묀헨글라드바흐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재정 악화로 인해 2부 리가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구단의 마지막 우승도 1994/95 시즌 DFB 포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로 인해 묀헨글라드바흐는 분데스리가 최다 승 6위(716승)에 최다 승점 6위(2,609점)으로 통산 성적에 있어선 최상위권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묀헨글라드바흐는 1969/70 시즌부터 1976/77 시즌까지 7시즌 동안 분데스리가 우승 5회를 차지하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당시 분데스리가 성적만 놓고 보면 황금기라고 불리던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의 바이에른 뮌헨보다도 더 좋은 성적과 더 많은 우승을 차지했던 묀헨글라드바흐이다. 심지어 유럽 대항전에서도 비록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전신)에선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나 1976/77 시즌 준우승을 기록했고, UEFA컵(유로파 리그 전신) 2회 우승(1974/75, 1978/79)과 2회 준우승(1972/73, 1979/80)을 기록하면서 당대 바이에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호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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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볼프강 클레프
1970년대 마이어와 함께 분데스리가를 양분하던 명골키퍼. 1968년 프로 데뷔해 1979년까지 11시즌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활약했고, 헤르타 베르린에서 1시즌을 보낸 후 다시 묀헨글라드바흐로 돌아와 2시즌을 더 소화했다. 비록 마이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A매치 출전은 단 6경기에 그쳤으나 그가 황금기 묀헨글라드바흐의 수호신이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묀헨글라드바흐 소속으로 공식 대회 421경기에 출전하면서 구단 역대 최다 출전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CB 베르티 포그츠
독일 역대 최고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는? 필립 람을 많이들 떠올리겠지만 람 이전에 포그츠가 있었다. 수비수 포지션으로는 프란츠 베켄바워(4회)와 마티아스 잠머(2회)와 함께 2회 이상 독일 올해의 선수(1971, 1979년)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그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를 주로 섰으나 '테리어(사냥개)'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대인 수비를 자랑했기에 169cm의 단신임에도 종종 중앙 수비수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선 당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요한 크루이프를 전담마크하면서 우승을 견인했다. 그가 은퇴하자 10년을 이어져오던 구단의 황금기가 막을 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그츠가 곧 묀헨글라드바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묀헨글라드바흐 소속으로 528경기에 출전하면서 구단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CB 파트릭 안데르손
스웨덴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선수. 1993년터 1999년까지, 그가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뛴 기간은 6년 밖에 되지 않으나 1994/95 시즌 DFB 포칼 우승에 이어 1995/96 시즌 분데스리가 4위를 차지하면서 암흑기를 버틸 수 있었다. 비록 1998/99 시즌, 묀헨글라드바흐는 최하위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으나 그는 활약상을 인정받아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수 있었다. 최하위팀 수비수가 우승팀으로 이적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수비수였는지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1995년엔 묀헨글라드바흐 소속으로, 2001년엔 바이에른 소속으로 스웨덴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CB 울리 슈틸리케
바이에른의 라이벌 팀에서 등장했으나 스타일적인 면에서 베켄바워의 직속 후계자(베켄바워처럼 중앙 미드필더로 시작해 리베로로 성장해 나갔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1973년 데뷔해 1977년까지 뛰면서 묀헨글라드바흐 10년 전성기 중에서도 가장 절정에 해당하는 5년을 책임졌다. 실제 이 기간에 묀헨글라드바흐는 분데스리가 3연패(1974/75, 1975/76, 1976/77)와 UEFA컵 우승(1974/75)과 포칼 우승(1972/73)은 물론 유러피언 컵 준우승(1976/77)까지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그는 1977년 여름, 세계 최강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에 이르렀다(레알 마드리드에서도 4시즌 연속 최고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주가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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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로타르 마테우스
무려 21년을 선수 생활을 이어오다 보니 그의 포지션을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내지는 리베로로 인식을 하고 있지만 처음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던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만 18세의 나이에 프로 무대에 등장한 그는 데뷔 시즌인 1979/80 시즌 묀헨글라드바흐의 UEFA컵 결승 진출을 견인했으나 아쉽게도 차범근 감독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게 원정골 우선 원칙에 의거해 준우승에 그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1차전 홈에선 마테우스의 골에 힘입어 묀헨글라드바흐가 3-2로 승리했으나 원정에서 0-1로 패했다). 비록 1984년 바이에른으로 이적하면서 묀헨글라드바흐에선 5시즌 밖에 뛰지 않았으나 짧은 기간 동안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베켄바워의 뒤를 잇는 독일 축구 영웅의 등장을 알렸던 마테우스이다.
