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하워드가 말한 팀 문화, 그리고 박지성 [GOAL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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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골키퍼 천국' 미국이 자랑하는 자국 역사상 최고 수문장 팀 하워드 단독 인터뷰

▲2014 월드컵 벨기에전 역대 최다 선방 16회 기록
▲과거 2년간 맨유에서는 박지성과 함께 뛰기도
▲"스위퍼 키퍼? 골키퍼는 손 잘 쓰는 게 우선이다"

[골닷컴,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한만성 기자 = "우리는 미국 축구다. 모든 포지션에 걸쳐 더 경쟁력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골키퍼만은 예외다."

이는 90년대 미국 축구를 대표한 공격수 에릭 와이날다(50)가 과거에 'FOX 사커 채널'을 통해 남긴 발언이다. 미국 축구는 지난 90년대 초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와이날다를 비롯해 최근 2~30년간 수많은 '유럽파'를 배출했다. 그러나 미국 축구는 이 중 유독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만한 실력을 보유한 골키퍼를 육성하는 데 가장 눈에 띄는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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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표팀만 살펴봐도 현재 원소속팀은 맨체스터 시티로 뒤셀도르프에서 활약 중인 주전 잭 스테펜(24)을 비롯해 백업 브래드 구잔(35, 현 애틀랜타 유나이티드)은 과거 애스턴 빌라에서 144경기에 출전한 프리미어 리그 베테랑이다. 이 외에 이튼 호바트(24)는 벨기에 명문 클럽 브뤼헤에서 리버풀 출신 시몽 미뇰레(31)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브래드 프리델(前 갈라타사라이, 리버풀, 블랙번, 토트넘 등), 케이시 켈러(前 라요 바예카노, 토트넘, 묀헨글라드바흐, 풀럼), 팀 하워드(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버턴)로 시작된 명수문장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중에서도 미국 축구 역사에 가장 큰 획을 그은 골키퍼는 바로 지난 7일(한국시각) 콜로라도 라피즈에서 LAFC와의 2019년 북미프로축구 MLS 정규시즌 최종전을 통해 은퇴식을 치른 하워드다. 만 40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그는 24세가 된 2003년 뉴저지 메트로스타스(현 뉴욕 레드불스)를 떠나 이적료 320만 유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로 이적하며 관심의 중심에 섰다. 하워드는 데뷔 시즌이었던 2003/04 시즌 즉시 맨유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고, 2005/06 시즌까지 총 77경기를 소화한 후 에버턴으로 이적했다. 그는 2016년까지 에버턴에서 414경기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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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가 전 세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세계무대는 월드컵이었다. 특히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국이 목표로 한 조별 리그 통과에 성공한 뒤, 16강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로 패한 경기 120분간 선방을 무려 16회나 기록했다. 월드컵에서 한 경기를 통틀어 그가 기록한 선방 16회는 여전히 대회 역사상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골닷컴 코리아'는 최근 콜로라도 라피즈의 구단 훈련장에서 하워드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40세 베테랑이 된 후 느낀 '팀 문화'의 중요성, 최근 유행처럼 번진 '스위퍼 키퍼'와 옛 동료 박지성에 대해 물었다.

"은퇴를 하겠다고 발표하니 많은 사람들은 내가 슬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 무려 21년간 프로 선수로, 그것도 유럽 명문구단 소속으로 전 세계를 오가며 축구를 할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이제부터 어떤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를 생각하니 흥분이 될 정도다. 은퇴 전부터 해온 방송 활동(해설위원)을 계속할 계획이다. 몇몇 축구 구단 운영진에도 합류한 상태다. 구단을 운영하고, 선수를 육성하는 일을 돕는 일도 하고 싶다(기자 주: 하워드는 미국 2부 리그 USL 구단 멤피스 901 FC 공동 소유주다). 그래서 더 미래가 기대된다."

하워드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만 약 400경기를 소화했고, 미국 대표팀에서 A매치 121경기와 월드컵 본선에 세 차례나 출전했다. 그는 맨유에서 FA컵과 리그컵 우승, 미국 대표팀에서는 북중미 골드컵 우승 2회와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두 차례의 월드컵 16강 진출 등을 경험했다. 하워드는 2003/04 시즌에는 맨유에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그러나 하워드는 이와 동시에 미국이 트리니다드 토바고 원정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처참한 실패도 맛본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이다.

무수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하워드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몸담은 소속팀 콜로라도에서 주장으로 활약하며 리더 역할을 톡톡히 했다. MLS의 신인이 프로 데뷔 첫 시즌에 받는 연봉은 약 6만2500달러(현재 환율 기준, 한화 약 7468만 원)다. 이는 리그 규정상 계약 기간이 제한된다는 점과 축구 선수의 비교적 짧은 커리어 수명을 고려할 때 넉넉지 않은 조건이다. 콜로라도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주장 하워드는 팀에 신인들이 합류하면 첫 원정 일정을 앞두고 그들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하며 가장 먼저 동료를 챙기는 리더였다. 이런 하워드에게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 물었다.

