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최초의 유럽 빅리거, 알리 아드난 이야기

마지막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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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역사상 최초의 유럽 5대 리그 진출
▲폐허가 된 이라크에서 탄생한 '빅리거'
▲그에게 '베스트 프렌드' 황인범은 어떤 친구?

[골닷컴,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호야] 한만성 기자 = 터벅터벅 걸어오던 알리 아드난(26)은 호텔 로비의 소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차렷 자세로 멈춰 섰다.

폭발 직전인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진 아드난은 이내 상체를 90도로 숙이며 로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친 후 폭소를 터뜨렸다. 지난 시즌 도중 이탈리아 세리에A 구단 아탈란타를 떠나 밴쿠버 화이트캡스로 이적한 레프트백 아드난의 가장 친한 팀동료는 황인범(23)이다. 그는 한국 기자와 인터뷰 약속이 잡히자 미리 황인범에게 배워둔 한국식 인사법을 선보이는 센스를 발휘했다. 기자와 악수를 나눈 아드난은 "영어를 잘 못 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인범만큼은 하니까 괜찮을 거다"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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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아드난의 활약상을 처음 본 무대는 터키에서 열린 2013년 U-20 월드컵이었다. 당시 故이광종 감독이 이끈 한국은 권창훈, 류승우 등이 팀의 중심을 이루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8강에서 이라크를 만난 이광종호는 권창훈이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분전했으나 결국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아드난은 이날 전반전 페널티 킥을 얻어내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지난 수십 년간 그래왔듯이, 당시에도 이라크는 정세가 흉흉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2003년 열 살에 불과했던 아드난은 전쟁터가 된 고향 바그다드에서 자랐다. 이라크 전쟁은 아드난이 성인이 된 2011년 끝났지만, 미군이 철수하자 2014년부터는 내전이 발발하며 온 나라가 폐허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드난이 당시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길거리로 축구공을 들고 나갈 때마다 자신을 말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축구 선수가 돼야 한다. 그러니 축구를 하다가 죽더라도 나는 지금 공을 차러 나가야 한다"고 말한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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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 Adnan

# 이라크 최초의 유럽 빅리거

이 와중에 2013년 U-20 월드컵에 출전한 아드난은 특유의 폭발적인 측면 공격력을 앞세워 이라크가 4강에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대회를 마친 후 터키 1부 리그 구단 차이쿠르 리제스포르로 이적했다. 그는 터키 진출 후 두 시즌 만에 실력을 인정받으며 우디네세로 이적했다. 이라크 축구 역사상 첫 유럽 5대 리그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드난은 우디네세에서 세 시즌간 주전급 왼쪽 측면 수비수로 활약한 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아탈란타로 이적했으나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다투는 팀 내 경쟁에서 밀리며 밴쿠버로 임대 이적했다.

미국과의 전쟁, 내전에 이어 최근에는 수개월째 반정부 시위로 끝이 없는 어둠 속에 놓인 이라크에서 축구 선수가 아드난처럼 해외로 진출하는 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드난은 해외 무대에서 7년째 활약 중인 자신이 이라크 축구에 관심이 쏠릴 수 있게 할 만한 활약을 펼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 경기 운동장 위에 선다고 말했다.

"이라크는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좋은, 젊은 선수들이 많다. 이들을 보고 열광하는 국민들도 있다. 문제는 이라크 내부에는 유럽 구단과 접촉할 수 있는 에이전트가 거의 없고, 유럽 구단이 이라크 리그 경기장으로 스카우트를 보내기에는 우리나라가 안전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라크는 20년이 넘도록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축구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내가 대표팀에 합류할 때마다 동료들은 '알리, 너는 어떻게 유럽에 갔어? 영어는 어떻게 배웠어?'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환경이 열악한 우리나라에 가족과 친구들을 그곳에 두고 유럽으로 가는 걸 두려워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최대한 우리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도우려고 한다. 내가 7년 전 터키로 갈 때부터 늘 인터뷰를 하면 하는 말이 있다. 이라크 대표팀에서 동료들에게도 늘 하는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라크 축구가 더 발전하려면 더 많은 선수가 해외로 갈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야 한다. 우리의 인접 국가 이란은 대다수 국가대표 선수가 유럽에서 활약 중이다. 대표팀에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다섯 명만 된다고 해도 팀 전력에는 큰 도움이 된다."

