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세비야 풍경. 사진=이하영 기자

세비야는 둘로 나뉜다 (1) 지역 라이벌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

[골닷컴] 이하영 기자 = “세비야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한다. 세비야에서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를 제외한 다른 팀을 응원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이 도시는 ‘세비이스타(sevillista)와 베티코(betico)’, 이 둘로 나뉜다.”

스페인 남쪽 끝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 세비야는 ‘정열과 낭만’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세비야의 풍경은 따뜻하고 활기차며 열정적이다. 붉고 뜨거운 태양이 눈부시게 작열하고, 그 아래 오렌지 가로수가 늘어서 거리를 수놓으며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는 기타 연주와 노랫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선율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열정적으로 ‘플라멩코’를 추는 여인들을 만날 수도 있다.

스페인 남부 세비야 풍경. 사진=이하영 기자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 세비야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유희가 있다. 세비야 지역민들이 ‘플라멩코’와 ‘투우’만큼이나 사랑하고 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축구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축구를 즐기고 있고, 축구와 호흡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세비야에는 두 개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이 있다.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 그 어떤 지역 라이벌보다 치열하게 맞붙는 두 팀은 ‘애증’의 관계에 있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또 다독이며 함께 발전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누가 세비야의 주인인가”를 두고 격렬히 맞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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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의 라이벌 역사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의 ‘세비야 더비’는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격렬한 더비로 여겨진다. 심지어는 폭력적인 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긴장감 높은 최고의 라이벌 매치이다.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오랜 역사와 함께 진화되어 왔다.

세비야FC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인 1890년 1월 25일, 스코틀랜드계 젊은 영국인들이 세비야에 모여 번스 나이트(스코틀랜드 민족시인 로버트 번스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즐기던 중 세비야FC 창단을 결정했다. 당시 세비야FC는 ‘민간 문화·체육 협회’로 설립됐고, 1905년에 정식 축구 클럽으로 등록했다. 

특히, 세비야FC는 동부 지역 ‘네르비온’을 거점으로 뒀는데 이 지역은 세비야 내에서 가장 빠른 현대화를 이뤄내 상업중심지로 발달한 곳이며 주로 중산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과거에는 이런 지역적 특색이 더욱 두드러졌고, 결국 세비야FC는 중산층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클럽 운영 과정에서 노동자나 빈민 출신을 차별하는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에 반해 세비야 지역의 대학생들이 ‘모두를 위한 평등한 클럽’, 레알 베티스를 창단한다.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엠블럼. 사진=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 공식 트위터


세비야와 함께 안달루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축구 클럽인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는 1907년 9월 12일에 세비야 지역 대학생들에 의해 설립됐다. 팀의 정체성은 그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발롬피에’는 일반적인 영국식 표기 ‘FC: 풋볼클럽’과 달리 스페인어로 축구라는 뜻의 ‘Balompié’를 택해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설립된 클럽이라는 성격을 더욱 확고히 했다. 또한, ‘베티스’라는 이름은 세비야를 관통하는 과달키비르 강의 로마식 이름인 ‘바에티스’에서 유래됐으며, ‘레알’은 1914년 세비야 발롬피에와 베티스 발롬피에가 통합하는 과정에서 알폰소 13세의 후원을 받으며 붙은 명칭이다. 

창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는 출발부터 그 성향이 매우 달랐다. 정리하자면, 세비야는 영국인들에 의해 설립된 클럽이자 지지기반은 중산층이었고, 레알 베티스는 스페인인들에 의해 창단됐으며 주로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받아왔다.

두 팀의 라이벌 매치가 더욱 격렬해지고 폭력적인 성향을 띠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당시 두 팀은 모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클럽의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레알 베티스는 비싸고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세비야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세비야는 장기적인 목표를 잡고 유스 발전에 투자했다. 그러자 2000년대 들어 레알 베티스는 호아킨 산체스를 중심으로 팀을 재정비하며 전력이 상승했고, 세비야 또한 유스 출신 라모스, 헤수스 나바스 등 훌륭한 선수들이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두 팀이 함께 성장하기 시작하자 ‘세비야의 주인’ 자리를 꿰차기 위한 팬들의 몸부림이 과격하게 번졌다. 세비야 더비가 펼쳐지는 날이면, 전날 밤부터 시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서로를 향해 욕설이 섞인 비난을 내뱉고 홍염을 피우는 등 경기장 밖에서부터 자존심 싸움을 이어간다. 이에 세비야 더비가 펼쳐지는 날이면 도시에는 경찰병력이 배치된다. 세비야 원정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을 찾은 레알 베티스 팬들이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했고, 경기 도중 세비야 일부 팬이 경기장에 난입해 베티스 골키퍼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또한, 베티스 감독이었던 후안데 라모스가 세비야 감독직을 맡자 배신감을 느낀 베티스 팬들이 라모스 감독을 향해 물병을 던지는 사태도 일어났다. 

