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김현민 기자 = 주전 최전방 공격수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2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지독한 골가뭄에서 벗어났다. 피르미누의 골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리버풀 득점력도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리버풀이 셀허스트 파크 원정에서 열린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2020/21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14라운드에서 7-0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그 중심엔 부활한 피르미누가 있었다.
피르미누가 누구인가? 2015년 여름, 호펜하임을 떠나 리버풀에 입단한 그는 5시즌 동안 주전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며 사디오 마네,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공격 삼각편대를 형성했다. 비록 득점 자체는 살라와 마네에 비해 적었으나 강도 높은 압박과 궂은 일을 도맡아하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프레싱(독일어로 Gegenpressing. 직역하면 역압박이라는 의미로 상대팀에게 소유권을 내주었을 시 곧바로 압박을 감행하는 강도 높은 전방 압박을 지칭)' 전술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가 최전방에서 버티고 있기에 좌우 측면에 위치한 살라와 마네가 한결 수월하게 득점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시즌 후반기 들어 극심한 득점 가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18/19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아무리 득점이 살라-마네보단 적었다고 하더라도 EPL에서 한 시즌 두자릿수 득점은 보장하는 선수였다(2015/16 10골, 2016/17 11골, 2017/18 15골, 2018/19 12골). 지난 시즌에도 전반기만 하더라도 6골을 넣으면서 두자릿수 득점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부진에 빠지면서 단 3골에 그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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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르미누가 골을 넣지 못하자 리버풀의 EPL 무패 행진도 28라운드 왓포드전 0-3 패배로 막을 내렸다. 이전까지 무려 EPL 44경기 무패를 이어오면서 30년 만의 1부 리그 우승(EPL 전신이었던 더 풋볼 리그 시절까지 포함. 당연히 EPL이 시작한 이래로는 구단 최초)을 넘어 내심 무패 우승까지 노리고 있었던 리버풀이었다. 결국은 염원하던 EPL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피르미누의 시즌 후반기 부진은 리버풀에게 있어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리버풀은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울버햄튼 원더러스 공격수 디오구 조타를 45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들여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거의 휴식 없이 뛰면서 지친 피르미누에게 휴식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경쟁자 영입을 통해 자극을 더해줌과 동시에 그의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에서 이루어진 영입이었다.
하지만 피르미누는 이번 시즌 초반에도 부진에 빠지면서 실망을 안겨주었다. 6라운드 들어서 최하위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시즌 첫 골을 넣었고, 12라운드까지 단 2골에 그친 것. 반면 조타는 EPL 5골 포함 공식 대회 17경기에 출전해 9골을 넣으면서 빠른 속도로 팀에 녹아들었다. 이에 영국 현지 언론들은 물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높여 피르미누가 아닌 조타를 주전으로 중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클롭 감독은 이번 시즌에도 피르미누를 EPL 전경기 선발 출전시킬 정도로 그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보내주었다. 클롭은 피르미누 중용에 대해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해주는 선수이다. 그의 플레이가 왜 문제가 된다고 얘기들을 하는 지 모르겠다. 전혀 문제 없다. 기록지에 적힌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피르미누는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여도를 가지고 있고, 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다"라고 주장했다.
클롭과의 주장과는 별개로 피르미누의 득점 가뭄이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리버풀에 악재가 발생했다. 바로 조타가 미드틸란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것. 이로 인해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한 상태였다. 리버풀은 조타의 부재를 드러내며 승격팀 풀럼과의 EPL 11라운드 경기에서 1-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11일(현지 기준), 맞대결 당시 EPL 1위를 달리고 있었던 토트넘과의 12라운드에서 피르미누가 경기 종료 직전 코너킥 공격 찬스에서 천금같은 헤딩골을 넣으며 2-1 승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 경기에서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슈팅을 가져가면서(출전 선수들 중 최다인 5회의 슈팅을 시도해 4회를 유효 슈팅으로 연결했다) 득점 욕심을 냈다. 이러한 노력이 결승골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결국 리버풀은 피르미누의 결승골 덕에 토트넘을 제치고 EPL 1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토트넘전 결승골로 자신감을 획득한 피르미누는 이어진 팰리스전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리버풀은 경기 시작 2분 만에 로테이션 차원에서 살라 대신 선발 출전한 미나미노 타쿠미가 마네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으며 일찌감치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팰리스의 스피드를 살린 공세에 밀리는 모양새였다.
