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는 둘로 나뉜다 (2) 그들이 축구를 즐기는 방법: ‘스타디움’과 ‘페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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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FC(위)와 레알 베티스(아래) 홈구장 내부 모습. 사진=이하영 기자

[골닷컴] 이하영 기자 = “나에겐 세비야의 피가 흐른다. 태어날 때부터 세비야FC 팬 증서를 가지고 태어났다. 모르겠다. 이게 내 핏속에 흐르는 정서이다.” <-> “베티스의 정서는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로,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손주들에게로’이다. 내 몸에 흐르는 피는 빨간색이 아니다. 초록색과 흰색(베티스 상징 색)의 피가 흐른다.”

세비야는 둘로 나뉜다 1편 지역 라이벌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에 이어지는 2편 기사입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두 개의 축구 클럽,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는 여전히 ‘세비야의 주인’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는 지역 라이벌 클럽이다. 닮은 듯 다른 두 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세비야를 찾았다. 

# 완전한 색상 대비,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VS 베니토 비야마린

세비야FC의 홈구장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과 레알 베티스의 홈구장 베니토 비야마린은 각각 세비야 동부 지역과 남부에 위치해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세비야 경기장은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는 반면 베티스 경기장은 다소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은 클럽의 상징 색인 빨간색과 흰색을 활용해 경기장을 꾸며 열정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 경기장은 1958년 세비야의 새로운 홈구장으로 개장했으며, 42,714명을 수용할 수 있다. 스타디움 외관 한쪽에는 세비야 엠블럼(문장)을 크게 걸고 그 양쪽으로 세비야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대회와 우승년도를 표시해두었다. 다른 한쪽에는 일명 ‘포토존’으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세비야 엠블럼이 크게 그려있고 양쪽에 세계적인 축구 클럽의 엠블럼들도 작게 그려져 있었다. 

어떤 세비야 팬이 이 그림의 비밀(?)을 알려줬다. 레알 베티스 엠블럼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려져 있고, 이 마저도 다른 클럼 엠블럼에 의해 교묘하게 가려져있다는 것이다. 라이벌 클럽을 대하는 세비야의 자세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외벽에 그려져있는 세비야 엠블럼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그 옆에는 세비야FC가 가슴에 새긴 두 명의 선수 얼굴과 등번호가 새겨져 있다. 먼저 1945년생으로 과거 세비야FC에서 135 경기를 소화하면서 38골을 기록한 페드로 베루에소를 만날 수 있다. 그는 28세 나이로 경기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했다. 여전히 세비야는 그를 기억하고 있으며, 경기장 외벽에 그의 얼굴과 등번호를 새겼다. 이어서 1984년생 축구선수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비야FC와 스페인 축구의 미래로 촉망받던 선수였으나, 그의 나이 22세에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두 선수 외에도 많은 세비야FC의 레전드 선수들의 얼굴을 외벽에 그려 넣었다.

경기장 규모는 매우 작다. 피치와 관중석이 상당히 가까워 팬들과 선수들이 호흡하기 좋게 설계되었다. 경기 시작 전 세비야 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주로 가족단위의 팬들이 많았으며 어린 아이들도 경기장을 많이 찾았다. 

경기 시작 전 세비야 팬들이 함께 부르는 응원가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팬들이 각자 챙겨온 세비야 스카프의 양쪽 끝을 잡고 팔을 높이 뻗자 붉은색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또한, 중간에 응원가가 잠시 멈추고 오롯이 세비야 팬들의 육성으로만 응원가가 불리는 구간이 있었는데,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큰 울림이 느껴졌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의 모습. 사진=이하영 기자

세비야의 붉은색과 대비되는 레알 베티스의 상징 색은 초록색과 흰색이다. 경기장도 초록색으로 꾸며졌다. 열정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과는 달리 베니토 비야마린은 보다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비야마린은 1929년 개장했으며, 수용인원은 60,721명이다. 규모 면에서는 세비야 경기장보다 베티스가 더 컸다. 스페인 내에서도 경기장 규모는 큰 편에 속한다. 

