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범의 MLS 적응기 "청용이형 조언,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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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beom Hwang, Vancouver
Ryan Wi / Goal Korea
▲MLS 진출 3개월 접어든 황인범 현장 인터뷰 ▲최근 10일간 이동거리만 1만km 달하는 살인 일정 ▲"내가 선택한 길,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다"

[골닷컴, 미국 뉴저지 해리슨] 한만성 기자 = 현직 한국 국가대표 선수로는 최초로 북미프로축구 MLS 무대 도전에 나선 황인범(22)은 순조롭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다.

황인범의 소속팀 밴쿠버 화이트캡스 관계자는 23일(이하 한국시각) 뉴욕 레드불스 원정 경기를 앞두고 기자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밴쿠버 구단 홍보팀 담당 네이튼 밴스톤은 "(황)인범은 잘 지내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인범이 짧은 기간에 영어도 많이 배웠다. 그는 알리 아드난(이라크 출신 왼쪽 측면 수비수), 러셀 타이버트(캐나다 출신 미드필더)와 가장 친한친구가 됐다"고 귀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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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구단 전문기자 셸든 로저스 또한 "우리는 인범의 경기력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며, "그런데 그는 한국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선수였나? 잘하고 있는데도 선수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팀이 그에게 기대하는 건 골이나 도움이 아닌 중원에서 보여주는 단단함과 영리함이다.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말했다.

황인범은 밴쿠버가 레드불스를 상대한 2019 시즌 MLS 14라운드 원정 경기에 교체 출전해 28분간 활약했다. 밴쿠버는 지난 16일 홈에서 아틀란타 유나이티드전을 시작으로 18일 캔자스 시티 원정, 23일 뉴욕 원정, 26일 다시 홈에서 FC 달라스를 상대하는 강행군을 소화 중이다. 작년 초부터 휴식 없이 달린 그는 아시안게임, 아시안컵에 이어 지난겨울 대전 시티즌을 떠나 첫 해외 진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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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인범이 밴쿠버에서 캔자스 시티로, 캔자스 시티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며 약 7일 사이에 소화한 이동거리는 약 1만km에 달한다. 해외 진출이 처음인 데다 평균 이동거리가 긴 MLS에서 활약한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한 그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빅리그 구단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러시아, 터키 등 동부 지역 원정에 큰 부담을 나타낸다. 그러나 황인범의 소속팀 밴쿠버가 최근 소화한 일주일간 이동거리 1만km는 잉글랜드 런던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를 왕복으로 두 차례 오가는 거리와 엇비슷하다. 

황인범은 2-2 무승부로 끝난 경기 후 '골닷컴 코리아'와 만난 자리에서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감독님, 피지컬 코치님, 트레이너와 함께 3일 전에 개별 미팅을 했다. 다들 저를 많이 걱정하셨다. 원래 힘들다고 너무 쉬어도 안 된다. 나는 하루라도 쉬면 안 된다고 느끼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정 힘들어도 보강 훈련은 한다. 그렇게 계속하고 있는데, 감독님과 피지컬 코치님이 '제발 좀 쉬어!'라고 하셨다(웃음). 내 스타일이 이렇다는 걸 알고 계시지만, 조절해줄 필요는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요즘 체력적으로 많이 쳐진 게 사실이다. 물론 오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한 이유가 감독님께서 조절을 해주신 건지, 나보다 다른 선수를 기용하고 싶으셨던 건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웃음)."

그러나 이에 앞서 마크 도스 산토스 밴쿠버 감독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황인범은 최근 1년 사이에 6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경기수와는 별개로 이 기간에 그는 대표팀 일정, 이적, 새로운 나라와 문화,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했다. 조만간 그에게 휴가까지 줄 계획이다. 특히 지금 MLS 일정은 매우 빠듯하다. 우리는 그를 보호해야 한다"며 배려 차원에서 그를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단, 황인범은 도스 산토스 감독의 이러한 발언을 전해듣고도 체력적 부담과는 관계없이 경기력을 유지하는 게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배려해주신 감독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어차피 MLS 진출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이겨내야 한다. 많이 힘들어도 앞으로는 더 긴 일정이 남아 있다.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다. 사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빨리 MLS에 적응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을 정도로 컨디션도 괜찮았다. 적응하는 데 별로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3월에는 대표팀에 다녀온 후에도 컨디션이 괜찮았는데, 최근 들어 계속 원정을 다니면서 몸이 힘들어졌다. 그래도 항상 90분 이상 최선을 다해서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은 게 선수의 욕심이다. 감독님께서 조절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항상 더 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결정은 감독님께서 하셔야 한다. 선수는 감독님의 지시에 맞추면서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황인범이 이적 첫 시즌부터 갑작스럽게 찾아온 '컨디션 난조'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지난 3월 대표팀 차출 기간에 선배 이청용(30)에게 구한 조언의 힘이 컸다.