세비야 더비 사진. 출처=유튜브 채널 'partofthegametv' 캡처세비야 더비 사진. 출처=유튜브 채널 'partofthegametv' 캡처


이들의 폭력적이고 몰상식한 팬 문화가 진정된 건 세비야FC 선수 안토니오 푸에르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이후부터다. 이 사건은 세비야 팬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고, 베티스도 함께 애도를 표했다. 특히, 이 시기 펼쳐진 세비야 더비는 역사적으로 가장 평화로운 더비가 됐으며 양 팀 선수들 모두가 푸에르타를 추모하며 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경기를 펼쳤다. 이를 계기로 세비야와 베티스의 응원 문화는 과거와는 달리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됐다.

# 세비야의 주인은 누구? 성적으로 본 세비야FC VS 레알 베티스

두 팀의 역대 성적을 살펴보면, 세비야FC가 여러모로 앞선다. 레알 베티스는 최근까지도 1부와 2부를 오가며 리그에서 어려운 상황을 자주 마주했고, 과거에는 4부 리그까지 떨어졌던 적도 있다. 반면, 세비야는 창단 이후 몇 차례 하위리그로 떨어졌던 때를 제외하면 주로 1부에서 경기를 치러왔다. 

두 팀 모두 라리가 우승은 1회씩 경험했다.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에서는 세비야가 5회. 베티스가 2회 우승했고, 코파 안달루시아에서는 베티스가 한 번의 우승을 달성한 반면 세비야는 18번 우승했다. 이외에도 세비야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에서 5번 우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다 우승팀으로 기록됐으며,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와 UEFA 슈퍼컵에서 각각 한 번씩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우승 커리어 면에서는 세비야가 앞선다. 그렇다면, 두 팀이 맞붙었던 ‘세비야 더비’ 성적은 어떨까. 지금까지 두 팀은 총 128번 경기를 펼쳤고 세비야가 59번, 레알 베티스가 38번 승리했고, 무승부는 31번이다. 베티스가 기록한 골은 154 골이고, 세비야는 총 200골을 기록했다. 상대전적에서도 세비야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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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세비야 팬인가요? 레알 베티스 팬인가요?”

세비야를 둘로 나누고 싶다면, 세비야에서 만난 사람에게 “당신은 세비야 팬인가요? 레알 베티스 팬인가요?”라고 질문을 해보면 된다. 물론, 축구를 좋아하는 세비야인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세비야는 축구 사랑이 대단하기로 유명한 도시이다. 세비야인이 응원하는 팀이 있다면, 대부분이 세비야FC 또는 레알 베티스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겨울 세비야를 방문해 택시를 탔다. 문득 궁금해졌다. “기사님, 세비야FC 팬이세요? 레알 베티스 팬이세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택시기사 프란 씨는 “우리 가문 대대로 세비이스타(세비야FC 팬)다.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그래왔다. 나는 세비야에서 태어났고, 태생부터 세비야 팬”이라고 말했다. 

세비야 택시기사 프란/세비야FC 팬. 사진=이하영 기자세비야 택시기사 프란/세비야FC 팬. 사진=이하영 기자

이어서 그는 “레알 베티스는 도시의 2번째 클럽이다. 그러나 나는 안티 레알 베티스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세비야FC가 레알 베티스보다 나은 점에 대해서는 “항상 세비야가 축구를 잘했다. 기술도 더 훌륭했고, 우위에 있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짧은 대화였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단순히 좋아하는 축구팀을 대하는 팬의 입장을 넘어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후 세비야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어서 경기 현장 취재를 하면서 만난 세비야 담당 골닷컴 기자 파코 씨는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파코 씨는 “세비야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한다. 마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축구 팀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세비야에서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를 제외한) 다른 팀을 응원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세비야에서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팬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모두가 세비야FC 또는 레알 베티스 팬”이라며 세비야 지역의 축구 문화를 아르헨티나의 지역 라이벌 팀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에 빗대어 설명했다.골닷컴 기자 파코/세비야 지역 축구 담당 취재 기자. 사진=이하영 기자

이어서 그는 “이 도시 내 세비야와 베티스 팬들은 약 50 대 50으로 나뉜다. 지난해에는 베티스가 세비야 더비에서 승리하면서 2%정도 높은 지지율을 확보했었지만, 지금은 50 대 50 정도로 나뉠 것”이라며 세비야 지역을 반으로 나누는 세비야와 베티스 팬에 대해 얘기했다.

이처럼 세비야 지역민들은 온 열정을 다해 축구를 즐긴다. 도시가 풍기는 분위기만큼이나 정열적이고 뜨겁게 자신의 팀을 응원하고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어서 2편에서는 세비야FC 홈구장인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과 레알 베티스 홈구장 베니토 비야마린의 분위기와 스페인의 페냐(팬 모임) 문화, 그리고 두 팀의 레전드 ‘안토니오 푸에르타’와 ‘호아킨’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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