베니토 비야마린의 모습. 사진=이하영 기자

세비야 경기장이 선수들에게 헌정하는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었다면, 베티스 경기장은 팬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비야마린 외부에는 오랜 시간 클럽에 사랑과 지지를 보내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동상도 있다.

베티스 팬들도 주로 가족단위로 경기장을 찾았다.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오거나 엄마와 아빠를 따라 초록색 머플러를 두르고 비야마린에 온 아이들이 특히 많았다. 그러고 보니 경기장 내부에 적혀있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De padres a hijos, de abuelos a nietos, una pasión llamada Betis’ -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손주들에게로, 베티스라 부르는 하나의 열정’. 베니토 비야마린 정중앙에 적힌 이 문구 그대로 베티스 팬들은 대대로 클럽에 대한 사랑을 물려주고 있었다.

베티스 홈구장 내부에 적혀있는 문구(좌)와 경기장 주변에서 만난 베티스 팬들의 모습(우). 사진=이하영 기자

레알 베티스는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 클럽으로도 유명하다. 취재차 방문했던 비야마린에서는 2018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불우 어린이 돕기’ 인형 던지기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벤트는 일명 ‘인형 샤워’였다. 초록색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경기장에 입장하자 팬들은 자신이 챙겨온 인형을 일제히 경기장에 던졌다. 작고 귀여운 인형들이 경기장에 쏟아져 쌓였다. 이는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전달될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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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 페냐

스페인에는 축구를 즐기는 독특한 문화, ‘페냐’가 있다. 페냐는 우리나라의 서포터즈 또는 팬 모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 페냐는 상당히 오래되고 깊은 역사를 자랑하며 하나의 단체 또는 집단의 성향을 띠고 있다. 하나의 팀을 응원하는 페냐의 종류와 수는 매우 다양하며 전 세계 각지에서 활동한다. 주로 페냐는 클럽 연고 지역에 식당을 가지고 있어 팬들에게 모임 장소를 제공한다. 여기서 팬들은 함께 경기를 보고 얘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지고, 다 같이 식사와 술을 즐기며 추억을 쌓기도 한다.

스페인, 그 중에서도 세비야만의 페냐 문화를 체험해보기 위해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의 대표적인 페냐를 찾았다. 페냐는 단순한 ‘팬’을 넘어서 ‘클럽의 일원’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선수들과 교류도 상당히 잦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비야 페냐 모임 장소 내부 모습. 사진=이하영 기자

먼저, 세비야FC의 페냐를 찾았다. 외관은 역시나 빨간색과 흰색으로 꾸며졌다.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선 후 현지 페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한쪽에서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5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웃고 있었다. 특별한 악기는 없었지만, 울퉁불퉁한 유리병을 숟가락으로 치면서 내는 소리와 박수로 대신했다. 축구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모여서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 세비야 페냐 가슴 속에는 여전히 안토니오 푸에르타가 자리하고 있다

고개를 돌리니 아기자기한 페냐 식당의 내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벽은 온통 세비야FC 사진들로 가득 차있었고, 곳곳에 세비야FC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비야 페냐 마음속에는 여전히 ‘안토니오 푸에르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여전히 세비야FC 팬들은 푸에르타를 잊지 못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그를 추모하고 그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비야 페냐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안토니오 푸에르타 모습. 사진=이하영 기자

세비야 출신의 안토니오 푸에르타는 세비야FC 유스팀을 거쳐 1군에서 약 3년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푸에르타는 2005/06 시즌 UEFA 유로파리그 준결승전에서 연장전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에서도 대단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이에 푸에르타는 촉망 받는 세비야FC의 미래로 떠올랐다. 이어서 세비야는 2006/07시즌 라리가 3위를 기록했고, 코파 델 레이와 유로파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영광스런 한 해를 보냈다. 이후 비극이 발생했다. 2007/08시즌 라리가 개막전이 세비야에서 열렸다. 이 경기에서 푸에르타는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의 나이 향년 22세였다. 

