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1편에 이어 계속)
대한축구협회 기획실 실무자들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포르투갈, 브라질, 잉글랜드 구단들과 협업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노하우가 쌓였고, 이후 서유럽 축구선진국으로 선수들을 보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잉글랜드는 당시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로 부상하고 있었지만, 담당자들은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한해선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잉글랜드는 프로선수 취업비자 조건이 엄격하여, 교육을 잘 받는다 해도 프로선수로 계약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1편에서 소개한 남태희의 경우도 레딩FC와 1군 계약을 맺고 성인 무대에 데뷔를 해야 했으나, 취업비자 취득 문제로 도전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남태희는 에이전시의 도움으로 리그1 발렌시엥과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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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으로 대한축구협회는 여러 지역을 연구 조사했고, 독일로 눈을 돌려 함부르크, 뉘른베르크와 프로그램 운영 협약을 맺고, 우수선수 해외유학의 마지막 시즌을 시작한다.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마지막 시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함부르크에서는 17세 팀 지도자, 뉘른베르크에서는 유소년 스카우터들이 선수들을 선발하러 방한했다. 당시 기획실의 손성삼 과장과 현재 한국 여성 최초 월드컵 아시아예선 감독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김세인 사원이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두 구단의 담당자들은 여러가지 데이터와 선수들의 훈련 및 플레이를 관찰한 뒤, 손흥민과 김민혁, 이강 등을 선발했다. 그들은 선발된 선수들을 독일로 데려갔고, 협회는 전과 동일하게 전임지도자 1명을 선발하여 연수 겸 보호자로 현지에 파견하여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이 선수들 중 손흥민은 2009년 17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하여 알제리, 멕시코 등을 물리치는 데 일원으로 활약했다. 故 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은 22년 만에 8강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손흥민은 이 대회에서 3골을 터트리며 활약했고, 함부르크는 협회의 프로그램 실무자에게 연락해 손흥민과의 계약 의사를 전달했다. 대회 전까지만 하더라도 각 구단에서 독일에 간 선수들에 대한 구체적인 영의 제의가 없어 안타까워했으나, 함부르크의 연락에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슈퍼스타 손흥민의 본격적인 유럽무대 커리어가 시작하게 된 것이다.
Getty하지만, 이후 협회는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첫째, 선수 선발 시 협회 내부의 해당 연령대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파견을 가야 하는 전임 지도자의 불만이 있었다. 또 선수를 차출해야 하는 국내 프로구단 및 학원 축구팀의 엄청난 항의에 직면했다. 일부 구단의 유소년 담당 또는 사무국장은 협회 기획실에 찾아와 몇 날 며칠 동안 손성삼 과장을 따라다니며 선수가 유럽에 가지 못하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투자하고 발굴한 유망주를 아무런 보상없이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프로구단의 관리자로 일했을 때 그 당시를 회상하면 크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대의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보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수준이 높은 곳에서 교육을 받으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반면, 선발된 선수의 부모들은 너무나 좋았던지, 출신 지역 특산품 등을 기획실 사무실로 보내주었다. 그런 같은 현상을 보고 양측의 대조적인 입장 차이를 보며 모두가 만족하는 행정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기억이 난다.
둘째, 2000년도 이전에는 유럽 축구에 대해 막연히 강하고 좋다는 인식만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게 좋다는 정보가 부족했다. 에이전트도 깊이 있는 네트워크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곳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2002년 월드컵을 위해 협회가 직접 선수들을 내보내야 한다고 해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어느정도 해외유학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에이전트가 나서서 선수들의 유럽진출을 추진했다. 이때 축구산업에서 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한축구협회가 에이전트라는 시장의 영역을 침범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FIFA의 ‘미성년자 이적 금지 규정’이 늘 프로그램 진행을 어렵게 했다. 앞선 칼럼에서도 배경과 사례를 설명했듯이 FIFA는 미성년자의 유학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도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 FIFA 윤리위원회에 특수한 별건 사례로 다뤄 달라고 공문을 보내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항상 예외 조치를 받아왔다. 대한축구협회가 설명하고, 해당 구단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해서 공문으로 요청하도록 해야 하는, 기본적으로 규정에 반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매년 같은 배경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물론, 그리스 축구협회 등 몇몇 협회가 우수한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뛰어난 서유럽으로 선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선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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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합적인 이유로 한국축구의 현재 모습에 일조한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은 2009년 6월 손흥민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이 복귀하면서 막을 내린다. 이 프로그램을 보조하며 선수들의 개발에 작게나마 도움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이 프로그램에 선발된 선수들이 뛰기라도 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대한축구협회이후 협회는 해외에 나가 있는 우수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심사의 어려움 등으로 운영이 쉽지 않게 되었다. 프로그램 실무에 참여했으나, 위에 언급한 문제점 등으로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협회를 나와 프로구단 경험을 하고 계속해서 축구산업에 종사하다 보니, 시장이 자율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에는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 효율성을 얻었던 당시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느낀다.
*필자는 인디애나 대학교 켈리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부에서 재무학을 전공, 리버풀 축구산업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2006년부터 7년 간 대한축구협회 기획실, 발전기획팀, 기술교육국에서 근무하였다. 부산아이파크 홍보마케팅 실장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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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호영, Getty Images, 대한축구협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