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 헤르타 베를린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마르셀리뉴가 만 44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미 2017년에도 한 차례 은퇴를 했다가 다시 돌아온 바 있다. 하지만 데포르티바 페릴리마 소속으로 센트루 스포르티부 파라이바누와의 경기(2-1 승)가 끝나고 그는 "이제 내 선수 생활은 끝났다"라고 밝히면서 "난 곧 지도자 자격증을 얻고 싶다. 나중에는 헤르타 벤치에도 앉고 싶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헤르타에서 단 5시즌 밖에 뛰지 않았으나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들 중 한 명이었다. 이에 독일 타블로이드 '빌트'지는 그와 관련한 특집 시리즈물을 연달아 올리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분데스리가는 공격형 미드필더 전성시대였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유행하던 포메이션은 다이아몬드 4-4-2였다. 여기서 가장 빛을 발하는 포지션은 바로 다이아몬드에서 상단 꼭지점에 위치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있었다. 이에 분데스리가 팀들은 특급 공격형 미드필더를 구하기 위해 남미와 동유럽 시장을 물색해 나갔다.
먼저 분데스리가 최강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을 대표하는 구단답게 메멧 숄로부터 미하엘 발락으로 이어지는 독일 대표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그 계보를 이어나갔다. 원래 발락은 중앙 미드필더였으나 이미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뛰던 2001/02 시즌 무려 17골을 넣는 괴력을 과시했을 정도로 출중한 득점 생산성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숄의 하락세와 맞물려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되기 시작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1996/97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견인한 신성 라스 릭켄이 많은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그라운드 위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만 20세 천재 미드필더 토마스 로시츠키를 2001년 1월, 당시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 이적료인 1450만 유로에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도르트문트는 로시츠키의 활약에 힘입어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으나 이후 로시츠키가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부침이 심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와중에 베르더 브레멘이 2002년 여름, '제2의 지단'으로 불리던 요한 미쿠를 영입해 2003/04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미쿠의 계보를 디에구(2006 - 2009년)와 메수트 외질(2008 - 2010)이 이으며 브레멘은 2000년대 바이에른의 대항마 1순위로 군림하고 있었다(외질과 페어 메르테자커가 동시에 떠나면서 브레멘의 몰락이 시작됐다).
바이엘 레버쿠젠도 다소 기복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2000년대에 브레멘과 함께 바이에른 대항마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구단이었다. 레버쿠젠은 일디라이 바스튀르크의 맹활약에 힘입어 2001/02 시즌 트리플 러너업(챔피언스 리그, 분데스리가, DFB 포칼 3개 대회 준우승)을 달성했다. 다만 바스튀르크가 반짝 활약을 펼친 뒤 다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고, 이에 레버쿠젠은 볼프스부르크로 임대를 보냈던 롭슨 폰테를 활용했으나 그 역시 기복 문제를 드러냈다.
2001/02 시즌과 2002/03 시즌 폰테로 재미를 보던 볼프스부르크는 그가 레버쿠젠으로 임대 복귀하자 아르헨티나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안드레스 달레산드로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데뷔 시즌에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이후 독단적인 플레이를 고집하면서 빈축을 샀고, 볼프스부르크의 성적도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샬케는 2000년대 초반을 베테랑 안드레아스 묄러에 의존해야 했다. 이후 2004년 여름, 카이저슬라우턴에서 활약하던 링콘을 영입해 재미를 봤다. 다만 링콘 이후가 다소 복잡해졌다. 스위스 바젤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이반 라키티치를 영입했으나 이는 라키티치와 동갑내기인 샬케 유스 출신 공격형 미드필더 외질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결국 외질은 구단과 마찰을 빚다가 2008년 1월에 브레멘으로 떠났고, 아직 어렸던 라키티치 역시 다소 부진한 시기를 보내다가 2011년 1월, 세비야로 이적하기에 이르렀다(결국 라키티치는 세비야에서 재능을 만개하고선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성공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승계작업이 이루어진 구단으로는 슈투트가르트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미 불가리아의 전설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발라코프는 1995년부터 슈투트가르트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라코프가 30대 중반에 접어들자 슈투트가르트는 벨라루스라는 소국에서 2000년 여름, 만 19세 공격형 미드필더 알렉산더 흘렙을 영입하는 강수를 던졌다. 슈투트가르트 2군 팀에서 수련을 한 그는 2000/01 시즌 막판부터 분데스리가로 올라와 발라코프의 보호 아래서 성장해 나갔다. 결국 슈투트가르트는 발라코프가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 흘렙이 절정에 오르기 시작한 2002/03 시즌 분데스리가 2위를 차지하면서 독일 무대에 신선한 충격을 전해주었다. 이 때의 슈투트가르트는 펠릭스 마가트 감독의 강력한 지도력 속에서 흘렙과 케빈 쿠라니, 안드레아스 힌켈, 필립 람, 그리고 토마스 힐데브란트 같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선수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기에 ‘마가트의 무서운 신예들(Magath und die Jungen Wilden)’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북독의 강호 함부르크는 선수 경력의 말년이었던 로돌포 카르도소(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뛰던 시절 코치직을 수행하고 있었다)와 다소 투박했지만 견실했던 슈테판 바인리히를 거쳐 2005년 여름, 세간의 예상을 깨고 네덜란드와 아약스가 자랑하는 천재 공격형 미드필더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분데스리가 터줏대감에 가까웠던 보훔 역시 다리우스 보스에서 즈브예즈단 미시모비치로 이어지는 공격형 미드필더 계보를 가지고 있었다(결국 미시모비치는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해 2008/09 시즌 깜짝 분데스리가 우승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 외 다소 스타일적으로는 차이가 있으나 뉘른베르크는 공격형 미드필더 마렉 민탈이 2003/04 시즌 2부 리가 득점왕(18골)을 차지하면서 승격을 견인한 데 이어 2004/05 시즌에도 분데스리가 득점왕(24골)을 달성하면서 놀라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이후 두 차례나 발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해 힘든 시기를 보냈고,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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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화려한 공격형 미드필더들과 경쟁하던 선수가 있다. 바로 헤르타의 마르셀리뉴이다. 2001년 여름, 헤르타는 당시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 2위에 해당하는 700만 유로에 그레미우 공격형 미드필더 마르셀리뉴는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데뷔 시즌부터 분데스리가 33경기에 출전해 구단 내에서 가장 많은 13골에 더해 5도움을 올리면서 팀의 새로운 에이스를 넘어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급부상했다. 해당 시즌에 최전방 공격수를 제외하면 그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발락(17골)이 유일했다. 그의 활약 덕에
이어서 그는 2002/03 시즌 14골 11도움을 올리면서 두 자릿 수 골과 도움을 동시에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공격 포인트는 25개로 바이에른 간판 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21골 6도움 27개 공격 포인트)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와 함께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군림한 마르셀리뉴였다.