세비야 팬들은 여전히 푸에르타를 기억하고 있다. 페냐 장소에는 푸에르타 유니폼이 액자에 걸려있었고,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세비야 페냐 아나 씨는 푸에르타 사진들 사이에 있는 라모스를 가리키면서 “라모스와 푸에르타는 어렸을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설명했다. 

두 선수는 모두 세비야 출신으로 유스팀에서 동고동락하며 축구선수의 꿈을 함께 키웠다. 그러나 푸에르타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라모스는 그의 죽음을 영원히 가슴에 품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라모스는 푸에르타의 죽음 이후 그를 향해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유니폼 안 티셔츠에 “나의 형제 푸에르타, 편히 잠들길... 결코 잊지 못할 거야”라고 적어 놨다. 하늘로 보내는 메시지였다. 또한, 현재 라모스의 대표팀 등번호 15번은 과거 푸에르타의 번호였는데, 그를 추모하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계속해서 15번을 달고 있다. 

이어서 아나 씨는 “세비야 경기를 보면 전반 16분에 ‘안토니오 푸에르타~ 랄라라랄라랄라~’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의 등번호였던 16번의 의미를 담아 16분에는 항상 그렇게 노래를 부른다”고 밝혔다. 

세비야 페냐 아나 카스티요. 사진=이하영 기자

페냐 식당 바로 앞에는 ‘푸에르타 거리’가 있다. 실제로 안토니오 푸에르타가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고, 세비야 선수가 되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서 페냐 활동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푸에르타 가문은 대대로 ‘세비이스타(세비야 팬)’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세비야 페냐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세비야FC에게도, 세비야 페냐에게도 그는 소중한 존재였다. 이에 푸에르타의 죽음 이후 그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페냐 식당 앞 거리를 푸에르타 거리로 명명했다.

세비야 페냐 아나 씨는 “나에겐 세비야 피가 흐른다. 나는 우리 가족에 의해서 세비야 팬이 됐다. 태어날 때부터 세비야 페냐 증서를 갖고 태어났다. 우리는 세비야FC 잠옷, 스카프 등등을 구매해왔고, 경기장에 모여 응원가를 불렀다. 모르겠다. 이게 내 핏속에 흐르는 정서”라면서 세비야FC를 응원하는 이유를 밝혔다.

[볼드]# 레알 베티스 페냐 ‘De padres a hijos, de abuelos a nietos, una pasion llamada Betis’ -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손주들에게로, 베티스라 부르는 하나의 열정’.[/볼드]

다음으로 레알 베티스 페냐 모임 장소를 찾아갔다. 역시나 건물 내부는 클럽의 상징색인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당일에 마침 베티스 경기가 있어서 식당은 베티스 페냐들로 북적였다. 각자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경기가 시작되자 식당 곳곳에 있는 TV로 다 같이 경기를 관람했다.

레알 베티스 페냐 모습. 사진=이하영 기자

세비야 페냐와 마찬가지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곳곳에서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함께 경기를 관람하면서, 베티스가 골 기회를 놓치면 다 같이 탄식을 내질렀고, 득점에 성공한 후에는 모두 일어나 베티스 응원가를 부르며 기뻐했다. 또한, 경기 중간 하프타임에는 작은 콘서트도 진행했다. 약 15명의 베티스 페냐 음악단이 무대에 모여 기타와 탬버린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흥겨운 노랫소리에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많은 페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관계를 구축하며 축구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이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찾은 베티스 페냐(pena cultural betica)는 1927년 창설된 모임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페냐 모임이었다. 90년이 넘는 역사를 클럽과 함께 해온 베티스 페냐인 만큼, 역사적인 기념품과 사진 등을 보관해 둔 장소가 따로 있었다. 이곳에서 레알 베티스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여러 보물들 중 가장 먼저 꺼내 보여준 건 아주 오래된 팀 사진이었다. 1977년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전에 출전한 베스트일레븐 사진이었다. 당시 레알 베티스는 역사상 첫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다음으로 자랑스럽게 꺼내 보인 두 번째 보물은 호아킨의 친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이었다. 페냐 창립 90주년을 맞아 제작한 유니폼에 클럽 레전드 호아킨 산체스가 사인을 남겼고, 이를 커다란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세 번째 보물은 레알 베티스 선수단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이었다. 8년 전 베티스에서 활약했던 루벤 카스트로 외 모든 선수들의 등번호와 사인이 담겨있었다.

