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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펠레, 네이마르의 우상 호비뉴 [축구계슈가맨을찾아서#32]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선수들. 혹은 큰 기대를 받고도 이를 채우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춘 선수들까지. 그래서 준비했다.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소식은 접하기 힘든 선수들. 축구계 슈가맨들을 재조명하겠다

[골닷컴] 박문수 기자 = 축구 좀 하는 브라질 선수들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제2의 펠레다.

펠레는 세계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펠레가 이룬 업적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브라질 한정으로, 펠레를 넘을 선수는 없을 것이다. 기록에서도, 우승에서도, 그만큼 펠레는 압도적인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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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선수 또한 제2의 펠레 후보 중 하나였다. 게다가 산투스 출신이다. 일찌감치 브라질 대표팀에서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고 A매치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다. 네이마르의 우상으로 꼽힌다. 브라질 대표팀 일원으로 14년간 활약했고 세 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모두 주연이었다. 물론 컨페드컵은 이벤트성 대회에 가깝지만. 이번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에서 다룰 선수는 브라질 제2의 펠레 호비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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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비뉴는 누구?
1984년생이다. 펠레의 친정팀으로도 유명한 산투스 출신이다. 브라질 출신 유명 스타 플레이어들이 리우 데 자네이루 출신인 것과 달리, 호비뉴의 경우 상파울루 주 상비센치 태생이다. TMI지만 펠레의 경우, 산투스 출신임에도, 파울리스타주가 아닌 미나스레라이스주에서 태어났다. 펠레 그리고 호비뉴와 함께 산투스 출신 네이마르의 경우 상파울루 주에서 태어났다.

Robinho - Santos x Internacional 110214Getty Images
시작은 산투스였다. 현재는 플라멩구 소속의 디에구와 함께 브라질 최고 기대주로 꼽혔고, 서서히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2005년에는 레알 마드리드 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시기 호비뉴는 브라질 대표팀 일원으로 나섰던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더욱 주가 상승했다. 일찌감치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치면서 데뷔 초반 네이마르 이상의 기대치를 받았던 선수가 바로 호비뉴였다.

참고로 이 선수, 너무나도 동안인 외모 때문에, 국내에서는 '초딩요'라고도 불렸다.

# 선정 이유
재능은 뛰어났지만, 이를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여러모로 상징적인 선수다. 만수르 체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출범 신호탄을 쐈고, AC 밀란에서도 입단 두 번째 시즌까지는 이브라히모비치의 파트너로 나서면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그렇게까지 부진한 건 아니었다. 다만 에이스라는 느낌이 없었다. 같은 산투스 출신 네이마르보다 스타성도 떨어진 게 흠이었다. 2007/2008시즌 레알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호날두 트레이드 카드로 거론되면서 구단과의 관계가 틀어진 게 문제였다.

그렇게 맨시티로 이적하면서 모든 게 꼬였다. 지금이야 강팀 이미지가 있지만, 호비뉴의 맨시티 이적은 당시 큰 논란이었다. 적어도 브라질에서는 에이스 대접을 받던 호비뉴였기에 충격적인 선택이었을지도. 그리고 보기 좋게 맨시티 먹튀 후보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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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커리어
산투스 시절 호비뉴는 브라질 전국리그에서만 108경기에 나와 47골을 가동했다. 덕분에 캄페오나투 세리에A(브라질 1부리그)에서만 두 차례나 정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때마침 스타 플레이어 영입에 한창이던 레알의 페레스 회장 눈에 띄며, 2005년 레알 입성에 성공했다.

이때만 해도, 기대감이 상당했다. 바르셀로나 그리고 아르헨티나 대표팀 공격수 리오넬 메시의 라이벌로도 불렀다. 모두가 알겠지만, 호비뉴와 메시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 물론 메시와 달리, 호비뉴는 브라질 에이스로서 3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Robinho - Real MadridGetty
레알 입성 후 비교적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2007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 우승을 이끌며, 차세대 삼바군단 에이스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치른 2007/2008시즌 슈스터 체제에서 레알의 핵심 플레이어로 중용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호날두 영입을 위해 호비뉴가 트레이드 카드로 나왔다는 설이 제기되면서 구단과의 관계가 냉랭해졌다. 호비뉴는 이적을 선언했고, 첼시행이 유력했지만, 막판 협상 과정에서 틀어졌다. 그렇게 이적한 팀이 바로 맨시티였고, 이는 악수가 됐다. 프리미어리그 입성 초기만 해도, 클래스를 보여줬지만 두 번째 시즌부터 눈에 띄게 폼이 떨어졌다. 남아공 월드컵 준비를 이유로, 산투스로 임대를 떠났고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했다.

Robinho - MilanGetty Images
월드컵 후에는 맨시티를 떠나 AC 밀란에 입성했다. 첫 시즌 활약상은 좋았다. 이브라히모비치의 파트너로 나서면서 밀란의 세리에A 우승을 도왔다. 두 번째 시즌 중반부터 폼이 떨어졌고, 등번호 7번을 단 2012/2013시즌부터는 계륵이 됐다. 그렇게 또 한 번 산투스로 임대 됐고, 2015년 광저우로 이적하며 빅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호비뉴는 아틀레티코 미네이루와 시바스포르에서 뛰었고, 지난 시즌 터키 슈퍼 리그의 이스탄불 바삭셰히르에서 한 시즌 활약한 이후, 무적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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