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정재은 기자=
스무 살 대학 선수는 부푼 꿈을 안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어느새 스물 다섯이 되어 한국으로 향한다. 난생처음 K리그 무대에 발을 내디딘다. 몸과 생각은 성숙해졌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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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재(25)는 “시원섭섭”으로 독일에서의 5년을 정의했다. 한국에서 새 출발 하는 기분을 묻자 “일단 뛰어보고 말할게요”라며 웃는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 <골닷컴>은 서영재와 지난 5년을 정리했다. 새 출발 하는 대전하나시티즌에서 그는 "코뿔소처럼 뛰겠다"라고 다짐했다.
GOAL: 독일에서 마지막 밤이네요. 기분이 어때요?
“시원섭섭하네요. 유럽에서 도전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결과가 좋지 못해서 섭섭한 감정도 있어요. 제가 노력한 만큼 기회를 더 받았으면 더 성장해서 돌아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GOAL: 노력에 비해 기회를 많이 못 받았다는 느낌이 남나봐요
“제가 부족해서 못 뛴 건 사실이지만 최근 2년 동안 뒤스부르크와 홀슈타인 킬에서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경기도 많았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제가 들어가야 할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못 들어가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다 축구의 일부라고 생각해요.(웃음)”
GOAL: 수없이 다녀간 함부르크 공항도 이제 당분간 올 일이 없네요
“엄청 많이 왔다 갔다 했죠. 기분이 이상할 거 같아요. 오히려 인천공항을 많이 못 가봤어요.”
GOAL: 무엇보다 ‘재성이 형’이랑 떨어져서 아쉽겠어요
“아유, 워낙 붙어있어서 이제 지겨워요, 하하. 이제 좀 떨어져서 형이 저의 소중함을 느낄 때가 됐어요. 저는 이미 2주 전에 방을 빼서 한국 가기 전까지 재성이 형 집에서 지내는 중이거든요. 지겹게 붙어있어요.”
GOAL: K리그 정상에 섰던 형인데, 조언도 많이 구했나요?
“저는 K리그에 대해 전혀 모르잖아요. 그래서 자주 물어봤죠. 여러 팀을 두고 고민할 때 재성이 형은 ‘일단 네가 경기에서 뛰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그거에 집중해라. 네가 성장할 수 있는 팀에서 뛰어야 한다’라고 얘기해줬어요. 또, 제가 국가대표로 뛰고 싶어 하는 걸 형도 아니까. 무조건 제가 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팀으로 가라고 해줬어요.”
Goal KoreaGOAL: 떠난다는 사실을 킬에 언제 알렸나요?
“3주 전쯤 다들 알게 됐어요. 분데스리가는 팀에서 계약이 끝나거나 임대 기간이 끝나서 떠나는 선수들에게 마지막에 선물을 줘요. 사진이 담긴 액자를 비롯한 가벼운 선물을 주는데 보통 경기장에서 주거든요. 근데 코로나19 때문에 그건 못 했고, 대신 엊그제 팀원들끼리 그릴파티를 했어요. 거기서 선물을 받았어요.”
GOAL: 팀원들이 뭐라고 얘기해주던가요?
“선수들은 왜 가냐 그러고 같이 있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뭐, 그렇게 됐다고 했죠. 특별한 이야기는 안 했어요. 파트릭 콜만 코치가 저를 특별히 예뻐해 줬는데, 같이 한 시즌 더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얘기해줬어요. 재계약 이야기 나왔을 때 그 코치가 감독이랑 미팅에서 저랑 한 시즌 더 하고 싶다고 했대요. 근데 저는 기회를 너무 못 받은 기억밖에 없어서... 이 선택을 했죠.”
GOAL: 킬에서 왜 그렇게 기회를 못 받았을까요?
“왼쪽 풀백에서 뛰는 요하네스 반덴 버그(33)가 베테랑이에요. 그런데 새로 온 감독(올레 베르너)이 한 살 더 어리거든요. 2군에서 올라온 감독이에요. 제가 계속 개인 미팅으로 저는 왜 못 뛰냐고 물어봤는데, 그라운드에 그런 베테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줬어요.”
GOAL: 결국 그게 킬을 떠나기로 결심한 결정적 이유였겠네요
“슈베르트 전 감독이랑도 계속 미팅하며 여쭤봤어요. 요하네스가 잘하는 것도 알고, 내가 부족한 것도 알지만 올 시즌은 정말 내가 자신있고, 들어갈 타당할 이유가 있다고. 감독은 계속 요하네스가 베테랑이니까 뛰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세 번째 그 얘기를 듣고 ‘아, 여기는 떠나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슈베르트 감독 마지막 경기에서 제가 뛰었는데 그때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어요. 베르너 감독이 온 후 저랑 미팅했는데, 그렇게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네가 들어가는 게 무조건 맞다’라고. 근데 요하네스가 이제껏 뛰어왔고, 베테랑이니까 우선 그 선수를 뛰게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기다리라고요. 저도 동의했고요. 근데 몇 달이나 기다리게 되니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렇게 2, 3번 미팅했는데 계속 같은 이야기만 했어요.”
Goal KoreaGOAL: 20대 초반을 모두 독일에서 보냈어요
“만 20세에 나와서... 벌써 5년 차가 됐네요. 조금 아쉬운 것밖에 없어요. 축구 적으로 아쉽죠. 결과물을 못 보여줘서. 독일에선 아쉬운 점밖에 없어요.”