"대표팀에서 청용이형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청용이형께서 해주신 말씀은 '이적을 하면 초반에 경기가 잘되는 경우가 많고, 축구가 되게 재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네가 막히게 되고, 상대팀도 너를 분석하게 되면 힘든 시기가 분명히 온다. 그때 주저앉지 말고, 스스로 끌어 올리면서 다치지 않고 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였다. 정말 좋은 조언을 해주셨다. 청용이형께서 말씀을 해주신 것처럼, 요즘 스스로 많이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몸상태, 경기력 둘 다. 하지만 그저 실망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제게는 올해는 물론 내년, 내후년이 있다. 항상 포기하지 않고, 더 체력을 조절하는 법도 배우고, 어떻게 하면 힘든 상황에서도 더 영리하게 할 수 있는지 많이 연구해야 한다."

황인범이 활약 중인 캐나다, 미국은 한국인 이민자, 유학생이 가장 많은 해외 국가다. 그는 이날 뉴저지 해리슨의 레드불 스타디움에서도 경기 전후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태극기를 흔드는 수많은 한국인 팬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황인범은 팬들의 사인, 사진 요청에도 모두 응하며 경기가 끝난 후 양 팀 선수는 물론 관계자보다 더 늦게 라커룸으로 향했다.

심지어는 밴쿠버가 캔자스 시티 등 동양인이 극소수에 불과한 지역에서 원정 경기를 치러도 황인범을 보러온 한국인 팬들이 경기장 한켠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은 꽤 쉽게 볼 수 있다.

"팀 트레이너님도 저한테 '어딜 가도 한국 팬들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신다. 아무리 외진 곳, 여기는 안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곳에도 최소 한 분은 꼭 계신다. 선수라면 솔직히 이기지 못하면 되게 많이 힘들다. 졌을 땐 몇 배로 더 힘들다. 빨리 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분들은 우리가 경기에서 지더라도 저를 보러와주신 거다. 제가 최대한 해드릴 수 있는 만큼 해드려야 한다. 축구 선수는 칭찬이나 관심도 정말 많이 받지만, 그만큼 여러 가지 이유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저를 직접 보러 와주신 분들께는 '황인범은 정말 좋은 선수, 착한 선수'라는 소리를 듣고싶다."

MLS에는 황인범 외에도 한국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이는 바로 시애틀 사운더스에서 활약 중인 수비수 김기희(29)다. 지난 시즌 시애틀로 이적한 그는 2년 연속으로 붙박이 주전 수비수로 맹활약 중이다. 공교롭게도 김기희의 시애틀은 황인범이 활약 중인 밴쿠버와 MLS에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다.

김기희와 황인범은 지난 3월 MLS 역사상 첫 '코리안 더비'가 성사됐다. 이날 김기희는 경기 종료 직전 문전에서 황인범이 날린 회심의 슛을 온몸을 던지는 태클로 막아내 더 큰 화제가 됐다.

"MLS에 온 후 그전까지는 기희형과 멀리서 연락만 주고받았다. 그때부터 좋은 선배님이라는 게 느껴졌다. 좋은 형이다. 그때는 또 마지막에 또 제 슛을 그렇게 막으셔서(웃음). 그래도 너무 반가웠다. 해외에 왔는데 저 말고도 다른 한국 선수와 같은 리그에서 뛰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시애틀은 밴쿠버와 가깝고, 라이벌 관계다. 올여름에는 우리가 시애틀 원정을 간다. 저도, 기희형도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한다. 다만, 그때는 제가 기희형 앞에서 득점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다(웃음)."

황인범은 MLS에서 활약하며 한국 대표팀을 오가게 된 최초의 선수다.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 또한 지난겨울 밴쿠버 이적을 두고 고민하던 황인범에게 "경기력만 유지하면 대표팀에 오는 데는 밴쿠버 이적이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도 황인범을 향한 벤투 감독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한국 대표팀이 지난 3월 볼리비아, 콜롬비아를 상대한 2연전에 연이어 선발 출전한 선수는 황인범, 손흥민, 김민재, 홍철뿐이었다. 그러나 황인범은 "대표팀 내 입지를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내 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는 기자의 요청에 국가대표라는 자리를 향한 애착을 내비쳤다.

"MLS 경기를 한국에서도 챙겨 보시기에는 시간대가 많이 애매하다는 걸 알고 있다. 6월 대표팀 소집 기간에 제가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불러주셔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에도 영광스러운 기회가 온다면 더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제가 대표팀에서 경기를 할 때나, 여기서 경기를 할 때나 여러분께서 늘 저를 응원해주셨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정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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