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김현민 기자 = 독일 축구 서포터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던 디트마르 호프 호펜하임 구단주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진행 중에 있다. 또한 그는 인신공격으로 가득 찼던 '안티 호프(Anti Hopp)' 운동을 전개한 타 클럽 서포터들에 대해 "과거는 잊고 싶다"라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기 이전이었던 3월 초만 하더라도 독일 전역에 위치한 프로 구단들에선 집단적으로 '안티 호프'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호프는 바로 독일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사 SAP 창립주로 호펜하임 구단주를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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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아래와 같다. 원래부터도 호프는 독일 프로 축구 서포터들 사이에선 암적인 존재였다. 이는 독일 프로 축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50+1 룰'에 기인하고 있다. 독일은 제도적으로 구단 구성원과 팬들이 클럽 지분의 51%를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특정인이나 특정 기업이 해당 구단을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 이는 독일 프로 축구 구단은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팬을 위한 구단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예외 조항이 발생했다. 2014년 구단주 회의에서 20년간 아무런 조건 없이 구단에 지속적으로 지원을 한 개인 혹은 기업에 한해서 그 순수성을 인정해 50+1 룰을 깰 수 있도록 허용한 것. 이에 1989년부터 호펜하임을 지원해온 호프가 2015년 96%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구단 소유주(구단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뒤이어 하노버 역시 1997년부터 구단을 지원해온 미하엘 킨트 회장이 2017년 50+1 예외 구단이 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독일 축구협회(DFB)로부터 호프와 달리 지원이 미비했다는 이유로 기각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비록 하노버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미 호프가 호펜하임 개인 구단주로 등극했고, RB 라이프치히라는 다소 기형적인 형태의 부자 구단도 분데스리가에 등장했다(라이프치히는 구단 지분을 레드 불 회사 직원들이 나눠가진 형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다른 구단 서포터들이 호프를 50+1 룰을 깨는 대표로 설정해 야유에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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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시만 하더라도 호프를 향한 야유는 간혹 도를 넘는 경우들이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국지적 간헐적으로 발생할 뿐이었기에 큰 문제로 대두되지는 않고 있었다. 문제는 독일 프로 축구 리그 클럽들 중 베르더 브레멘과 함께 50+1을 가장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도르트문트 서포터들이 지속적으로 호프를 비하하는 플래카드를 걸곤 했었는데 2019년 12월 20일에 열린 전반기 최종전 호펜하임 원정 경기에서 다시 문제가 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이에 DFB는 도르트문트 서포터들에게 향후 2년간 호펜하임 원정을 금하는 징계를 내렸다.
이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DFB 전임 회장 라인하르트 그린델은 2017년에 "앞으로 분데스리가에서 팬들의 경기장 출입을 제한한다거나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식의 집단 징계 정책을 더는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공언했다. 죄를 지은 서포터들을 색출해 강도높은 징계를 내리더라도 일부로 인해 전체가 피해를 보게 하지는 않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도르트문트 서포터들에게 집단 징계가 떨어진 것.
물론 이는 2019년 11월, DFB에 새로운 회장(프리츠 켈러)이 선임되면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타 클럽 서포터들 입장에선 호프가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도르트문트를 넘어 타 클럽 서포터들까지 단체로 '안티 호프' 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Goal Korea안티 호프 운동이 절정에 다다른 건 바로 지난 2월 29일에 열린 호펜하임과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24라운드 경기에서였다. 당시 호펜하임으로 원정을 떠난 바이에른 서포터들은 호프 얼굴에 욕설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이에 경기는 두 차레나 중단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 마지막 10분 동안에는 바이에른과 호펜하임 선수들끼리 하프 라인 부근에서 패스 주고 받기를 하면서 서포터들의 행동에 보이콧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경기가 끝나고 한스-디터 플릭 바이에른 감독과 칼-하인츠 루메니게 CEO는 호프에게 사과를 하면서 원정을 온 바이에른 서포터들의 행동에 "추악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호프 역시 "그들이 내게 뭘 원하는지 안다면 내가 더 쉽게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왜 이렇게 공격적인지 모르겠다. 독일 축구의 암흑기를 떠올리게 한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어진 25라운드에서도 분데스리가를 넘어 2부 리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호프와 DFB를 공격하는 문구와 걸게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독일 축구 서포터들의 집단 움직임에 제동을 건 건 징계가 아닌 코로나19였다. 당초 DFB는 분데스리가 26라운드를 무관중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확산세를 보이자 리그 중단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어느덧 코로나19로 시즌이 중단된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마지막 분데스리가 경기는 3월 11일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 쾰른의 라인 더비였다).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전보다 더 빠르게 전개되면서 독일 내에서만 9만명이 넘는 확진자(96,108명)가 발생했다는 데에 있다. 이에 당초 4월 초에 분데스리가를 재개하기로 DFB는 5월 초로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호프는 독일 굴지의 제약회사 'CureVac'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에 있다. 그는 2012년 9월, 8,000만 유로(한화 약 1,068억)를 투자해 CureVac 주식을 사들였다.
호프는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관련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가을부터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선 더 기다려야 한다"라고 전망했다. 프리드리히 폰 볼렌 박사는 독일 잡지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정성과 허용성 및 효과성을 입증하고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초여름부터 사람들에게 백신 임상 실험을 할 수 있다. 만사가 잘 풀린다면 올해 말에는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호프는 독일 제2 공중파 채널 'ZDF'에서 진행하는 스포츠쇼 '스포르트스튜디오'에 출연해 본인에게 욕설 및 야유를 쏟아냈던 타팀 극렬 서포터들과 관련해 "내 자신을 상업화의 대표격으로 못박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프레임이 너무 완벽하게 꾸며지는 바람에 많은 클럽의 서포터들이 이러한 불미스러운 행동에 참여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지금부터 다시 역사가 시작한다면 이 모든 일을 다 잊고 싶다. 이유없이 13년 동안 날 모욕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런 행동을 멈춘다면 행복할 것이다. 앞으로는 지난 66년간 지속되어온 호펜하임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라며 화해의 제스쳐를 보냈다.
독일 축구 서포터들이 50+1 완화 움직임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건 분명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는 독일 프로 축구의 근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DFB가 말바꾸기를 한 부분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할 여지가 있다. 다만 그 대상이 호프에게 향하는 건 문제가 있다. 미하엘 초어크 도르트문트 단장 역시 "팬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서포터들의 집단 행동을 지지하면서도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은 멈춰야 한다. 이에 대해선 서포터들 사이에서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는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극우주의자들이 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다"라며 호프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성 야유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