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정재은 기자=
김현우(21, 디나모 자그레브)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다. 그중 첫 번째는 프로 무대 데뷔다. 2년 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뛰어든 그는 체격이 월등히 큰 동료들 사이에서 무한경쟁 중이다. 2군에서는 주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1군 무대는 여전히 커다란 목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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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 제게 목표가 있다는 뜻이잖아요”라며 김현우는 웃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버틸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고된 경쟁이 느껴진다. 데뷔 후에는 유럽에서도 아시아 수비수가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단다.
불가능한 일일까? 지난해 여름 그는 한국의 U-20 대표팀과 함께 세계 무대에서 싸웠다. 정정용 감독(현 서울이랜드)준우승이라는 기적 같은 성과를 냈다. 지난 1월 자그레브는 임대생이었던 그를 완전 영입했다. 김현우의 고된 길의 끝에선 늘 긍정적인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그가 이어나가는 도전의 끝도 다르지 않을 거다. <골닷컴>이 김현우의 이야기를 전한다.
Goal KoreaGOAL: HNL(크로아티아 1부 리그)의 새 시즌이 시작됐어요. 프리시즌 어떻게 보냈나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시즌이 늦게 종료됐어요. 그래서 프리시즌이 거의 없었어요. 곧바로 새 시즌이 시작됐죠. 1군에서 부르면 부르는 대로, 2군에서 부르면 부르는 대로 훈련하며 시간이 빨리 흘렀어요. 프리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새 시즌이 시작된 거죠.”
GOAL: 한국도 다녀오지 못했겠네요
“그렇죠. 한국에 가면 기분전환도 하고 휴식을 푹 취하고 올 수 있는데 못 가서 아쉬워요. 몸은 괜찮은데, 아무래도 다녀왔을 때의 그런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해서 아쉽죠.”
GOAL: 다른 동료들도 다 고향에 다녀오지 못했나요?
“다녀온 선수들도 있어요. 코로나19로 2군 일정이 지난 시즌에 다 취소돼서 각자 고향에 다녀오는 선수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곧바로 1군에 합류해서 갈 새가 없었죠. 1군 일정이 끝난 후에 다시 2군과 시즌 준비에 돌입했고요.”
GOAL: 한국에 못 간 대신 1군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겠네요?
“아쉬운 마음이 좀 커요. 그때 이미 자그레브가 우승을 확정지은 상황이어서 데뷔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기회가 안 와서 더 아쉬웠어요. 물론 제가 부족하니까 못 뛰었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부족한 점을 찾아서 보완하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잘 준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쨌든 저의 목표는 데뷔였는데, 데뷔를 못 했다는 건 아직 목표가 남아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죠.”
GOAL: 말대로 지난 시즌 1군 막판 두 경기에서 벤치에 앉았어요. 그때 어땠나요?
“초조했어요. 계속 벤치에만 앉아있으니까요.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워밍업하라는 사인이 안 오고, 교체 카드는 계속 사라지고... 요즘 계속 더 초조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니까 더 조급해지나 봐요. 긴장도 더 많이 되고요.”
Goal KoreaGOAL: 1월에 완전 이적을 했어요. 자그레브에서 완전 이적을 원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동양인이라 다른 선수들에 비해 왜소한 편이에요. 그래도 힘 있는 선수들이 가지지 않은, 제가 가진 장점을 높이 평가해줬다고 생각해요. 수비 커버 플레이나 빌드업 상황에서 좋은 패스를 연결해주는 게 저의 장점이에요. 그런 점을 통해 가능성을 봐준 것 같아요.”
GOAL: 감독 및 코치진은 평소 어떤 말이나 조언을 해주나요?
“저를 아직 어린 선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감 있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해줘요. 제가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닌데(웃음).”
GOAL: 보통 성장하는 유소년 선수에게 해주는 말이네요. 그래도 그런 말 덕분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제가 원래 눈치를 엄청 많이 보는 성격이었어요. 근데 여기선 눈치를 안 봐요. 오히려 더 편하게 축구 하고 있어요. 나이가 많은 형들도 저를 귀여워해 주고, 심리적으로 편하게 축구 하고 있어요.”
GOAL: 울산현대, 전남드래곤즈 등에서 뛰었던 오르샤도 같은 팀이잖아요. 많이 챙겨줄 것 같아요!
“그렇죠. 오르샤가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저한테 맨날 김치 있냐고 물어봐요. 온라인으로 라면도 사더라고요. 제가 1군 훈련에 합류하면 오르샤가 항상 챙겨주고,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요. 제가 맨 처음에 1군에 합류했을 때 모르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오르샤가 다 설명해주고, 주눅 들지 말라고 했어요. 형들이 다 저 좋아해 준다고요. 고마웠죠. 오르샤도 팀에서 잘하고 있는 선수니까 더 든든했고요.”
GOAL: 김치를 많이 나눠줘야겠네요
“김치가 좀 비싸서...하하. 제가 담그면 나눠주는데, 요새는 너무 더워서 김치 담글 엄두가 안 나요. 요즘 영상 32, 33도 정도 되거든요. 너무 더워요. (GOAL: 그렇게 더울 때는 몸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냉욕하고, 반식욕하고 그래요. 음식보다는 그런 식으로 관리하는 걸 좋아해요. 운동 끝나고 집에 와서 바로 냉욕하고.”
Goal KoreaGOAL: 지난해 U-20 월드컵에 합류했을 때 유럽 경험을 바탕으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실제로 도움이 됐나요?
“유럽 선수들의 경기 템포에 조금 익숙해져서 그런지 좀 편하게 뛰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GOAL: 반대로 U-20 월드컵 경험이 자그레브에서 또 도움이 되고 있나요?
