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김현민 기자 = 토트넘이 아약스와의 경기에서 루카스 모우라의 해트트릭과 후반 교체 출전한 페르난도 요렌테의 제공권 장악에 힘입어 기적적인 3-2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토트넘이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 원정에서 열린 아약스와의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전반전에만 2실점을 허용하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전 3골을 몰아넣으면서 3-2 역전승을 거두었다. 1차전 홈에서 아약스에게 0-1로 패했던 토트넘은 2차전 3-2 역전승에 힘입어 1, 2차전 도합 스코어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음에도 원정골 우선 원칙에 의거해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잉글랜드 구단으로는 전신 유러피언 컵 포함 8번째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한 팀으로 등극한 토트넘이다.
지난 1차전과 마찬가지로 토트넘은 부상자가 많은 편에 속했다.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인 해리 케인을 위시해 해리 윙크스와 세르지 오리에가 여전히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나마 1차전 징계로 결장한 손흥민이 돌아왔으나 대신 중앙 수비수 다빈손 산체스가 새로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얀 베르통언과 에릭 라멜라 역시 부상에서 막 돌아온 만큼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마우리치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아약스 원정에 4-2-3-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모우라가 케인을 대신해 최전방 원톱으로 나섰고, 델리 알리를 중심으로 손흥민과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좌우 측면에 포진하면서 이선 라인을 구축했으며, 빅터 완야마와 무사 시소코가 더블 볼란테(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지칭하는 표현)를 형성했다. 대니 로즈와 키어런 트리피어가 좌우 측면 수비를 책임졌고, 베르통언과 토비 알더베이렐트가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다. 골문은 언제나처럼 우고 요리스 골키퍼가 지켰다.
https://www.buildlineup.com/아약스도 전력 누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아약스는 토트넘전 킥 오프 휘슬이 울리기 전, 주전 왼쪽 측면 미드필더 다비드 네레스가 몸을 푸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에 아약스는 주전 원톱 공격수 두산 타디치를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이동시키면서 카스퍼 돌베리를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시켰다. 이 외 나머지 포지션에선 최정예로 토트넘전에 임했다.
1차전 홈에서 0-1로 패한 만큼 골이 더 절실했던 건 토트넘이었다. 하지만 정작 아약스가 초반 공격을 주도했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타디치의 강력한 슈팅이 요리스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이어진 코너킥 찬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라세 쇠네의 크로스를 아약스 구단 역대 최연소 주장이자 핵심 수비수 마티스 데 리흐트가 헤딩 슈팅으로 꽂아넣으며 아약스가 먼저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다급해진 토트넘은 실점을 허용하고 곧바로 공격으로 나섰으나 6분경 손흥민의 측면 돌파에 이은 각도 없는 곳에서 때린 슈팅이 골대 맞고 나왔고, 에릭센의 리바운드 슈팅은 아약스 왼쪽 측면 수비수 니콜라스 탈리아피코에게 차단됐다. 23분경 알리의 패스에 이은 손흥민의 슈팅은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다시 1분 뒤, 모우라의 단독 돌파에 이은 백패스를 에릭센이 왼발 슈팅으로 가져갔으나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토트넘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제어한 아약스가 30분을 기점으로 역공에 나섰다. 30분경, 역습 과정에서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하킴 지예흐의 대각선 전진 패스를 받은 타디치가 측면을 돌파하면서 알더베이렐트를 제치고 슈팅을 시도했으나 골대를 살짝 빗나갔다. 이어서 35분경,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도니 판 더 베이크가 가로채기를 성공시킨 후 곧바로 돌파를 하다 측면으로 연결한 걸 타디치가 컷백(대각선 뒤로 내주는 패스)으로 내주었고, 이를 지예흐가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이대로 전반전은 2-0 아약스의 리드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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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이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선 더 이상의 실점 없이 후반전에만 3골을 몰아넣을 필요성이 있었다. 