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박병규 기자 = 개막이 연기된 K리그를 ‘이참에’ 자세히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준비했다. 올드팬에게는 향수를, 입문팬에게는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
K리그와 사랑에 빠진 팬들이 많다. 선수들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우리 팀 감독들의 과거도 문득 궁금해진다. 흘러간 세월은 야속하지만 젊은 시절 그때를 포지션별로 짧게 되짚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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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격수
울산 현대 김도훈 감독과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90년대를 대표하던 스트라이커들이다. ‘폭격기’ 김도훈은 K리그 통산 257경기 114골 41도움을 기록하였으며 전북에서만 153경기를 뛰었다. 뿐만 아니라 J리그 비셀 고베와 국내 최강으로 불렸던 성남 일화에서 맹활약했다. 통산 2차례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2003년에는 득점왕과 MVP를 모두 싹쓸이했다. A매치 통산 72경기 30득점을 기록하였고 1999년에는 결승골로 브라질을 격파했다. 이는 아시아 최초이자 한국의 유일한 브라질전 승리 기록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독수리’ 최용수는 K리그 통산 148경기 54골 26도움을 기록했다. 안양에서만 5시즌 동안 활약하였고 K리그 신인상 및 MVP를 수상했다. 2001년에는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로 떠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프의 왕’이라 불릴 만큼 맹활약했다. 이후 교토, 주빌로 등에서 활약했다. A매치에서는 69경기 27득점을 기록하였고 아시아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수였다.
▲ 미드필더
한국프로축구연맹전북 현대의 조세 모라이스 감독은 선수보다 지도자로서 크게 빛을 본 케이스다. 그는 1999년 벤피카 B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스토릴(포르투갈), 헤르네, 드레스너 등 독일을 거쳐 2003년 FC포르투에서 조세 무리뉴와 만나 역사를 써 내려갔다. 이후 무리뉴는 첼시로, 모라이스는 포르투갈 클럽 산타 클라라 감독으로 가며 흩어졌지만 2009년 인터밀란에서 재회하여 레알 마드리드, 첼시까지 함께 동행하며 숱한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렸다
강원 FC 김병수 감독도 지도자로 빛을 보았다. 그는 어린 시절 ‘천재’로 불렸다. 특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둔 아시아 지역 예선 일본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한국의 본선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항상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하여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 이후에는 고려대, 포항 등에서 지도자를 시작하여 경력을 쌓았다. 특히 8년간 지휘봉을 잡은 영남대에서 제 실력을 발휘했다. 당시 김병수 감독은 이명주, 임채민, 김승대, 손준호, 신진호 등 숱한 유망주를 키웠으며 팀을 전국 최강으로 만들어 놓았다.
부산 조덕제 감독은 자신이 원클럽맨으로 뛰었던 구단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8시즌 간 부산에서 213경기 10골 11도움을 기록했다. 이후에는 아주대와 수원FC 등을 지휘하였고 내셔널리그 소속 수원을 K리그1으로 이끌었다. 지난 시즌에는 5년 만에 부산을 1부로 승격시켰다.
한국프로축구연맹원조 ‘철인’ 김기동 감독은 K리그 통산 501경기 39골 40도움을 기록했다. 이는 K리그 역사의 한 부분이다. 필드 플레이어 중에는 이동국 다음으로 많은 출장 횟수이며 골키퍼를 포함하여도 역대 4위에 속한다. 포항 연습생을 거쳐 1993년 유공에서 프로 데뷔하여 10시즌 뛰었고 2003년 포항으로 이적 후 9시즌을 뛰었다. 포항의 리더로 수많은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렸다.
‘진공 청소기’ 김남일 감독은 전국의 소녀팬을 몰고 다닌 스타였다. 2000년 전남에서 데뷔하여 수원, 인천, 전북 등을 거쳤고 K리그 통산 242경기 10골 12도움을 기록했다. 2002, 2006 월드컵에선 대표팀 허리의 중심을 맡았고 허를 찌르는 킬 패스가 특징이었다. 또한 1차 방어벽 역할을 충실히 하여 상대 공격을 가장 먼저 차단했다. A매치에선 98경기 2득점을 기록하였고 네덜란드, 일본, 러시아 리그를 경험했다.
▲ 수비수
한국프로축구연맹인천 임완섭 감독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성과를 이루었다. 1987년 U-16 세계 선수권 대회에선 4경기 뛰었다. 그러나 프로에서 빛을 보지 못하였고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은퇴 후에는 한양공고 코치를 시작으로 대전, 안산, 경남 등의 코치로 활약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상주 김태완 감독은 실업팀과 상무를 거쳐 1997년 대전의 창단 멤버로 들어갔다. 5시즌 간 대전에서 활약하며 통산 116경기 5골 2도움을 기록하였다. 이후 상무 코치를 시작으로 오랜 시간 상무와 함께하고 있다.
수원 이임생 감독은 우직한 체격을 바탕으로 투혼의 아이콘이었다. 1994년 부천에서 데뷔하여 9시즌간 활약하였으며 부천에서만 200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2차례 준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보여준 붕대 투혼은 명장면이다. 그는 부상에도 불구 육탄수비로 무승부를 이끌었다. K리그 통산 229경기 11골 5도움을 기록하였으며 A매치는 26경기를 소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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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병근 감독은 1996년 수원에서 데뷔하여 수원에서만 11시즌 간 활약하였다. 통산 324경기 10골 15도움을 기록하였고 선수 생활 마지막을 대구에서 마무리했다. 풀백을 주로 보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는 멀티 자원이었으면 강한 끈기와 체력이 강점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둘리’, ‘꾀돌이’라 불린 박진섭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풀백이었다. 2002 월드컵 콤비인 이영표, 송종국 이전 원조 ‘좌영표 우진섭’으로 불릴 만큼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진섭은 2002년 울산에서 데뷔하여 성남, 부산 등에서 활약했다. 통산 284경기 3골 27도움을 기록하였고 A매치에서는 35경기 5득점을 기록했다. 왕성한 활동량과 높은 수비력, 정확한 킥이 강점이었다. 진기한 기록도 있다. 2004 AFC 아시안컵 2차 예선에서 한국은 네팔에 16-0 대승을 기록하였는데 박진섭이 5골을 득점했다.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