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에서 1강으로 불릴 정도로 독보적인 성적을 자랑하고 있다. 분데스리가에서 유일하게 통산 1000승을 넘겼고(1111승, 2위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799승), 승점 역시 유일하게 3000점을 넘겼으며(3742점, 2위는 도르트문트 2857점), 골득실도 무려 2079골에 달한다(2위는 도르트문트 681골). 1963년 분데스리가가 시작한 이래로 55시즌 중 바이에른이 50%가 넘는 28회 우승을 독식했다.
이렇듯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를 지배하다시피 하다 보니 역사적으로 전설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하다. 독일 대표팀의 역사가 곧 바이에른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GK 제프 마이어
독일은 골키퍼 왕국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독일을 대표하는 구단 바이에른은 제프 마이어부터 올리버 칸을 거쳐 마누엘 노이어로 이어지는 화려한 골키퍼 계보를 자랑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누가 더 우위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전설적인 골키퍼들이다(노이어는 현역이지만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바이에른으로 국한지어놓고 보자면 마이어는 셋 중 유일한 유스 출신 원클럽맨(칸은 칼스루어, 노이어는 샬케에서 이적해왔다)인 데다가 바이에른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전신) 3연패(1973/74, 1974/75, 1975/76) 주역이다. 출전 숫자도 바이에른 구단 역대 최다(642경기, 참고로 2위는 칸으로 632경기, 3위는 게르트 뮐러 576경기)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안칭의 고양이' 마이어가 구단 역대 최고의 골키퍼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RB 필립 람
독일과 바이에른을 대표하는 역대 최고의 측면 수비수들 중 한 명. 170cm의 작은 신체 조건 속에서도 좌우 측면은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와 측면 미드필더까지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을 정도로 포지션 이해도가 높고 지능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특히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꾸준함의 대명사였고, 바이에른에서 12시즌을 소화하는 동안 부상으로 빠진 경기 수가 단 35경기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철강왕의 대명사였다. 2012/13 시즌 트레블(챔피언스 리그, 분데스리가, DFB 포칼 3관왕) 당시 주장이었고, 바이에른 소속으로 그의 등번호와 똑같은 무려 21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CB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베켄바워의 뒤를 잇는 바이에른의 리베로. 그가 버티고 있었기에 바이에른이 1970년대 황금기 이후 잠시 주춤(1976/77 시즌 7위, 1977/78 시즌 12위, 1978/79 시즌 4위)했음에도 곧바로 1980년대 2차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베켄바워와 함께 바이에른 구단 역대 최장 기간 주장(1984년부터 1991년까지 8년)이었고,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린 필드 플레이어(골키퍼 마이어 제외)들 중에선 유일한 원클럽맨인 데다가 공식 대회 출전 숫자 역시 549경기로 필드 플레이어들 중에선 게르트 뮐러(576경기) 다음으로 많다.
CB 프란츠 베켄바워
카이저(Der Kaiser: 독일어로 황제란 의미)'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바이에른을 넘어 독일 역대 최고의 선수. 선수 생활 초창기엔 중앙 미드필더로 시작해서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한 케이스다. 미드필더로도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으나 수비수 포지션만 놓고 보면 비단 독일을 넘어 축구사 역대 최고로 꼽히고 있다. 다른 포지션에선 역대 최고를 뽑을 때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지만 수비수 부문만큼은 이견이 없을 정도다. 역대 수비수 발롱도르 수상이 총 4번이 전부인데 이 중 2번이 베켄바워(1972, 1976. 그 외 마티아스 잠머가 1996년, 파비오 칸나바로가 2006년 발롱도르 수상)이다. 중앙 수비수가 단순히 수비만 하는 걸 넘어 공격까지 감행하면서 '리베로(Libero: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의미)'라는 포지션을 확립시켰다. 주장직도 아우겐탈러와 함께 가장 오랜 기간(1970년부터 1977년까지 8년간) 수행하면서 바이에른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가 있었기에 바이에른의 유러피언 컵 3연패 위업이 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B 파울 브라이트너
왼쪽 측면 수비수와 중앙 미드필더, 두 포지션에서 모두 월드 클래스급 선수로 평가받았던 멀티플레이어의 표본과도 같은 선수. 1970년, 만 19세의 나이에 혜성처럼 등장해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3연패(1971/72, 1972,73, 1973/74)에 기여했고, 1973/74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주역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유로 1972와 1974년 월드컵 우승에도 크게 기여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큰 경기에 강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빅3(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마이어)만으로는 부족했던 바이에른과 독일 대표팀의 2%를 채워주는 완벽한 퍼즐조각이었다. 1973/74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잠시 외도(1974/75~1976/77)를 했으나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1977/78)를 거쳐 다시 돌아온 그는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에 성공해 침체기에 빠진 바이에른을 다시 중흥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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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아르옌 로벤
2009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바이에른으로 이적해온 이후 정확하게 10시즌을 뛰면서 프랑크 리베리와 함께 더블 에이스로 활약했다. 로벤이 가세하고서야 바이에른이 1970년대의 뒤를 잇는 황금기를 구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 로벤이 뛰는 동안 바이에른은 무려 20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고질적인 잔부상으로 인해 누적 출전 경기 숫자는 여기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중 가장 적지만(309경기) 144골(구단 역대 8위) 101도움(구단 역대 5위)을 기록하며 중요 순간마다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트레블 당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결승골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로벤이었다.