CM 슈테판 에펜베르크
70년대 황금기 이후 묀헨글라드바흐는 예전만한 위용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는 준수한 성적을 올리면서 명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었다. 그 중심엔 바로 마테우스와 그의 후계자인 에펜베르크가 있었다. 묀헨글라드바흐 유스 출신으로 1987년 프로 데뷔한 그는 3시즌 동안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천재 미드필더의 탄생을 알린 그는 1990년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 이후 피오렌티나를 거쳐 1994년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온 그는 1994/95 시즌 안데르손과 함께 포칼 우승을 달성하면서 묀헨글라드바흐에게 마지막 우승을 선사했다. 하지만 4시즌 동안 활약한 그는 다시 1998년 여름, 바이에른으로 이적했고, 그가 떠나자마자 묀헨글라드바흐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의 영향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묀헨글라드바흐 소속으로 216경기에 출전하면서 41골 36도움을 올렸다. 출전 경기 수는 구단 역대 33위에 그치고 있으나 경고(옐로 카드) 62회에 퇴장(레드 카드) 5회로 징계 부문 최다를 자랑하고 있다(구단 역대 징계 2위는 전설적인 수비수 한스-귄터 브룬스로 출전수가 에펜베르크의 두 배에 가까운 402경기에 출전했으나 경고 55회에 퇴장 2회를 기록했다). 악동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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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 라이너 본호프
묀헨글라드바흐 구단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 수비수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수비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1970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데뷔해 1978년까지 뛰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비록 1978년 발렌시아로 이적하면서 하향세를 탔으나 그래도 1970년대를 대표하던 미드필더였다. 이는 그가 독일 선수로는 유일하게 유로 우승 2회와 월드컵 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선수라는 데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1972 유로, 1974 월드컵, 1980 유로). 현재도 묀헨글라드바흐 부회장직을 수행 중에 있다.
LM 헤르베르트 빔머
포그츠와 함께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중 유이한 원클럽맨. 1966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데뷔해서 1978년까지 뛰면서 황금기를 지탱해주었다. 당연히 그의 개인 통산 공식 대회 출전 경기 수는 460경기로 포그츠와 골키퍼 우베 캄프스에 이어 묀헨글라드바흐 역대 3위에 해당한다. 강철 폐라고 불릴 정도로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던 선수로 프로 데뷔 당시엔 측면 공격수에서 시작해 귄터 네처가 떠나면서 플레이메이커를 소화했으며, 측면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까지 수행하면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만천하에 알렸다.
AM 귄터 네처
독일 불세출의 천재이자 베켄바워의 최대 라이벌. 센티미터 단위로 패스를 조절할 수 있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교한 패스를 자랑했다. 베켄바워 이전 독일 대표팀 주장도 네처였다. 하지만 그의 천재적인 플레이에도 수비 가담 부족 문제로 인해 결국 대표팀에선 유로 1972 우승 이후 중용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겼다(1974년 월드컵에도 참가하긴 했으나 1경기 교체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묀헨글라드바흐에선 1963년부터 1973년까지 10년간 에이스로 군림하면서 개인 통산 349경기(구단 역대 8위)에 출전해 129골(구단 역대 3위) 73도움(구단 역대 최다)을 기록했다. 독일 올해의 선수도 2회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다만 그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1973년 이후 묀헨글라드바흐의 최전성기(분데스리가 3연패 포함)가 시작됐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그가 묀헨글라드바흐 황금기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CF 알란 시몬센
덴마크가 자랑하는 측면 공격수로 1972년 묀헨글라드바흐에 입단한 이후 1979년까지 7시즌을 뛰면서 명성을 떨쳤다(1979년 여름,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특히 1976/77 시즌엔 묀헨글라드바흐의 분데스리가 우승 및 유러피언컵 준우승에 크게 기여하면서 덴마크 선수로는 유일하게 발롱 도르를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분데스리가에서 5시즌 연속 두 자리 수 골을 넣으며 꾸준한 득점력을 자랑했고, 무엇보다도 1977/78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이어 1978/79 시즌 UEFA 컵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유난히 유럽 대항전에서 강점을 보였다(분데스리가 통산 178경기 76골로 경기당 0.5골에 미치지 못햇으나 유럽 대항전에선 48경기 33골로 경기당 0.7골에 육박했다).
CF 유프 하인케스
지금은 바이에른의 전설적인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전 묀헨글라드바흐가 자랑하던 득점 기계. 득점 기록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묀헨글라드바흐에서 91경기에 출전해 56골을 넣은 그는 이후 하노버로 이적해 3시즌을 뛰다 다시 묀헨글라드바흐로 돌아와 8시즌 동안 351경기에 출전해 235골을 기록했다. 당연히 그가 묀헨글라드바흐 소속으로 기록한 골 수는 291골로 독보적인 최다에 해당한다. 분데스리가만 따지더라도 개인 통산 220골(묀헨글라드바흐 소속으로 195골, 하노버 소속으로 25골)로 은퇴한 선수들 중에선 게르트 뮐러(365골)와 클라우스 피셔(268골)에 이어 역대 최다 골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