"베테랑이라면 팀이 건전한 구조와 위계질서를 세우는 데 보탬이 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건전한 팀 문화 확립이다. 팀 문화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나는 서로를 순종(subordination)하는 문화를 강하게 믿는 편이다. 고참급 선수들(senior players)이 드레싱 룸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를 내며 선수들이 질서를 지키게 하는 문화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과 리그에서 뛰면서 배운 교훈이다. 그러면서 이후 미국 대표팀 등 어디를 가도 팀이 이런 문화를 확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만, 이는 자칫하면 '하워드는 꼰대(?)'라는 오해를 낳을 만한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그래서 '골닷컴 코리아'는 그에게 팀 문화 속에서 위계질서와 고참급 선수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위계질서가 중요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선배'가 경험이 부족한 '후배'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팀 문화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외곽으로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한 팀에는 최소 23명이 있다. 각자 자아가 튼튼하고 건장한 23명의 남자가 1년 내내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어느 리그의 어느 팀을 가도 한 팀에서 선수들이 각자 구사하는 언어가 다르고, 서로 다른 문화적, 경제적 여건에서 자랐다. 팀 문화가 필요한 이유는 경험 많은 베테랑이 확립한 '팀 컨셉' 안에서 팀에 속한 모든 선수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팀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선수가 늘어날수록, 그 팀은 좋은 팀이 되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팀 문화를 설명하던 하워드와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박지성으로 이어졌다. 그 또한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그에게 굳이 "두 유 노우 박지성?"이라 묻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하워드는 알렉스 퍼거슨 前 맨유 감독에게 배운 '순종'의 중요성, 이를 바탕으로 한 팀 문화에 필요한 가장 이상적인 선수로 '성실함의 상징' 박지성을 꼽았다.

"지성과 함께 뛴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그는 인격적으로 훌륭(wonderful)했다. 그는 맨유에서 활약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팀에는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큰 경기 때마다 퍼거슨 감독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큰 믿음을 준 선수다. 맨유에서 뛴 선수에게 퍼거슨 감독의 믿음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업적은 없다. 퍼거슨 감독의 믿음을 획득하고, 이를 계속 지켜내는 건 특별한 업적이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박지성은 축구장 밖에서는 정말 조용했다. 늘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단 한번도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의 조명을 받은 적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지성처럼 살아야 한다!"

미국은 지난 2~30년이 넘도록 유럽 빅리그와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골키퍼를 수없이 배출했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와이날다의 말처럼 미국이 수준급 골키퍼를 끊임없이 배출한 원동력은 유럽 축구계 또한 매우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뉴저지주 노스 브런스윅에서 태어나 맨유로 이적한 24세 시절까지 미국에서만 축구를 한 하워드에게 그들만의 비결을 물었다.

"골키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운동 신경(athleticism), 손재주(dexterous), 눈손 협응(hand-eye coordination, 손과 눈의 동작을 일치시키는 능력)이다.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대다수 스포츠는 눈손 협응 능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 테니스, 골프, 농구, 미식축구, 야구 등을 하면서 운동 능력을 기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농구가 특히 많은 효과가 있다. 이 덕분에 우리는 4~6세 때부터 다른 나라 아이들과 비교해 눈손 협응 능력이 더 빨리 향상된다. 반대로 유럽은 어린 골키퍼에게 공을 발로 차는 훈련부터 시킨다. 미국 골키퍼들이 다른 나라 골키퍼와 비교해 어린 시절부터 더 유리하게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골키퍼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에 더 집중하는 운동을 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지난 2000년대 후반 펩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의 FC 바르셀로나가 유럽을 주도한 시절을 기점으로 골키퍼의 스위퍼화, 즉 '스위퍼 키퍼'에게 골문을 맡기는 문화가 계속 번지고 있다. 스위퍼 키퍼란 수비라인 뒤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페널티 지역 바깥쪽에서 '보호막'과 동시에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해주는 골키퍼를 뜻한다. 골키퍼에게는 손재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하워드가 최근 약 10년간 유럽 무대에서는 골키퍼에게 필수 조건이 된 '스위퍼 키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아마 후방에서 골키퍼를 필드 플레이어처럼 쓰면서도 경쟁력 있는 축구를 할 수 있는 팀은 전 세계에 약 다섯 팀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골키퍼가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골키퍼라면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매우 기초적인 사고방식에서 지나치게 벗어나선 안 된다. 상대의 슛을 막는 게 골키퍼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조건이다. 요즘에는 '공을 잘 차는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 정작 팀의 실점을 잘 막지 못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늘 그랬고, 앞으로도 평생 그렇겠지만 골키퍼에게는 선방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하워드는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강박 장애와 투렛 증후군(자기 자신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몸을 비틀고 상스러운 소리를 기침하듯이 내뱉는 증상)에 시달려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가 이처럼 21년간 현역 생활을 이어간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축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강박 장애와 투렛 증후군 때문에 시련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운동장 안에서는 누구도 나의 이런 점을 의식하지 않았다. 얼굴 표정이 비틀어지고, 기침을 해도 골대 앞에서 상대 공격수의 슛만 막으면 누구도 나를 쉽게 판단하지 못했다. 축구장은 늘 내게 안전지대였고, 내가 복용할 수 있는 가장 효능이 좋은 약이었다. 축구를 통해 인생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 축구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도 배웠다."

"전 세계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가끔은 마음이 정말 어두운 곳에 머물러 있는 날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모든 걸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한다면 10년이 넘게 사람들의 비난에도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끝날 때가 되면 그 모든 게 다 값진 경험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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