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Cantona Manchester UnitedGetty Images

한 장으로 정리하는 '맨유 레전드&악동' 칸토나

[골닷컴] 박문수 기자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간판 공격수. 

육중하다. 중앙 공격수이며, 프랑스 출신 레전드다. 후술하겠지만, 프랑스 대표팀 자체가 당시에는 조금 암흑기였다. 그래서 큰 성과는 없었다.

축구 좀 하게 생겼다. 그리고 무서운 인상은 덤. 누군가에게는 비호감이겠지만, 카라를 세워도 멋있는 선수 중 하나다. 그렇다고 우리의 카라티를 올리지는 말자. 싫어할 사람 많다. 한 성깔 하는 선수로도 유명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술력이 좋았다. 특유의 칩슛 또한 이 선수 시그니쳐 중 하나다.

이쯤 되면 알 것이다. 바로 에릭 칸토나다. 갑작스레 칸토나 얘기를 꺼낸 이유? 그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여파로 대다수 유럽 리그가 멈춘 탓에 레전드들을 향한 관심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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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토나는 어떤 선수?
1966년생이다. 마르세유 출신이며, 오세르에서 프로 데뷔했다. 그렇게 오래 뛰진 않았다. 1997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니, 30대 초반에 축구화를 벗었다. 은퇴 이유도 조금은 황당할 수 있다. 당시 칸토나는 잘 나가는 선수였다. 그리고 정상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칸토나의 뒤를 이어 맨유 7번 주인공이 된 선수가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다.

일단 스타일에 대해 알아보자. 크다. 몸도 크고, 키도 크다. 육중한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유연했다. 흔히 몸싸움을 무기로 전방에서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타깃형 공격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방보다는 조금 아래에서 플레이하는 걸 즐겼다.

퍼스트 터치도 좋았고, 주력도 결코 느린 건 아니었다. 연계 플레이도 좋았다. '트랜스퍼마르크 기준'으로 현역 시절 클럽에서만 그는 123골을 넣었고, 64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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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토나의 주요 커리어는?

  맨유 레전드 이미지가 강하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1991/1992시즌에는 마지막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리즈에 우승컵을 안기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정점을 찍은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이었다. 칸토나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맨유에서 뛰었고, 5시즌 동안 4차례나 프리미어리그 정상을 차지했다. 오늘날 맨유가 잉글랜드 1부리그 최다 우승팀이 될 수 있었던 초석을 마련했다. 이러한 활약상 덕분에 1993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불명예 커리어지만, 1995년 1월에는 일명 쿵푸킥 사건으로 매스컴을 장식했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1995년 1월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길에 오른 맨유의 칸토나는 상대 수비수 리차드 쇼에 대한 파울로 퇴장 판정을 받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을 도발하는 관중을 향해 날라 차기에 이은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순식간에 이성을 잃은 탓에 그는 8개월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 시즌 맨유는 블랙번에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맨유 시절 칸토나가 유일하게 리그 우승을 기록하지 못한 시즌이었다. 

복귀 이후 칸토나는 맨유 주장으로 선임되며,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주장 첫 시즌을 소화한 이후 1996/1997시즌을 끝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래서 올드 팬들은 칸토나에 대해 '짧고 굵었던 선수'로 회상하고 있다.

사진 = 게티 이미지 / 스쿼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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