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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어퍼컷 세레머니’ 서정원의 동점골이 터진 날

[골닷컴] 김형중 기자 = 26년 전인 1994년 6월 18일 오전(한국시각) 한국은 19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해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2-2 극적인 무승부. 유럽의 강호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경기였다.

당시 월드컵의 열기는 대단했다. 많은 국민들이 전국의 터미널, 기차역 등에 모여 경기를 시청했고, 각급 학교는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학생들에게 경기 시청을 허용하며 큰 무대에서 나선 대표팀 응원에 동참했다.

1993년 도하의 기적을 통해 3회 연속 월드컵 출전에 성공한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과 월드컵 단골손님 스페인,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을 격파한 복병 볼리비아와 미국 월드컵 C조에 편성되었다. 개막전으로 열린 독일과 볼리비아의 경기는 후반 16분에 터진 위르겐 클린스만의 득점으로 독일이 1-0 신승하며 지난 대회 우승팀의 개막전 징크스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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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보다 4시간 30분 후, 댈러스 코튼볼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의 1차전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양 팀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한 조에 속했다. 당시 미첼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3-1로 패했던 한국은 설욕을 노렸다. 스페인 주전 골키퍼 주비자레타의 부상으로 신예 카니자레스가 골문을 지키게 된 점도 한국으로선 호재였다.

김호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최인영 골키퍼를 비롯해 박정배, 홍명보, 최영일이 후방을 책임졌고, 미드필드에는 신홍기, 김판근, 이영진, 노정윤, 김주성, 공격은 고정운과 황선홍이 나섰다. 클레멘테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은 카니자레스가 장갑을 꼈고, 아벨라르도, 나달, 알코르타가 스리백을 구성했다. 중원에는 페레르, 세르히, 이에로, 고이코체아, 루이스 엔리케가 섰고, 게레로는 전방의 살리나스와 함께 공격을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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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분위기는 스페인이 주도했다. 최전방의 살리나스와 측면의 엔리케의 활발한 공격에 한국은 고전했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은 한국은 이영진과 신홍기의 중거리 슈팅으로 맞섰다. 이어 전반 25분 기회가 찾아왔다. 후방에서 넘어온 긴 패스를 잡으러 전방으로 침투하던 고정운을 스페인 주장 나달이 잡아챘다. 주심은 다이렉트 퇴장을 선언했다. 당시 좀 더 엄격한 판정으로 경기의 공정성을 기하고자 하는 FIFA의 의지가 담긴 장면이었다. 개막전에서 나온 볼리비아 에이스 예체베리의 퇴장에 이어 두번째 레드 카드였다.

나달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을 홍명보가 날카로운 직접 슈팅으로 시도했지만 카니자레스의 선방에 막혔다. 이후 한국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스페인을 몰아붙였다. 황선홍의 침투와 고정운, 이영진의 슈팅으로 골문을 노렸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았고 그대로 전반이 종료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월드컵 첫 승이 멀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후반 초반 한국은 연달아 실점을 허용했다. 후반 6분 수비 진영에서 볼을 잡은 후 공격 전개를 시도하다 상대에게 볼을 빼앗긴 후, 전진 패스에 이은 크로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던 스트라이커 살리나스였다. 한국은 4분 뒤 또 한 번 실점했다. 살리나스의 돌파에 이어 교체 투입된 카미네로의 연속 슈팅을 최인영과 홍명보가 잘 막아냈지만, 카미네로의 크로스에 이은 고이코체아의 헤더는 막지 못했다. 수비 숫자는 많았지만 마크맨을 놓치고 공만 쳐다보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김호 감독은 후반 14분 김주성을 대신해 첫번째 교체카드로 서정원을 투입했다. 당시 상무 소속이었던 서정원은 빠른 발을 바탕으로 측면 돌파에 이은 슈팅을 즐겨하던 선수였다. 예상대로 서정원 투입 후 한국의 공격이 살아났다. 상대 측면을 허물며 슈팅 기회를 잡아갔다. 후반 28분에는 노정윤 대신 하석주를 투입하며 공격을 좀 더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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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40분 드디어 첫번째 결실을 맺었다. 최후방의 홍명보를 2선으로 올린 한국은 스페인 페널티 박스 바로 바깥에서 하석주가 상대에 걸려 넘어지며 프리킥을 얻었다. 이영진이 내준 볼을 홍명보가 강하게 슈팅했고, 수비벽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규시간이 끝나갈 무렵, 또 한 번 들썩였다. 공격에 가담한 홍명보가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등진 ‘절친’ 황선홍과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후 우측으로 연결했다. 이를 받은 서정원은 지체없이 오른발 인사이드로 동점골을 터트렸다. 가까운 쪽 포스트와 골키퍼 사이의 좁은 공간을 파고드는 득점이었다. 서정원은 득점 후 어퍼컷 세레머니를 하며 월드컵 무대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이 났고, 한국과 스페인은 승점 1점씩 나눠 가졌다. 하지만 다 잡은 경기를 놓친 스페인과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승점을 챙긴 한국의 온도 차는 심했다.

당시 월드컵 도전을 마치고 귀국한 대표팀의 김호 감독이 방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어떤 선수를 교체로 내보낼지 고민이었다. 다른 선수를 투입하려 했지만 서정원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는 코치진의 의견에 서정원을 넣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극적인 무승부로 출발한 한국의 1994 미국 월드컵은 이후 볼리비아와 0-0 무승부, 독일전 2-3 패배, 승점 2점으로 예선 탈락하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세계 강호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쌓게 된 중요한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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