자칫 흔들릴 수도 있었던 순간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건 피르미누였다. 먼저 그는 35분경, 혼전 상황에서 전진 패스로 마네의 추가 골을 어시스트했다. 이어서 전반 종료 직전 역습 상황에서 피르미누는 측면으로 패스를 내주고선 곧바로 페널티 박스 안까지 빠르게 달려들어가선 로버트슨의 크로스를 감각적인 볼터치에 이은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추가했다. 이와 함께 리버풀은 전반전을 3-0 여유있는 리드를 잡은 상태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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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전에도 피르미누의 활약은 이어졌다. 리버풀은 후반 7분 만에 오른쪽 측면 수비수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의 패스를 주장 조던 헨더슨이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추가하며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에 클롭 감독은 다소 이른 시점인 후반 12분경, 체력 안배 차원에서 마네를 빼고 살라를 교체 출전시켰다. 살라는 후반 23분경, 역습 상황에서 수비수 뒤로 패스를 찔러주었고, 이를 피르미누가 받아서 각도를 좁히고 나온 골키퍼 키를 넘기는 센스 있는 슈팅으로 골을 추가했다.
클롭 감독은 후반 24분경, 미드필더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을 빼고 같은 포지션의 커티스 존스를 교체 출전시킨 데 이어 후반 30분경엔 피르미누 대신 멀티 플레이어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리을 투입하며 체력안배에 나섰다.
리버풀은 후반 35분경, 아놀드의 코너킥을 중앙 수비수 조엘 마팁으로 헤딩으로 떨구어준 걸 살라가 방향만 바꾸는 헤딩 슈팅으로 골을 추가했다. 이어서 경기 종료 6분을 남기고 체임벌린의 패스를 받은 살라가 환상적인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7-0 대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렇듯 리버풀은 피르미누가 살아나자 토트넘과의 중요한 일전에서 승리했고, 팰리스전에선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7-0 승리는 리버풀이 EPL에서 기록한 한 경기 최다 점수 차 승리이다. EPL이 설립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구단 역대 2위(1위는 1989/90 시즌 팰리스전 9-0 대승)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원정만 놓고 보더라면 구단 역사상 1부 리그 한 경기 최다 점수 차 승리이다.
피르미누는 설령 골을 넣지 못하더라도 팀 공격 전술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가 골을 넣으면 리버풀은 한층 더 막기 힘든 팀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는 피르미누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의 리버풀 성적을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리버풀은 이번 시즌 피르미누가 골을 넣은 EPL 4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무엇보다도 피르미누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 무려 14득점을 올리면서 경기당 3.5골을 넣고 있는 리버풀이다. 피르미누가 골을 넣지 못한 EPL 10경기 5승 4무 1패 승률 5할에 22득점으로 경기당 2.2골에 그치고 있다.
비단 이번 시즌이 전부가 아니다. 리버풀은 지난 시즌에도 피르미누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EPL만 국한지어서 놓고 보면 최근 15경기 연속 피르미누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 승리하고 있는 리버풀이다. 마지막으로 리버풀이 피르미누가 골을 넣고도 패한 EPL 경기를 확인하려면 2019년 1월 3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2018/19 시즌 21라운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통산 성적을 놓고 보더라도 리버풀은 피르미누가 골을 넣은 EPL 51경기에서 45승 4무 2패라는 호성적을 올렸다. 팀득점도 159골로 경기당 3.2골을 넣고 있다. 반면 피르미누가 골을 넣지 못한 153경기에서 85승 44무 24패를 기록하고 있다. 팀득점도 276골로 경기당 1.8골에 그치고 있다. 피르미누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피르미누가 부진하더라도 리버풀은 살라와 마네가 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득점력이 극대화되기 위해선 피르미누가 중간에서 조타수 역할을 하면서 골도 넣어줄 필요가 있다. 살라가 없을 땐 마네가, 마네가 없을 땐 살라가 그 역할을 대체해줄 수 있지만 피르미누가 없을 땐 그의 전술적인 역할을 대체할 선수가 없다. 조타를 영입하긴 했으나 부상을 당하기 이전까지도 조타에게 피르미누의 역할이 아닌 살라와 마네의 역할을 주로 맡겼던 클롭 감독이다.
이것이 괜히 클롭 감독이 피르미누를 주전으로 중용하는 게 아니다. 이번 시즌 초반 피르미누가 부진에 빠졌음에도 클롭 감독은 살라와 마네를 선발에서 제외하면 했지 피르미누는 선발로 고집했다. EPL 전경기 선발 출전한 리버풀 선수는 피르미누와 로버트슨 둘 밖에 없다. 물론 팀의 에이스는 살라와 마네라고 하더라도 전술적인 이유에서 클롭 감독이 가장 먼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적는 선수 중 한 명은 바로 피르미누이다.
클롭 "축구팀은 오케스트라와도 같아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한다. 그들 중 몇몇 악기가 다른 악기에 비해 큰 소리를 내긴 하지만 모든 악기가 리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피르미누는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12개의 악기들을 소화하고 있는 것처럼 뛰고 있다. 그는 우리 팀의 리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