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박문수 기자 = 우루과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격수는?
대다수 축구 팬의 첫 번째 선택지는 루이스 수아레스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거론될 선수는 에딘손 카바니가 유력하다. 좀 더 나이 지긋한 아재들은 디에고 포를란을 언급할 것이다.
혹자는 이 선수를 언급할 것이다. 우루과이의 테크니션이자, 남미의 지단 그리고 일명 '미친 왼발'로 불렸던 알바로 레코바다.
주요 뉴스 | "[영상] 카타르 조직위원장 "월드컵 준비 문제 없다""
# 레코바는 누구?
별명은 '엘 치노'였다. 아시아인과 외모가 흡사한 이유로 붙여졌다.
현역 시절 그의 애칭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테크니션이다. 자연스레 남미의 지단, 왼발의 지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오해는 말자. 테크닉은 좋아도 지단이랑은 다른 유형이다. 킥력 또한 매우 우수했다. 그 중에서도 왼발 감아 차기가 일품이었다. 참고로 레코바는 오히려 지단보다는 마라도나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마라도나 만큼 폭발력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후술하겠지만 부상으로 100% 기량을 유지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유리몸이다. 실력이야 좋아도, 걸핏하면 부상으로 백 퍼센트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력이야 보장된 선수였지만, 잦은 부상 탓에 그라운드가 아닌 병상을 지키는 일이 잦았다.
# 선정 이유

인터 밀란 시절, 레코바는 분명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비에리와 호나우두의 존재 탓에 조연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호나우두가 부상으로 전력 이탈한 1999/2000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이상할 만큼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지 못하고 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21세기 초반만 해도 우루과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였지만, 2000년대 중, 후반부터는 포를란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수아레스와 카바니라는 소위 말하는 월드클래스급 공격수 등장으로, 레코바는 우루과이 골짜기 세대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전락했다.
주요 뉴스 | "[영상] 언변의 마술사 무리뉴의 첫 기자회견"
# 주요 커리어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인터 밀란에서 활약했다. 1999년에는 베네치아에서 그리고 2007/2008시즌에는 토리노에서 임대 생활을 보냈다. 두 시즌을 제외하면 9시즌이나 인테르 유니폼을 입고 뛴 '준 레전드'다.
다만 우승과는 그렇게 인연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1997/1998시즌 UEFA컵 우승이 있지만, 레코바는 당시 후보 선수였다. 2005/2006시즌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인테르가 우승팀이 된 상황에서 레코바는 20경기(11경기 선발) 출전이 전부였다. 사실상 인테르 공격 옵션 3-4번째로 보면 된다. 그 다음 시즌 리그 우승 당시에도 레코바는 13경기(6경기 선발)로 나와 1골 1도움만 기록했다. 그렇게 그는 다음 시즌 토리노로 임대 이적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결국 레코바는 2008년 세리에A 무대를 떠나, 그리스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2009/2010시즌에 맞춰 고향팀 다누비오로 이적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자신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나시오날에서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다음 주자는 누구
한일 월드컵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를 뻔했던 투르크 전사. 독일 태생이지만 터키 대표팀을 택했고, 세네갈과의 8강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터뜨리며, 터키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4강 신화에 빛나는 대표팀과의 3, 4위전 맞대결에서도 멀티 골을 가동하며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J리그 진출 이후 힘든 시기를 겪었고 부상 탓에 비교적 일찍 축구화를 벗었다. 은퇴 후에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깜짝 변신했고, 이후에는 친정팀 코치로 부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