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ier Saviola박성재 디자이너

'제2의 마라도나'&'그라운드의 토끼' 사비올라[축구계슈가맨을찾아서#5]

▲ 2001 20세 이하 월드컵 최고의 슈퍼스타 하비에르 사비올라
▲ U 20 월드컵 때와 달리 기대 이하의 성장세 보여줘
▲ 2016년 현역 은퇴 이후 안도라 클럽 오르디노의 코치로 부임

[골닷컴] 박문수 기자 = 2001년 여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은 한 선수만을 위한 대회였다.

당시 이 대회에 나섰던 선수진을 살펴 보면 쟁쟁하다. 로번을 비롯해 아드리아누와 카카 그리고 마이콩 그리고 판 데르 파르트가 자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나섰다. 필립 멕세와 지브릴 시세 그리고 마이클 에시엔도 빼놓을 수 없다. 체코의 페트르 체흐 또한 이 대회에 출전했던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이 선수 중 가장 빛난 별은 바로 사비올라다. 이 대회에서 사비올라는 11골이나 터뜨렸다. 2위를 기록한 브라질의 아드리아누와 프랑스의 지브릴 시세(이상 6골)보다 무려 5골이나 더 넣었다.

아르헨티나는 물론 전 세계가 들썩였다. 단신의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마라도나의 향수를 느끼게끔 했다. 물론 두 선수 플레이 스타일은 많이 다르지만.

이번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5번째 선수는 바로 사비올라다. 엘 코네호 일명 토끼로 불렸던 사비올라는 어떤 선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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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비올라는 누구?
1981년생이다. 작은 키를 무기로 정교한 드리블 돌파 능력이 돋보인다. 당시만 해도 동안 외모를 자랑했다. 오르테가를 비롯한 수 많은 아르헨티나 제2의 마라도나 중 한 명이었다. 

리베르 플라테에서 프로 데뷔해 리베르 플라테에서 은퇴했다. 유럽 첫 클럽은 바르셀로나였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으며 피구에 이어 21세기 바르셀로나에서 레알로 이적한 두 번째 선수가 됐다. 이적 당시 피구와 달리, 바르셀로나에서의 입지가 좋지 않았던 탓에 큰 비난은 없었다.

여러 클럽을 전전한 끝에 2016년 자신의 친정팀 리베르 플라테에서 현역 은퇴했다. 그리고 안도라 클럽인 오르디노에서 코치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 선정 이유
전성기 자체가 짧은 건 아니었다. 워낙 데뷔 시즌 자체가 센세이셔널했을 뿐, 그 이후 활약상도 그다지 나쁜 건 아니다. 

사비올라의 소속팀은 다름 아닌 바르셀로나였다. 누구를 기다려줄 여유 있는 클럽이 아니다. 팀의 꾸준한 영입으로 갈 길 잃은 그는 20대 중반부터 방황했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사비올라 스스로 축구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쟁쟁한 기대주들이 아르헨티나 스쿼드를 메우면서 존재감이 잊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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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는 언제?
어렸을 때 활약상이 더 좋았다. 정점을 찍은 건 2001년 자국 20세 이하 월드컵에서였다. 당시 리베르 플라테 소속의 사비올라는 이 대회에서만 11골을 가동하며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아르헨티나의 우승 그리고 골든볼과 득점왕까지 거머쥐었다.

그 해 여름 사비올라는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었다. 히바우두와 클라위베르트라는 당대 최고의 공격진이 있었음에도, 사비올라는 입단 첫 시즌 라 리가 36경기에서 17골을 가동했다. 

Javier Saviola BarcelonaGetty

이러한 사비올라의 활약상 때문에, 2002 월드컵 당시 그의 최종 엔트리 탈락이 조금은 논쟁이었다. 물론 당시 아르헨티나는 이미 정상급 공격수들이 즐비했다. 혹자는 노장 공격수 카니자를 대신해 사비올라를 넣어야 했다고 주장했지만, 카니자는 비엘사 체제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던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지 않았다면, 나오지도 않았을 논쟁이다. 

2002 월드컵 이후 히바우두가 AC 밀란으로 떠나면서 더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히바우두 공백을 메우지는 못했다. 클라위베르트와 투 톱을 맞췄지만, 히바우두의 빈 자리가 너무 컸다. 리켈메 합류로 노렸던 공격진 개편도 실패했다.

그럼에도 사비올라는 2004년 축구 황제 펠레가 선정한 FIFA 탑 100 플레이어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해당 명단은 현역 선수 대상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사비올라 이외에도 베론과 파사레야 그리고 켐페스와 디 스테파노, 마라도나가 이름을 올렸다. 얼핏 봐도 굉장한 선수들의 집합소다. 100명의 선수를 통틀어 가장 어린 선수가 바로 사비올라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완벽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2003년 호나우지뉴를 시작으로, 바르셀로나가 공세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입지를 잃었다. 바로 전 시즌 모리엔테스처럼 모나코 임대 이적으로 반등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이후 세비야로 둥지를 옮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Javier Saviola Argentina
# 주요 성과는?
첫 번째는 2001년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이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고, 골든볼을 차지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나섰다. 2004년과 2005년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드컵에서는 브라질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2006 월드컵에서는 크레스포와 투톱을 맞추며 주전 공격수로 나섯다.

선수 개인으로는 1999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비롯해, 1999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 그리고 2001년 20세 이하 월드컵을 통해 수상한 골든슈와 골든볼이 정점이었다. 2010년에는 포르투갈 골든볼을 수상했다. 2009년 12월에는 포르투갈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4년에는 앞서 언급했던 FIFA 100인의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얼핏 봐도 알겠지만 어린 시절 성과가 더 좋았다. 벤피카에서 잠시 반등했지만, 이 또한 길지는 않았다.

# 최근 근황은?
2012년 사비올라는 말라가 이적으로 라 리가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올림피아코스와 엘라스 베로나를 거쳐 2016년 친정팀 리베르 플라테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018년에는 풋살 선수로 잠시 복귀했지만, 현재 사비올라의 직업은 안도라 클럽 오르디노 수석 코치다. 다만 클럽 자체가 축구 변방에 위치한 만큼 별다른 정보는 없다. 사비올라 자체가 SNS에 열중하는 편도 아니라, 가끔 가족 사진 정도만 올라오는 정도다. 혹은 리베르 플라테 시절에 대한 회상 정도?

슈가맨 6번째 힌트
#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다음 주자는 누구?
가장 잘 나갔을 시절, 박지성과 자주 비교되던 선수다. 구소련 출신이다. 독일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이름값을 알렸고 런던 소재 클럽으로 이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분명 잘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잘못된 이적이 선수 커리어를 망쳤다. 기회는 못 잡았지만, 오히려 트레블이라는 좋은 성과를 얻게 됐다. 독일에 있는 친정팀 복귀를 통해 부활을 노렸지만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이후 말 그대로 여러 클럽을 전전했다. 임대 포함 총 19번이나 이적을 거듭했다. 의도치 않은 저니맨이 됐다.  전성기는 일찍 꺾였지만 대신 롱런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안정적인 드리블 그리고 폭발력 있는 움직임이었다.

사진 = 게티 이미지
그래픽 = 골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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