Ali Adnan

# WE ARE ALL ALI ADNAN

이라크 팬들 사이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유행처럼 번진 응원 구호가 있다. 이는 바로 "우리 모두가 알리 아드난"이라는 구호다. 축구에 열광하는 이라크 국민들이 자국 역사상 최초로 유럽 5대 리그 무대를 밟은 아드난의 활약을 통해 느끼는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라크를 향한 아드난의 애국심도 남다르다. 억대 연봉을 수령하는 대다수 축구 선수들은 소속팀의 시즌을 마치면 휴양지로 떠나 휴가를 즐긴다. 그러나 아드난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자란 시절 전쟁터였던 모국 이라크로 돌아가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미국의 침공 후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체제의 수니파 정부가 물러났다. 그러나 오히려 이후 인접 국가 이란이 이라크의 시아파 정치인을 후원하며 부정부패는 더 심각해졌고, 국민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최근에는 이란 정부가 친이란계 무장조직을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갈등이 더 심각해졌다. 아드난이 시위에 참석하는 이유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길거리로 나온 이라크 국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음식을 나르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터키에 있었을 때, 이탈리아에 있었을 때도 오프시즌에는 이라크로 돌아가 시위에 참여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나라를 사랑할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100%라면, 내가 이라크를 사랑하는 마음은 200%다. 나는 정말 우리나라를 사랑한다. 그래서 이라크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라크 국민들은 후손에게는 더 좋은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좋은 나라에서 좋은 삶을 살 자격이 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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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난은 왜 이라크 반정부 시위에 참석했을까?

지난겨울에는 아드난이 이라크까지 날아가 혼돈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음식을 나르고, 이라크 국기를 흔드는 모습을 담긴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이를 본 밴쿠버 구단 측은 즉시 아드난에게 연락해 그의 안전을 우려하며 복귀를 권유했다. 그러나 아드난은 끝까지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프리시즌 캠프에 소집되기 전까지 이라크에 머물렀다.

"밴쿠버에서 지난 시즌을 마친 후 휴가를 갈 수도 있었겠지만, 내게 휴가는 필요가 없다. 이라크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외부 사람들은 '지금 이라크는 반정부 시위 때문에 너무 위험하다'며 나를 말렸다. 이라크로 간 후에는 팀동료, 구단 스태프, 코칭스태프가 내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생각으로 거기까지 간 거야?'라며 야단법석을 피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내 나라에 오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전혀 위험하지도 않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매년 이라크에 오지만 내게 단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고 말해줬다."

"미국, 캐나다에는 모든 게 있다. 전쟁이 없는 삶이 있고, 먹을 게 없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은 이보다 뒤처진 시대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깨어나야 한다. 이라크가 이런 역경을 딛고 정상화된다면,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나는 이라크가 언젠가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이라크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드난은 이라크를 향한 세상의 달갑지 않은 시선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오로지 TV나 인터넷으로 '뉴스를 통해 보는 이라크'가 '진짜 이라크'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외국인이라면 이라크를 뉴스로 보고 'X 같은 나라!(f*** this country!)'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진짜 이라크인'을 만나보고, 그들과 같이 지내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라크 국민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나라를 원할 뿐이다. 그곳에는 돈이 없고, 먹을 게 없지만 그런 형편에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도 우리나라를 도와야 한다. 올해는 이라크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다."

Ali Adnan

# 국가대표 데뷔 후 6년 만에 치른 공식 홈 경기

국제축구연맹(FIFA)은 1980년을 시작으로 지난 40년간 여섯 차례나 이라크의 홈 경기 개최 자격을 박탈했다. 이라크의 불안정한 정세가 40년 이상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유로 2012년 A대표팀에 데뷔한 아드난 역시 불과 2년 전까지는 이벤트성 친선경기가 아닌 월드컵 예선 등 공식전에서 홈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드난은 FIFA가 이라크의 홈 경기 금지 징계를 철회한 2018년 10월, 대표팀 데뷔 후 6년 만에 홍콩과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2차전 경기에서 첫 국가대표 공식 홈 경기에 나섰다.