심지어 이 경기는 아약스 홈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리고 있었다. 당연히 전반전이 끝나자 아약스가 결승전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포체티노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수비형 미드필더 완야마를 빼고 장신 공격수 페르난도 요렌테를 교체 출전시킨 것. 포메이션 자체는 4-2-3-1을 유지했다. 다만 요렌테가 최전방에 서면서 모우라가 우측면으로 이동했고, 에릭센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갔다. 분명한 건 전체적인 선수 구성 자체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https://www.buildlineup.com/요렌테 교체 투입은 주효했다. 요렌테는 193cm의 장신을 백분 살려 제공권을 장악했다. 특히 아약스 중앙 수비수 중 180cm로 다소 단신에 속해 제공권에 약점이 있는 데일리 블린트를 집중 공략해 나갔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요렌테가 블린트와 경합 과정에서 버티고 서다 돌아서면서 골문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알리를 향해 센스 있는 로빙 패스를 올려주었으나 데 리흐트의 몸을 날린 차단에 저지됐다. 후반 8분경엔 에릭센의 크로스를 알리가 논스톱 발리 슈팅으로 가져갔으나 아약스 골키퍼 안드레 오나나의 선방에 막혔다. 이어진 코너킥 찬스에서 요렌테의 헤딩 슈팅은 골대를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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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요렌테가 제공권을 장악하자 전반 내내 안정감을 유지했던 아약스 수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반면 요렌테가 버티는 가운데 알리와 모우라, 그리고 손흥민이 자유롭게 이선을 활보하면서 날카로운 공격 움직임을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토트넘의 골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후반 10분경 역습 상황에서 로즈의 롱패스를 모우라가 원터치 패스로 연결한 걸 알리가 센스 있게 접는 동작으로 쇠네를 제쳤고, 이를 받은 모우라가 순간적인 침투에 이은 왼발 슈팅으로 추격하는 골을 성공시켰다. 이어서 3분 뒤, 트리피어의 땅볼 크로스를 요렌테가 골문 앞 슈팅으로 가져간 게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혔으나 혼전 상황에서 루즈볼을 잡은 모우라가 드리블로 상대 선수 둘을 제치고 돌아서면서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급작스럽게 2실점을 허용하자 아약스는 후반 15분경, 쇠네를 빼고 오른쪽 측면 수비수 요엘 벨트만을 교체 출전시킨 데 이어 후반 22분경엔 최전방 공격수 돌베리 대신 왼쪽 측면 수비수 데일리 싱크라벤을 투입하며 수비 강화에 나섰다. 더 이상의 실점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교체였다.
https://www.buildlineup.com/이후 양 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아약스는 후반 34분경 지예흐의 날카로운 왼발 중거리 슈팅이 골대 맞고 나오는 불운이 있었다. 토트넘 역시 경기 종료 4분을 남기고 코너킥 공격 장면에서 베르통언의 헤딩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온데 이어 리바운드 슈팅마저 벨트만에게 골 라인 앞에서 차단되면서 아쉽게 득점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어느덧 경기는 정규 시간은 모두 끝났고, 추가 시간 5분이 주어진 가운데 이마저도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토트넘은 마지막 공격 상황에서 시소코의 롱패스를 요렌테와 데 리흐트가 경합하는 과정에서 알리가 루즈볼을 잡아서 전진 패스를 밀어주었고, 이를 모우라가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기적과도 같은 3-2 대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모우라의 골이 터져나오자 포체티노 감독은 그라운드에 누우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경기의 영웅은 단연 3골을 홀로 책임진 모우라였다. 그는 이 경기에서 5회의 슈팅을 시도해 3골을 넣었고, 4회의 드리블 돌파를 성공시켰으며, 2회의 키패스를 통해 공격 전반에 걸쳐 높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엇보다도 모우라는 아약스전 해트트릭에 힘입어 유벤투스 전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1997/98 시즌 모나코와의 1차전)와 이비차 올리치(2009/10 시즌 바이에른 소속으로 올랭피크 리옹과의 2차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2012/13 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레알 마드리드와의 1차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16/17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1차전)에 이어 5번째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등극했다. 당연히 브라질 국적 선수로는 최초이다.
