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박문수 기자 = 잘 생겼다. 정말 잘 생겼다. 조각상 같은 외모. 패셔니스트.
데이비드 베컴은 소위 말하는 잘생긴 축구 선수다. 너무 잘 생겼다. 단점이라고는 외모와 너무 다른 목소리?
베컴은 헌신적이다. 날카로운 킥력은 물론이고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한다. 한때 세계 4대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다만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도 외모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한 케이스다. 그렇다고 무시당한 수준은 아니지만.
1975년 5월 2일은 잉글랜드 축구에 여러모로 의미 있는 날이다. 바로 잉글랜드의 전설 베컴이 태어난 날이다.
본 매체 '글로벌 에디션' 또한 사진 한 장과 함께 전설 베컴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멋진 외모 때문에 저평가된 선수. 현역 시절 베컴은 어떤 선수였을까? 3가지로 요약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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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컴은 맨체스터 출신이다?
정답은 '아니오'다. 베컴의 첫 번째 클럽은 리즈웨이 로버스다. 해리 케인도 이 클럽 출신이다. 심지어 베컴은 토트넘 홋스퍼에서도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1988년이 되어서야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참고로 베컴의 경우 프로 데뷔 이후, 줄곧 맨유에서만 뛴 건 아니다.(프리미어리그 기준) 1995년 베컴은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에서 임대 생활을 보낸 적이 있다.
1998/1999시즌 맨유의 트레블을 이끌었다. 토트넘과의 리그 최종전에서도 '캄노 우의 기적'으로 불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맨유는 베컴의 오른발 덕분에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발롱도르와 연은 없었다. 팀 성적으로는 베컴이 앞서지만, 1999년 히바우두는 선수 개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
# 베컴은 킥력만 좋다?
베컴의 전매특허는 세트피스다. 시원시원한 동작이 돋보인다. 포물선을 그리는 궤적 또한 남다르다. 그리스와의 2002 한일 월드컵 예선전에서는 결정적인 순간 그림과 같은 프리킥 골로 잉글랜드의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베컴의 1골 1도움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잉글랜드. 놀라운 건 이 경기 베컴의 활동량이다. 당시 베컴은 16.1km를 뛰었다
이외에도 베컴은 시야도 넓었다. 기본적으로 킥력이 좋았기 때문에, 필요한 곳을 향해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는 선수였다. 여기에 박스 투 박스형 미드필더 못지않은 활동량을 자랑한다. 온 더 볼에서도 위협적이지만, 오프 더 볼에서도 부지런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베컴은 킥력만 좋은 선수가 아니다. 킥력이 워낙 좋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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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컴의 커리어는?
이름을 알린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였다. 잘생긴 잉글랜드 출신 선수의 등장 그리고 맨유의 등번호 7번까지.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스콜스 그리고 긱스 등과 함께 맨유 황금기를 이끌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만 6회 우승을 기록했다. 프로 데뷔 이후 베컴은 맨유 소속으로 12개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2003년 여름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겼다. 갈락티코 1기 구성원 중 한 명이었지만, 당시 레알은 빛좋은 개살구였다. 레알에서 베컴의 우승 기록은 2006/2007시즌 라 리가 우승이 전부다. 2003년 슈퍼컵 우승도 있긴 하지만.
이후 베컴은 LA 갤럭시행을 택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LA에서 뛰었다. 대신 2009년과 2010년 이탈리아의 AC 밀란에서 임대 생활을 보냈다. 밀란 입성 당시 베컴은 오른쪽 측면이 아닌 메짤라 위치에서 경기에 나섰고 빼어난 킥력을 무기로 밀란 중원에 힘을 보탰다. 2009년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2010년에는 부상으로 밀란 임대 생활을 조기에 마감했다. 선수로서 월드컵 출전도 무산됐고.
2012/2013시즌에는 PSG에서 현역 은퇴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리고 해당 시즌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프로 데뷔 기준 맨체스터를 거쳐 마드리드와 LA 그리고 밀라노에서 활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