MF 로타르 마테우스
1984년 여름,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바이에른으로 이적해와서 4시즌을 뛴 후 인테르로 이적했다가 다시 4년 만에 바이에른으로 돌아와서 7시즌을 뛰면서 도합 11시즌을 소화했다. 1980년대 바이에른에서 뛰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미드필더로 뛰면서 4시즌 전부 두 자리 수 골을 넣는 득점력을 과시했다. 특히 1987/88 시즌엔 무려 17골을 넣는 괴력을 과시했다. 1992년에 다시 바이에른으로 돌아온 그는 첫 시즌엔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수비수까지 3개의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뛰었으나 이후 리베로로 활약하면서 팀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바이에른 소속으로 11시즌 중 절반이 넘는 7시즌을 수비수로 뛰었음에도 100골 50도움을 기록한 마테우스이다. 괜히 그가 철인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바이에른 유스 출신으로 측면 미드필더에서 시작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거쳐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선수 생활 초창기엔 팀 사정에 따라 좌우 측면 수비수 역할도 소화한 적이 있다. 이렇듯 유스 출신에다가 팀에 헌신하는 선수였기에 바이에른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총 우승 횟수는 18회지만 주요 3개 대회(챔피언스 리그, 분데스리가, 포칼) 우승 횟수만 놓고 보면 16회로 독일 선수 최다이자 리베리와 함께 분데스리가 선수 역대 공동 1위이다. 바이에른에서의 공식 대회 통산 기록은 500경기 68골 101도움.
LM 프랑크 리베리
2000년대 바이에른의 절대적인 에이스. 2000년대 중반, 잠시 주춤하던 바이에른을 다시 황금기로 이끌었다. 바이에른 선수들 중 가장 많은 24회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주요 3개 대회 우승 횟수도 16회로 슈바인슈타이거와 함께 공동 1위다. 바이에른에서 12시즌을 뛰면서 공식 대회 425경기에 출전해 124골 182도움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괜히 그가 바이에른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게 아니다. 물론 로벤과 함께 더블 에이스로 불리긴 했으나 적어도 바이에른에서만큼은 리베리의 위상이 로벤보다 더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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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칼-하인츠 루메니게
1974년, 만 20세의 나이에 바이에른에서 데뷔한 그는 황금기 선배들과 함께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에 기여했다(바이에른의 유러피언 3연패 중 첫 우승 당시 루메니게는 보루시아 립슈타트 소속이었다). 이후 위대했던 선배들이 하나 둘 떠나자 그는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자칫 암흑기에 빠질 수도 있었던 바이에른을 지탱해주었다. 1974/75 시즌부터 1983/84 시즌까지 정확하게 10시즌을 뛰면서 바이에른 소속으로 420경기에 출전해 217골 66도움을 올렸다. 특히 1980년과 1981년엔 발롱도르 2연패를 달성하면서 '미스터 발롱도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남미에 디에고 마라도나와 지쿠가 있었다면 유럽엔 미셸 플라티니와 루메니게가 있었다. 현재는 바이에른 CEO 직을 수행하면서 팀에 기여하고 있다.
FW 게르트 뮐러
'폭격기'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득점기계. 1970년대 바이에른 황금기를 견인했던 삼인방 중 한 명으로 축구사를 통틀어 손가락에 꼽히는 득점력을 과시했다. 실제 그는 바이에른 소속으로 576경기에 출전해 515골 106도움을 기록했다. 경기당 1골에 육박하는 득점력이다. 게다가 분데스리가에선 유일하게 단일 시즌 40골(1971/72 시즌)을 기록했다. 분데스리가에서 30골 이상을 넣은 시즌도 무려 5시즌에 달한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30골 이상을 기록한 적이 총 11번 있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를 게르트 뮐러 홀로 독식한 셈이다. 게다가 단일 시즌 최다 골 1위부터 3위까지가 모두 게르트 뮐러의 기록이다(1971/72 시즌 40골, 1969/70 시즌 38골, 1972/73 시즌 36골).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도 독보적인 최다에 해당한다(2위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4회). 득점에 있어선 독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라고 할 수 있겠다. 더 놀라운 건 그가 단순히 골만 많이 넣은 게 아닌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면서도 바이에른 필드 플레이어들 중에선 역대 최다 출전을 기록하면서 신체적인 강인함을 동시에 자랑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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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에른 구단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들 명단(1군 기준)
콘라드 하이드캄프(1928-1936)
제프 마이어(1962-1979)
프란츠 베켄바워(1964-1977)
게르트 뮐러(1964-1979)
한스-게오르그 슈바르첸벡(1966-1981)
프란츠 로트(1966-1978)
울리 회네스(1970-1979)
파울 브라이트너(1970-1974 & 1978-1983)
칼-하인츠 루메니게(1974-1984)
클라우스 아우겐탈러(1976-1991)
로타르 마테우스(1984-1988 & 1992-2000)
슈테판 에펜베르크(1990-1992 & 1998-2002)
메멧 숄(1992-2007)
올리버 칸(1994-2008)
지오반니 에우베르(1997-2003)
비센테 리자라쥐(1997-2004 & 2005-2006)
필립 람(2002-2003 & 2005-2017)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2002-2015)
Go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