"내게도 의미가 컸지만,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더 뜻깊은 경기였다. 이라크가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홈에서 국가대표팀 경기를 볼 수 없었던 팬들에게 우리가 월드컵 예선 홈 경기를 선물할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이라크가 아닌 중립 지역에서 홈 경기를 치르면 우리를 응원해주는 국민들도 없고, 익숙한 환경에서 경기를 할 수도 없다. 예선에서 홈 경기를 치르지 않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이제 홈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됐으니 우리도 월드컵을 꿈꾸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경기장을 채워줄 국민들이 있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에 뛸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홈에서 경기에 나설 때마다 5만5000~6만 명이 찾아온다. 이런 분위기라면 선수들이 재능이 없어도 월드컵 진출에 대한 욕심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를 응원해주는 이라크 국민들을 사랑한다. 홈에서 경기를 치르면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그동안 팬들이 없는 중립 지역에서 경기를 할 때면 팀 분위기가 침체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 앞에서 경기를 하면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Basra, Iraq

# 마지막 목표는 꿈에 그리는 월드컵 진출

이처럼 월드컵 진출은 단 26세의 나이에 이라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아드난에게도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꿈으로 남아 있다. 이라크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계 무대에 도전했다. 당시 이라크는 멕시코, 벨기에, 파라과이에 패하며 3패로 탈락했다. 무려 36년 만의 월드컵 진출을 꿈꾸는 이라크는 이란, 바레인, 홍콩, 캄보디아와 속한 아시아 2차 C조 예선에서 승점 11점으로 바레인(9점), 한 경기를 덜 치른 이란(6점)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나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축구선수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거의 다 이뤘다. 나는 유럽 빅리그에 진출한 첫 번째 이라크 선수다. 그러나 아직 하지 못한 한 가지가 월드컵 진출이다. 우리는 어려운 조에 속했지만, 지금 조 1위에 오른 상태다. 이란, 바레인은 어려운 상대다. 홍콩과 이란 원정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이 두 경기를 잘 치러서 우선 최종예선 진출에 성공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이라크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감독은 12명에 달한다. 감독 한 명당 평균 임기가 1년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슬로베니아 출신 현 사령탑 스레코 카테나치 감독은 지난 2018년부터 2년째 이라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이라크 대표팀 역사상 20경기 이상을 소화한 감독 중에는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지휘봉을 잡은 아모 바바 감독 이후 유일하게 승률 50%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7년 전 아드난에 이어 공격수 모하나드 알리(19)가 포르티모넨세, 미드필더 오사마 라시드(28)가 산타 클라라로 이적하며 포르투갈 1부 리그에 진출했다.

이 외에도 이라크 대표팀 미드필더 사파 하디(21)는 크릴리아 소베토프(러시아 1부 리그), 아흐메드 야신(28)은 BK 헤켄에서 활약하며 차츰 유럽파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미국 태생 저스틴 메람(31, 리얼 솔트 레이크), 덴마크에서 태어난 프란스 푸트로스(26, 비보르)도 이라크 대표팀에서 활약 중이다.

"이라크 대표팀이 소집되면 첫날에 꼭 미팅을 한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나라를 위해 뛰어야 한다'는 점을 꼭 강조한다. 국가대표에 온 이상 누구도 다른 목표를 가져선 안 된다. 나라를 위해 뛰는 선수에게 개인 목표란 있을 수 없다. 국가대표 선수라면 경기에 출전해 싸워서 이기는 것, 그렇게 해서 국민들을 기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목표가 있어선 안 된다."