“그런 세계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돌아왔어요. 자신감이 오르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죠. 제가 자그레브로 돌아왔을 때도 선수들이 막 애국가 틀어주고 축하해주고 그랬어요.(웃음)”
GOAL: 축구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 보죠. 자그레브에서 벌써 2년 정도 지냈어요. 이곳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편해졌어요. 이제 언어 문제도 거의 없고요.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의사소통은 다 되고 있어요. 한식당도 두 군데나 있고, 요리하는 데도 문제없고, 친구들도 다 좋아요. 제가 같은 팀 (김)규형이랑 같이 지내는데 같이 게임하고, 영화 보고, 대화도 많이 나눠요. 그게 고마운 것 같아요.”
GOAL: 크로아티아어를 배웠나요? 아니면 영어로 대화하나요?
“영어를 써요. 처음에는 영어를 못했는데, 구단에서 크로아티아어 대신 영어를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향후에도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크로아티아어는 경기장에서 필요한 것들은 좀 알아들어요. 수비수 누가 간다, 누가 붙는다, 뒤로, 옆으로, 점프 이런 것들이요.”
GOAL: 평소 요리도 즐겨하는 편인데 한국에서도 원래 요리를 좀 했나요?
“요리를 좋아해요. 한국에서는 거의 안 했죠. 숙소에서 밥이 다 나오니까요. 크로아티아에 와서 처음 하기 시작했는데 적성에 잘 맞아요. 재밌고, 맛도 있는 것 같아요, 하하. (GOAL: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맥적구이요! 다른 선수들한테 해줬더니 맛있어해요.
Goal KoreaGOAL: 이야기를 쭉 들어보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힘든 점도 있었나요?
“처음에 왔을 때 언어가 잘 안 되어서 힘들었죠. 지금은 프로 데뷔를 얼른 하고 싶은데 기회가 잘 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가끔 받아요. 그럴 때면 K리그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22세 이하 룰로 기회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K리그 무대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크로아티아 리그는 많은 사람에게 생소한데, 그곳에서 보여준 게 없으니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에게 죄송해요. 월드컵이 끝난 후 저를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좀 힘들죠.”
“좀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자그레브가 셀링구단이라 항상 크로아티아의 어리고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거든요. 어제도 한 명 새로 들어왔고요. 그런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키우려고 하다 보니 외국인 입장에서 좀 속상할 때가 있어요. 작년 U-20 월드컵에 합류하기 직전에 그런 속상함이 가장 컸어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GOAL: 그런 상황에서 U-20 월드컵에 다녀온 게 신의 한 수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네. 정정용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죠. 감독님은 저의 그런 상황을 모르셨을 텐데,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GOAL: 그렇게 힘들거나 슬럼프가 올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처음에는 제가 축구가 마냥 좋아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저만의 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족이 있잖아요.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고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가족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요.”
GOAL: 가족을 못 만난 지 꽤 됐을 것 같은데, 연락 자주 하겠어요
“사실 제가 잘하고 있을 때 연락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연락을 자주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어머니는 자주 연락하라고 하시는데, 저는 좀 잘할 때 기분 좋게 연락하고 싶어요.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을 때 연락하면 그냥 힘든 얘기밖에 안 하게 될 것 같아서, 그럼 어머니가 걱정하시잖아요.”
GOAL: 굉장히 성숙한 것 같아요. 형제가 있으면 맏일 것 같은데?
“형만 두 명이에요, 하하. 삼 형제 중에 막내죠. 형들이랑 일곱 살, 열 살 차이 나요. 아무래도 제가 이곳에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좀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Goal KoreaGOAL: ‘내가 유럽에서 더 버텨봐야지’라고 생각이 든 지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게 조금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잖아요. 모두 유럽에 오고 싶어 하는데. 정말 저보다 대단하고 잘하는 형들도 나오고 싶어 하는 유럽인데, 제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돌아가는 것도 아까울 것 같고요. 힘든 와중에도 배우는 점이 많거든요. 나중에 어떻게든 다 도움이 될 것 같아요.”
GOAL: 그럼 이곳에서 뭔가 보여주기 위해 꼭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요?
“여기는 압박이 굉장히 빨라요. 그래서 공이 오기 전에 미리 생각해야 해요. 더 빨리 생각하고, 영리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또, 저는 수비수이다 보니까 뭘 하든 피지컬이 받쳐줘야 하잖아요. 피지컬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GOAL: 1년 전쯤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작년 U-20 월드컵 때보다 4kg이 더 늘었어요. 웨이트에 집중하고, 종일 먹고, 고기 많이 먹고 그랬어요. 저는 살이 안 찌고 오히려 빠지는 체질이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데 저번에 경기하다가 저랑 부딪힌 선수가 확 날아가더라고요.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심 뿌듯했어요. 아,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아직 많이 부족해서 더 키워야죠.”
GOAL: 그렇다면 올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요?
“데뷔해야죠. 뛰고 싶어요, 1군 무대에서. 뛰면서 뭐가 다른지도 느껴보고 싶어요. 아시아 수비수도 유럽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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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 마지막 질문입니다. 데뷔라는 목표가 남아있기 때문에 늘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어요. 그 목표를 이룬 후엔 어떤 새로운 목표가 생길까요?
“그냥, 많이 뛰고 싶어요. 뛸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또 저희 팀이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 저 역시 그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어요. 아, 상상이 잘 안 되긴 하는데 그냥 마음껏 뛰고 싶은 게 저의 다음 목표예요. 챔피언스리그 역시 저의 꿈이고요. 열심히 헌신하는 수비수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김현우 제공, 디나모 자그레브 홈페이지, Getty Images, 대한축구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