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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민.크리그림] 상암으로 출근하는 회사원처럼

[골닷컴] 결혼 22년 차다. 처음 둘이 만났을 때, 나는 IT 회사에 다녔고 아내는 실내건축 디자이너였다. 이야기해보니 내 연봉이 1천만 원 이상 많았다(그 옛날에!). 그런데 일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그녀는 ‘최고의 디자이너’를 꿈꾼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있는 자리에서 꿈을 품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 회사는 그냥 월급 받는 곳이었다.

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의 FC서울을 보면서 잊고 있던 ‘회사원 시절’이 떠올랐다. 0-3이란 스코어라인이 말해주듯이 서울의 경기력에는 긍정적인 구석이 없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기대에 선수들은 아무것도 응답하지 않았다. 패스는 먹통이었고 움직임은 없었다. 부딪히면 볼을 빼앗겼다. 상황을 뒤집으려면 상대보다 더 뛰어야 할 텐데 경기 내내 몸을 내던지는 쪽은 앞서가는 수원이었다. 최대 라이벌이 투지를 불태웠다면, 서울은 ‘출근한 이상 일단 일은 해야지’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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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추가골 장면이 상징적이었다. 수원의 페널티박스에서 볼이 튕겨 나왔다. 강현묵이 가망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압박했다. 서울의 이태석이 먼저 볼을 주웠다. 자신감에 넘치는 강현묵이 몸으로 들이받아 볼을 따냈다. 하프라인에서 서울이 상대의 역습을 끊는 것처럼 보였다. 볼은 팔로세비치와 윤종규의 앞으로 흘렀다. 둘이 머뭇거리는 틈에 김건희가 볼을 따냈다. 생존을 위해 먹잇감을 덮치는 육식동물 같았다. 서울의 두 선수는 힘겹게 쫓아갔지만 페널티박스에서 김건희를 또 놓쳤다. 김건희 패스, 김민우 탭인, 2-0. 김건희는 혼자 두 명을 두 번이나 상대해 모두 이겼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열정의 차이다.

두 번째 슈퍼매치의 결과와 현재 두 팀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특별한 통찰이 필요 없다. 순위표에서 수원은 아주 높은 곳, 서울은 저 아래에 있다. 경기 수가 적다는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서울의 덜 치른 경기를 전부 승점 3점으로 계산해도 수원에 미치지 못한다. 경기 전부터 모든 데이터는 수원의 우세를 가리켰고, 이변 없는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서울은 온몸으로 자신들의 현재 위치를 설명해줬다. 3월 슈퍼매치를 잡았던 기성용은 존재감을 잃었다. 황현수는 마크맨이 없는 문전 헤딩을 모두 날리는 최악의 집중력을 선보였다. 박건하 감독의 농담처럼 “민상기까지 골을 넣는” 수원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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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시즌 내내 수원과 서울은 나란히 땀을 흘렸다. 그런데 장소가 다르다. 수원은 그라운드 안에서, 서울은 밖에서 진땀을 빼고 있다. 서울은 축구 자체보다 기성용의 사회면 이슈가 훨씬 커 보인다. 기성용은 우월한 기량으로 부정적 분위기를 환기하나 싶었는데 이후 내구성 결핍으로 기어가 뚝 떨어졌다. 제한적 출전 수, 끊이지 않는 잡음, 팀 내 최고 대우 등을 종합해보면, 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K리그 구단 내 코로나19 확진 첫 사례도 서울에서 나왔다. 지난 시즌 개막전 인형 해프닝에 이어 서울은 축구 외적으로만 가십을 제공하는 이미지가 굳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서울 선수단 내부 상황을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과 실제 모습이 다를 때가 있고, 피치 못할 사정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홈 슈퍼매치 0-3 완패, 컵대회 포함 10경기 연속 무승(패패패패패패무무무패)은 선수단 내부에 문제가 있고, 그걸 빨리 고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믿기에 충분하다. 세 골이나 뒤진 팀이 슛을 9개밖에 때리지 못했다. 그중 골대 안으로 날아간 슛은 2개밖에 없었다. 후반전에는 유효 슈팅 제로였다. 이런 내용과 결과라면, 서울 선수들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충분히 뜨겁지 못해서’라고 봐야 한다. 2020시즌 기준 FC서울 총연봉은 94억2천만 원으로 리그에서 전북, 울산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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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있었던 한일전의 ‘대환장쇼’를 소환하자. 숙적 일본에 0-3으로 완패한 벤투호에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다. 결과가 원초적 분노의 원인이었지만, 팬들이 진짜 화를 냈던 지점은 투지 실종이었다. 일본 선수와 부딪혀 나동그라지는 모습, 제대로 반격도 펼치지 못하는 무기력함이 한반도를 울화통에 빠트렸다. 정신력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기본 요소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인터뷰를 했던 손흥민은 “월드컵 본선에 갔더니 상대 선수들도 눈빛부터 다르더라”라고 말했다. 한일전에서 벤투호가 그걸 잃어버려서 팬들이 화를 낸 것이다. 슈퍼매치 종료 후, 서울 홈 서포터즈에서 야유가 나온 이유도 따로 있지 않다.

나는 서울 팬도 아니고 수원 팬도 아니다. 그래도 중간에 낀 지가 꽤 오래된 덕분에 슈퍼매치의 의미는 제법 안다. 어느 쪽 팬으로 빙의하든 슈퍼매치에서만큼은 승리와 함께 ‘투지를 불사르는 모습’을 요구할 것 같다. 최소한 이번 슈퍼매치에서 서울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0-3으로 뒤진 절박함이 자아낼 법한 ‘티격태격’조차 없었다. 라이벌전에서 세 골이나 뒤진 팀 선수들은 통상적으로 거친 태클도 감행하거나 상대에게 화를 낸다. 그러는 게 축구의 원초적 모습 아닌가? 홈 슈퍼매치에서 서울은 평화롭게 뛰면서 완패를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내 옛날 모습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신기했다. 회사 사정과 상관없이 딱 욕먹지 않을 만큼만 일하면서 월급날 기다리던 그 시절. 사장님, 죄송했어요.

글, 그림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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