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atasaray

행정가로서 첫 걸음, 갈라타사라이 인턴십 [최호영의 축구행정]

[골닷컴] 최근 대한축구협회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했고, 수많은 인재가 지원했다고 한다. 이렇듯 축구 산업은 많은 팬들이 몸담고 싶어하는 분야이고, 입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칼럼에서는, 오래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필자가 축구 산업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을 다니면서 다른 산업보다 스포츠 산업에 관심이 많았다.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산업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단일 종목으로 가장 큰 세계 대회를 가지고 있고,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국 수가 UN 가입국보다 많기 때문이다. 실제 축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Football is greater than sports’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 규모와 파급력은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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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축구와 관련된 클럽 활동도 열심히 했고, 보통 짧은 인턴십을 하는 3학년 방학 기간 유럽 프로구단 인턴십을 목표로 했다. 일반적인 인턴십 구직처럼 인사팀에 메일 또는 연락을 해서 정보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던 중, 터키 출신 담당 교수님이 갈라타사라이 구단을 소개해주었다. 지원서도 잘 준비하고, 터키 출신 교수님의 추천서가 유효했는지, 실제 항공권과 숙박을 끊어주며 이스탄불로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수십 번의 도전 끝에 인턴십을 시작할 수 있었고, 시작 전부터 구단에서 주는 과제를 준비하여 리서치 인턴이 되었다. 과정 종료 후에도 구단으로부터 받은 과제를 수행하고 제출함으로써 인턴십이 최종 종료될 수 있었다.

제안 받은 과제는 한국의 축구 산업, 시장에 대한 개요와 스폰서십이 가능한 기업 리스트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미국의 축구 시장 동향 파악 등이었다. 당시 갈라타사라이는 2000년 UEFA 수퍼컵(Champions league와 UEFA Cup 통합 챔피언)을 들어올린 제3세계 최초의 클럽으로 유명했다. 그에 걸맞게 아시아와 북미로 시장을 넓히려는 목표도 있었고, 이를 위해 선수도 영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 이후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가 갈라타사라이에서 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문적이진 못하지만 구단의 기본적인 자료 수집 목적이 충족되어 리서치 인턴의 기회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단에서 2주 정도 인턴십을 하면서, 모든 부서를 둘러보고 인사하고 업무 분장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유명 선수들을 만나며, 경기 준비와 1군 팀 홈 경기도 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프랭크 리베리(현 피오렌티나)였다. 험악한 인상의 리베리가 당시 프랑스 23세 대표팀 선수였는데, 주변에 있던 구단 직원들은 그가 아주 유명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꼭 사인을 받으라고 했다.

또 다른 업무로 한국 기업 스폰서의 컨택트 리스트도 만들고, 실제 연락을 하면서 후원 가능성에 대해서도 확인했었다. 국내 타이어 브랜드와도 연결이 되었는데, 조금 더 먼저 접촉했던 이스탄불 지역 라이벌 클럽인 페네르바체 후원이 거의 결정되면서 실제로 갈라타사라이와 계약이 진행되지 못한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 2주년 기념으로 16강에 들었던 국가의 유소년 대표팀 혹은 국가를 대표하는 빅 클럽의 유소년 팀을 초청하는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 갈라타사라이 13세 선수단을 보내는 일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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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기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뭐니뭐니 해도, 갈라타사라이의 터키 수퍼리그 홈 경기였다. 당시에 알리 사미옌(구단 창립자) 구장에서 경기가 있었고, 팬들이 너무나 열광적이라 자주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 악명이 높았다. 수용인원은 24,000명이지만, 매 경기 그 이상의 울트라 아슬란(갈라타라사이 팬들의 공식 명칭)이 입장하는 어마어마한 장소였고, 필자가 관람한 날에도 홍염으로 관중석이 모두 뒤덮였다. 심지어 구단에서 혹시 모를 상황 발생을 대비해, 일개 인턴에게도 안전요원 1명을 따로 붙여줄 정도였다. 다행히 필자가 갔던 경기에서는 홈 팀이 승리해 폭력 사태는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울트라 아슬란은 경기장 주변에서 승리를 만끽하였다. 그렇게 짧은 리서치 인턴 기간이 종료되고, 좋은 경험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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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을 토대로 축구 산업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 갔고, 수박 겉핥기 정도 수준이긴 했지만 실제 유럽 구단의 행정에 대한 전체적인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대한축구협회에서 정책을 만들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축구 산업 종사를 목표로 하는 이들에게 축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어떤 계기로 인해 축구가 자신의 삶이 될 때, 언젠가 축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단 그 삶을 만들기까지, 축구 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어학, 전공과목 수학 등) 등은 갖춰야 한다.

*필자는 인디애나 대학교 켈리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부에서 재무학을 전공, 리버풀 축구산업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2006년부터 7년 간 대한축구협회 기획실, 발전기획팀, 기술교육국에서 근무하였다. 부산아이파크 홍보마케팅 실장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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