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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민.크리그림] 당신이 동해안 더비를 챙겨야 하는 이유

[골닷컴] 시즌 첫 동해안 더비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양쪽 모두 결과가 불만스러울 것 같다. 상관없었다. 가운데에서 즐기는 중립 팬들에겐 충분한 ‘팝콘각’이었으니까. 빠른 공수 전환,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인드. K리그를 처음 접하는 누군가에게 소개해야 할 90분이 있다면 그건 동해안 더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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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볼 만한 선수가 많다

소문난 잔치의 기본은 음식이다. 축구 경기로 따지면 선수다. 2021년 동해안 더비는 소위 ‘선수 맛집’이다. 포항에는 지난 시즌 도움왕 강상우가 있다. 기본 포지션이 풀백인데 실제 움직임은 전방위적이다. 오버래핑, 크로스, 데드볼 처리 등 모든 면에서 포항의 플레이메이커는 강상우다. 동점골로 연결된 코너킥도 강상우가 찼다. 이런 풀백은 흔하지 않다. 

울산의 영입생 이동준은 매 경기 압도적 원맨쇼를 펼친다. 선제골도 이동준의 스피드와 투지에서 나왔다. 폭발적인 측면 플레이는 K리그 무대를 주름잡았던 과거 브라질 스타들을 떠올리게 한다. 동해안 더비에서 이동준은 팀에서 가장 많은 슈팅시도 3개를 기록했는데 전부 유효슈팅이었다. 같은 날 우승 라이벌 전북이 광주를 상대로 기록한 유효슈팅(2개)보다 많았다.

양쪽 골키퍼 강현무와 조현우는 리그 최정상급 슛스토핑 능력을 보유했다. 포항의 중원 신진호와 오범석은 ‘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노련했고 울산의 신형민과 원두재는 K리그가 한국의 축구라는 사실을 보여주듯이 투지가 넘쳤다. 우리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원래 그렇게 터프하고 몸을 내던져야 제맛 아닌가. 이청용의 유려한 클래스는 언제나 고품격을 보장한다.

포항 울산한국프로축구연맹

#2. 컬러를 유지하는 구단들이다

K리그 풍토에서는 구단의 역사, 전통, 연속성 지키기가 기본보다 큰 업적에 가깝다. 프런트 수장이나 선수단 감독의 개인적 지향점이 구단의 가치에 앞설 때가 허다하다. 동해안 더비의 두 주인공 포항과 울산은 다르다. 두 구단은 K리그에서 보기 드물게 팀컬러가 존재하고 앞뒤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가 든든하다. 그래서 부속품(선수)이 교체되어도 기본 틀을 유지한다. 누가 뛴들 이건 포항 축구, 저건 울산 축구다.

포항은 예산 부자가 아니다. 김기동 감독이 온 뒤로도 완델손이 휙 떠났고, 그 자리를 메운 ‘1588’도 1년 만에 해체되었다. 그런데도 포항은 유럽 주류에 가장 가까운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한다. ‘골무원’ 주니오가 떠난 울산은 개막전부터 다섯 골을 터트렸다. 두 번째 홈경기에서도 인천에 3-1 완승을 거뒀다. 감독이 바뀌고 시즌 26골짜리 스트라이커가 없어져도 울산의 역습은 숨 막히고 결정력은 불탄다.

두 구단을 명가라고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유망주다. 올 시즌 U22 기용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 포항과 울산이다. 포항에는 송민규를 비롯해 이수빈, 고영준이 있고, 울산에는 김민준, 강윤구라는 확실한 카드가 있다. 두 구단에서 아카데미 운영이 ‘억지 춘향’이 아니라 구단 운영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다. 올 시즌 일부 경기에서 나온 U22 선수 ‘꼼수’ 기용과 비교하면 동해안 더비의 두 주인공은 근본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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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비는 결과가 크다

한때 K리그에서 마케팅이랍시고 곳곳에서 ‘더비’라는 단어가 남용되었다. 현실적으로 ‘억지 더비’이자 ‘그들만의 더비’가 대부분이었다. 더비의 참뜻보다 스토리텔링 강박에 매몰되어 조악한 아류 신세를 면치 못한 채 대부분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동해안 더비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자연 발생한 스토리가 쌓이면서 K리그 대표 더비 자리에 올랐다. 슈퍼매치의 쇠락이 이제 더는 뉴스도 아닌 지금이라서 더 돋보인다.

울산 팬들에겐 아픈 기억이 더 많지만 어쨌든 동해안 더비는 결정적 결과로 연결된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2013년 김원일의 결승골, 2019년 다 잡은 우승에 고춧가루를 퍼부은 리그 최종전, 바로 다음 경기(2020년)에서 울산의 4-0 분풀이, FA컵 혈투에 이은 포항의 ‘또’ 고춧가루 등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울산 선수들이 포항전을 앞두고 보이는 긴장한 표정이야말로 동해안 더비의 가치를 입증한다.

글, 그림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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