점으로 이어졌고, 중국전 김민재의 결승골을 만들어낸 코너킥도 황인범이 시도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슛이 상대 골키퍼의 손을 스친 후 골대를 강타하며 골라인 아웃되며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황인범은 한국의 동아시안컵 우승이 확정된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자신이 터뜨린 결승골 덕분에 경기가 1-0 승리로 종료된 뒤, 한동안 그라운드에 누워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상황에서는 일단 그냥 힘들었던 거 같아요(웃음). 그런데 동아시안컵 시작 전부터 저희 아버지랑 대화를 했어요. 아버지가 조언이 되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세요. 축구를 보시는 눈이, 축구를 하지는 않으셨는데, 정말 제가 봐도 인정을 하기 싫을 정도로 너무 기가막히게 보셔서(웃음). 저한테 정말 냉정하게 얘기를 해주세요. 절대 무조건 '너는 잘할 거다'라고 말씀하시기보다는, 이번 동아시안컵 전에도 명단에 나왔을 때 '이번 대회는 너를 위한 대회, 네가 잘해줘야 하는 대회'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버지, 가족들도 제 옆에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아버지가 '동아시안컵이 너한테는 정말 중요한 대회다. 이번에도 힘들겠지만 한번 더 준비 잘해서 보여줬으면 한다'고 얘기하셨고요. 저 역시도 그 대회가 정말 저한테 너무나도 의미가 컸어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진 못했죠. 그래도 다행히 결과적으로 팀이 3전 전승을 하는 데 제가 도움을 분명히 줬다라는 생각은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황인범은 소속팀 밴쿠버와 오는 30일 낮 12시 30분(한국시각) 홈구장 BC 플레이스에서 스포르팅 KC를 상대로 2020 MLS 개막전에 나선다. 스포르팅 KC에는 스코틀랜드 대표팀 공격수 조니 러셀(29), 멕시코 대표팀 공격수 알란 풀리도(28), 스페인 라 리가 구단 레알 베티스 출신 칠레 대표팀 미드필더 펠리페 구티에레스(29), 웨스트 햄 출신 수비수 윈스턴 리드(31) 등이 버티고 있다.

황인범

사진=Vancouver Whitecaps FC, Nathan Vanstone, K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