베티스 페냐의 또 다른 보물은 식당 곳곳에 걸려있는 커다란 액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세비야에 푸에르타가 있다면, 레알 베티스에는 호아킨이 있었다. 호아킨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전에 출전한 적이 있어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선수이다. 그는 베티스 유스팀을 거쳐 성인팀에서 뛰었으며, 현재까지도 레알 베티스의 에이스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레알 베티스 페냐가 보관하고 있는 기념품(좌)과 살아있는 전설 호아킨 사진(우). 사진=이하영 기자

베티스 페냐 안토니오 씨는 호아킨의 사진과 사인이 담긴 액자를 가리키면서 “그는 스페인 사람들 모두가 사랑하는 선수이다. 그는 베티스 외에도 발렌시아, 말라가 등에서 활약했다”고 설명했다. 

레알 베티스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호아킨 산체스는 베티스 유스팀에서 성장한 세계적인 축구선수이다. 그는 일찍이 뛰어난 기량을 뽐내며 레알 베티스의 ‘신성’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만 20세 나이로 스페인 대표팀에 발탁됐다. 소속팀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어린 나이부터 좋은 활약을 보인 호아킨은 스페인 전역에서 사랑 받는 축구선수가 됐다. 특히, 그의 유머러스하고 털털한 성격 때문에 많은 팬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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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은 스페인 중위권 팀이었던 베티스의 부흥을 이끌었다. 베티스는 한때 호아킨을 등에 업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따내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에 호아킨은 레알 마드리드, 첼시 등 유럽 빅클럽으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지만, 베티스와의 의리를 선택하며 친정팀에 남았다. 그러나 얼마 후 2006년 발렌시아 이적이 성사됐고, 이후 말라가와 피오렌티나를 거쳐 2015년 다시 레알 베티스로 돌아왔다. 베티스 팬들은 그의 복귀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리고 만 37세의 호아킨은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며 베테랑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베티스 페냐 안토니오. 사진=이하영 기자

베티스 페냐와 클럽의 역사를 설명해주던 페냐 안토니오 씨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레알 베티스 팬이다. 우리 아버지가 베티스를 응원했고,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로 베티코다. 베티스의 정서는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로,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손주들에게로’이다. 내 몸에 흐르는 피는 빨간색이 아니다. 초록색과 흰색(베티스 상징 색)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

세비야 축구는 팬들의 가슴 속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세비야인들은 자신의 집안을 ‘세비야 가문 또는 레알 베티스 가문’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하나의 축구 클럽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세비야에서 만난 축구 팬들에게 “왜 그 팀을 응원하는가”를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답변을 어려워했다. 결국 돌아온 답은 같았다. 세비야FC 팬들이나 레알 베티스 팬들이나 “부모님을 따라서” 또는 “내 몸에 세비야 또는 베티스의 피가 흐른다”고 답했다. 이들 모두가 “Born to be 세비이스타 또는 베티코”로 태어난 것이다.

세비야 전체가 들썩거리는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의 라이벌 매치 ‘세비야 더비’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4월 14일(한국시간) 스페인 세비야에 위치한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펼쳐진다. 현재 세비야FC는 리그 6위, 레알 베티스는 리그 9위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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