Adnan, Hwang, Teibert

# 세리에A를 거쳐 MLS로

아드난이 밴쿠버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는 황인범이다. 아드난, 황인범, 그리고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창단 멤버이자 캐나다 대표팀 7번 러셀 타이버트(27)는 지난 1년 사이에 절친한 사이가 됐다. 특히 타지 생활을 하는 아드난과 황인범은 서로 의지하며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날 아드난과 기자의 인터뷰 자리를 찾은 황인범도 빅리그를 경험한 동료이자 친구와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반대로 알리 또한 '연습벌레'로 유명한 황인범을 만난 후 훈련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황인범 曰: "어느 순간부터 셋이 훈련장에서 같이 항상 다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같이 밥을 먹는다. 그래서 아무래도 영어도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거 같다. 알리(아드난)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이라크의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터키, 이탈리아까지 갔다 왔기 때문에 자부심이 굉장하다. 러스티(러셀 타이버트의 애칭)나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거나,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을 하고 싶은데 팀 훈련이 러닝 훈련일 때 불만이 있어도 표현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알리는 불만이 생기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정말 다 표현을 한다. 그런 면이 알리가 유럽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선수가 뻔뻔해야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게 진짜 중요한 거니까."

"러스티는 진정한 프로다. 생활 습관부터 프로 정신이 대단하다. 비슷한 점도 있고, 내가 배울점이 많은 친구다. 알리는 사실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은 잘 알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러스티와 나처럼 개인 운동을 잘 안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같이 와서 셋이 같이하고 있다. 나한테는 너무 고마운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이 없었으면 지금도 부족하지만 영어를 이 정도까지 못 했을 거다. 틀리게 말할 때는 항상 알려주고, 같이 있으면서 항상 편하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단, 작년 황인범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MLS 일정상 피할 수 없는 장거리 비행은 수시로 이라크 대표팀에 차출된 아드난에게도 고민거리였다. 이미 유럽 무대를 경험한 아드난에게도 북미의 구석(?)에 자리한 밴쿠버에서 2~3일에 한 번씩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MLS 일정을 견디는 건 생소한 도전이었다.

"이렇게 비행기를 자주, 오래 타본 건 처음이다.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하는 데 거의 이틀이 걸리곤 한다. 대표팀 일정과 병행하게 되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대표팀 합류를 위해 25~30시간씩 이동해야 할 때도 있다. 이틀간 이동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MLS 안에서도 원정 경기를 위해 왕복 10시간 비행을 한다. 경기 하루, 혹은 이틀 전 이 정도로 이동을 한 후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는 건 정말 어렵다. 특히 지난 시즌 우리 팀은 1군 선수층이 두텁지 않았다. 그래서 더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전력 보강이 이뤄진 올 시즌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Hwang, Teibert, Adnan

# "인범과 알리를 보면 세상에 전쟁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드난은 황인범, 타이버트의 가족과도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이라크를 떠나 터키,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와 미국에서 생활 중인 아드난에게 '친구' 황인범은 어떤 존재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드난은 옆에 앉아서 웃는 황인범을 쳐다보며 "얘가 여기에 앉아 있는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며 고개를 흔들더니 곧 말을 이어갔다

"인범은 내게 형제 같은 친구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내게는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었다. 가끔은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실 처음에는 임대로 밴쿠버에 왔으니 4개월만 뛰고 여름에 유럽으로 100%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팀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인범과 러셀(타이버트)은 내게 가족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친가족과 함께 있지는 않지만, 인범과 러셀이 내 가족이다. 훈련이 끝나면 항상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같이 한다. 이제 인범과 나는 서로 가족끼리 페이스타임(영상 통화)을 하기도 한다."

"이 전 팀에서는 늘 룸메이트도 없이 지냈다. 이탈리아에서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늘 인범, 러셀과 함께 있다.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끝으로 마크 도스 산토스 밴쿠버 감독이 황인범과 아드난에 대해 남긴 말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도스 산토스 감독 曰: "코칭스태프와 대화를 하다가 '쟤네 둘은 도대체 어떻게 친해진 거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알리와 인범을 보면 세상에 왜 전쟁이 존재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알리와 인범을 봐라. 문화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신념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다. 그런데도 저렇게 친하게 지낸다. 사람이라면 다 친하게 어울릴 수 있다. 그러니 전쟁따위는 안 해도 되지 않나?"

사진=Getty, Nathan Vanstone, Hassanin Mubarak, Iraking94, Iraq Team, Vancouver Whitecaps FC
인터뷰 및 글=한만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