하지만 그는 2003/04 시즌 전반기 부상으로 8경기 출전(2도움)에 그쳤다. 결국 그는 해당 시즌 25경기에 출전해 8골 8도움을 기록하면서 이전 2시즌 대비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헤르타 구단 역시도 2001/02 시즌 4위와 2002/03 시즌 5위에서 2003/04 시즌 12위로 성적이 대폭 하락하고 말았다.
절치부심한 그는 2004/05 시즌 32경기에 출전해 18골 13도움을 올리면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분데스리가 득점 4위와 도움 2위, 그리고 공격 포인트 2위에 이르기까지 공격 전반에 걸쳐 최상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마르셀리뉴였다. 헤르타 역시 그의 활약 덕에 다시 4위를 탈환하면서 UEFA 컵 진출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2005/06 시즌에도 12골 12도움을 올리면서 2시즌 연속 두 자릿 수 골과 도움을 동시에 기록했다. 헤르타에선 5시즌 뛰면서 이 중 3시즌을 두 자릿 수 골과 도움을 달성한 마르셀리뉴이다. 공격 포인트는 미로슬라비 클로제(25골 13도움 공격 포인트 38개)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21골 9도움 공격 포인트 30개)에 이어 3위였다.
이렇듯 그는 5시즌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헤르타에서 에이스로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활약을 펼쳤다. 마르셀리뉴의 5시즌 도합 분데스리가 성적은 65골 49도움으로 공격 포인트 114개. 이는 해당 기간 클로제(75골 39도움)와 함께 공격 포인트 최다(114개)에 더해 최다 도움 1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는 헤르타에 입단했을 당시 이미 만 26세였기에 로시츠키와 흘렙, 달레산드로 같은 어린 재능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기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그는 훈련에 불성실했고, 심심하면 나이트에서 노는 등 사생활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이는 그가 1991년 프로 데뷔한 이래로 이번 시즌까지 29년 동안 무려 25번이나 이적(임대까지 포함하면 28번)했던 사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의 영입을 주도했던 디터 회네스(바이에른 전임 회장 울리 회네스의 친동생이다) 전 헤르타 회장은 "그는 내가 가장 다루기 힘든 아들이었다. 그가 다른 데에 한눈 팔지 않고 오직 축구만 전념했다면 아마 브라질 대표팀에서 A매치 70~80경기를 뛰면서 더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그는 브라질 대표팀에서 A매치 5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라고 아쉬움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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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가 가장 오랜 기간 뛰었던 구단이 다름 아닌 헤르타였다. 게다가 5시즌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구단 역대 최다 공격 포인트 1위이자 최다 도움이고, 득점에선 역대 4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짧지만 굵은 족적을 남긴 마르셀리뉴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뛰는 동안 헤르타는 분데스리가에서 평균 6위를 기록했다. 그가 떠나자 헤르타는 2009/10 시즌 최하위에 그치면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2011/12 시즌에도 16위에 그치면서 또 다시 강등의 아픔을 맛봤다. 그가 있는 기간이 구단 역대 최고의 황금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것이 그가 팔 다르다이(구단 역대 최다 출전 기록자이자 2015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헤르타 감독직 역임), 미하엘 프리츠(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현 헤르타 단장), 아르네 프리드리히와 함께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이다.
디터 회네스 "그는 헤르타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 헤르타는 여전히 그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저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미하엘 프리츠 "내 선수 경력 동안 위대한 선수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가 단연 최고이다. 끈질기고 빠르며 눈부신 기술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골도 잘 넣으면서 도움도 잘 올린다. 정말 미쳤다"
# 헤르타 역대 분데스 최다 골 TOP 5
1위 미하엘 프리츠: 84골
2위 에리히 베어: 83골
3위 로렌츠 호어: 75골
4위 마르셀리뉴: 65골
5위 살로몬 칼루: 48골
# 헤르타 역대 분데스 최다 도움 TOP 3
1위 마르셀리뉴: 49도움
2위 미하엘 프리츠: 26도움
3위 하파엘: 23도움
# 헤르타 역대 분데스 최다 공격포인트 TOP 3
1위 마르셀리뉴: 114개
2위 미하엘 프리츠: 110개
3위 로렌츠 호어: 97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