모우라가 주역이라면 이를 보조한 선수는 단연 요렌테이다. 요렌테가 투입되면서 공중볼 장악과 함께 경기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실제 그는 후반전만 소화했음에도 17회의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무려 13회의 공중볼을 획득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전반전 내내 토트넘 선수들이 공중볼을 획득한 횟수가 단 5회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요렌테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기적같은 역전승도 없었다.
시소코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시소코는 1차전 당시 아직 부상에서 완전 회복하지 못했음에도 32분경, 베르통언의 뇌진탕 부상으로 긴급 투입되어선 30분경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던 경기 흐름을 뒤바꾸면서 2차전 대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2차전에서도 왕성한 활동량을 선보이면서 아약스의 장점인 중원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이 셋이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토트넘 내에서 백업 요원들이었다는 점이다. 시소코는 에릭 다이어와 완야마는 물론 유스 출신 미드필더 해리 윙크스에게도 밀리면서 지난 시즌까지 주로 교체 선수로 활용됐다. 2018년 1월,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토트넘에 입단한 모우라는 토트넘이 자랑하는 DESK(델리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 손흥민, 해리 케인)에 밀려 6경기 출전에 그쳤다(그마저도 선발 출전은 2경기였다). 요렌테 역시 지난 시즌 선발 출전은 단 한 경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 들어 모우라는 손흥민의 아시안 게임과 아시안 컵 참가, 알리와 케인의 잦은 부상 덕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시소코 역시 다이어와 완야마, 윙크스가 동시에 자주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많은 시간을 출전할 수 있었다. 요렌테는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백업이었으나 중요 순간마다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당연히 출전 시간에도 변화가 있다. 지난 시즌 시소코의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출전 시간은 1395분으로 토트넘 전체 선수들 중 13위에 해당했고, 요렌테(223분)와 모우라(208분)은 필드 플레이어들 중에선 2번째와 3번째로 적었다(가장 출전 시간이 적었던 선수는 카일 워커-피터스로 188분). 하지만 이번 시즌은 시소코가 2246분으로 필드 플레이어들 중 5위고, 모우라는 2037분으로 7위에 위치하고 있다. 요렌테 역시 606분으로 지난 시즌에 비교하면 2배 이상 출전 시간이 늘어났다.
이렇듯 모우라와 시소코, 그리고 요렌테가 버텨주고 있었기에 토트넘은 이번 시즌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속에서 선수 영입 없이도 EPL 4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진출을 넘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전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준결승 2차전은 손흥민도, 에릭센도, 알리도 아닌 이들이 암스테르담 기적의 주인공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먼저 2실점을 허용하고 역전을 한 건 1998/99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유벤투스전 3-2 승) 이후 처음이다. 당시 맨유는 결승전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에게 먼저 실점을 내주고도 추가 시간에 연달아 골을 넣으며 캄프 누의 기적(결승전 장소가 캄프 누였다)과 함께 잉글랜드 구단 최초의 트레블(챔피언스 리그, EPL, FA컵 삼관왕)을 달성한 바 있다. 해당 경기에서 추가 시간에 골을 넣으며 영웅으로 등극한 두 선수는 바로 교체 출전한 테디 셰링엄(90+1분)과 올레 군나르 솔샤르(90+3분)이었다.
바로 어제 열린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 경기에서도 백업 공격수인 디보크 오리기의 멀티골과 후반 교체 출전한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의 멀티골에 힘입어 리버풀이 바르셀로나를 4-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렇듯 기적을 연출하기 위해선 단순 핵심 선수들 만이 아닌 백업 선수들의 뜬금 활약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