GOAL: 함부르크 입단 첫해를 복기해볼게요. 2군으로 입단해서 주전으로 뛰었고, 다음 시즌에도 부상 기간이 길었지만 복귀 후에 계속 주전으로 뛰었어요
“개인적으로 자신감이 엄청나게 오른 때였어요. 함부르크 시절에 2군에서 제가 입지가 있는 편이었고, 2군 감독들도 많이 도와주려고 했어요. 저도 2군에만 있기 싫어서 한국이든, 독일이든, 2부든, 3부든 가리지 않고 알아봤는데 함부르크 감독들이 옆에서 도와준다고 하니까 기다렸어요. 2년 차에는 부상 때문에 많이 못 보여줬고, 3년 차에는 1군으로 확실하게 간다고 하더라고요. 2군 감독이 어떻게든 자기가 1군 보내준다고.”
GOAL: 세 번째 시즌인 2017-18시즌에 1군 명단에 등록이 됐어요. 하지만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는데. 왜였나요?
“그때 함부르크 2군에서 저를 가르친 크리스탈 감독이 저를 데리고 1군으로 올라갔어요. 헤르타 베를린전(27R) 명단에 포함이 됐고, 감독이 경기 전날 저한테 ‘너 뛸 거니까 준비해라. 축하한다’라고 해줬어요. 근데 당일에 교체될 선수들 명단을 보는데 제가 빠진 거예요. 감독은 아무 말도 안 해줬고요. 이런저런 소문을 많이 들었지만, 감독이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아서 소문은 믿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 후로도 데뷔 기회는 없었어요.”
GOAL: 뒤스부르크로 이적한 이유도 결국 뛰고 싶어서 였겠네요
“프로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독일 스카우터도 저한테 뒤스부르크가 지켜보고 있다고 해줬고, 마그데부르크도 관심을 가져줬어요. 구단 구경까지 하러 갔어요. 근데 뒤스부르크가 더 적극적이었어요. 구체적인 플랜을 얘기해주면서 제가 확실히 뛸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GOAL: 하지만 첫 16라운드 내내 명단에 못 들기가 부지기수였고, 벤치에 네 차례 앉은 게 전부였어요. 심정이 어땠나요
“그때...와... 무조건 떠난다. 나 불러주는 팀 있으면 무조건 떠난다. 이런 생각뿐이었어요. 불면증도 엄청 심했어요. 진짜 힘들었어요. 잠도 못 잤어요. 너무 화가 나서. 진짜... 이번 시즌에는 그래도 재성이 형이 있으니까 견딜 수 있었지 그때는 일주일, 이주에 한 번씩 감독 찾아갔어요. 열 받아서. 왜 못 뛰냐고 물어보고. 그때 계속 팀이 강등권이었거든요. 감독은 ‘지금 왼쪽 풀백이 주장이라서 뛰어야 한다’라고 얘기해줬어요.”
GOAL: 워낙 밝아서 불면증까지 겪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하... 그냥,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불면증은 다행히 점점 사라졌어요. 욕심을 많이 내려놨고요. 그해 겨울 전에 이미 이야기가 끝났어요. 팀에서도 타 구단에서 이적료 어느 정도 나오면 보내주겠다고 했고요. 근데 제가 전반기 막판 함부르크전(17R)에서 뛰었는데 그때 좋게 봤나 봐요. 구단에서 갑자기 말을 바꾸더라고요. 너 여기서 뛰어야 한다고. 후반기부턴 네가 주전이라고.”
“감독이 저랑 얘기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만나러 갔어요. 못 챙겨줘서 미안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마음이 약해졌죠. 상황이 복잡해서 자기도 많이 힘들었고, 어려웠다고 얘기해줬어요.”
GOAL: 뒤스부르크에서 겨우 7경기 뛰었는데 그런 와중에 킬에서 관심을 받았어요
“동기부여가 쫙 올라간 포인트가 있어요. 아주 가끔 뛰었는데, 독일 에이전트한테 연락이 오더니 마인츠 단장이 자기한테 연락 와서 서영재 잘한다고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고 말했다더라고요. 신기했고, 자신감도 생겼어요. 근데 너무 가끔 뛰어서 더 보여주지 못했죠.”
“킬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연습경기를 킬이랑 한 적도 있거든요. 킬이랑 할 때 유난히 제가 경기력이 좋았어요. 마침 케빈 볼체가 경고누적으로 빠져서 제가 킬전에서 뛰었거든요. 그 경기 끝나고 연락이 왔고,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갔어요.”
Goal KoreaGOAL: 독일에서 시간을 살펴보니, 선수로서 좋았던 순간보다 속상한 순간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함부르크에 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쳐났어요. 2년 동안 제가 1군에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버텼는데 막상 올라가니까 ‘아, 내가 정말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1군에 못 올라온 이유가 있구나. 이런 선수들이 있으니까 내게 기회가 없던 거구나. 부족한 걸 엄청나게 느꼈어요. 그때부터 미친 듯이 노력했죠. 그런데 뒤스부르크와 킬에서 저를 보여줄 기회가 많이 없어서 경기력도,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GOAL: 축구선수가 아닌 ‘인간’ 서영재로서는 어때요?
“저는 항상 욕심이 넘쳐나는 사람이었어요. 이제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그걸로 막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내려놓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 또, 힘든 상황일 때 조금 더 차분해서 대처하고, 빨리 잊을 수 있는 방법. 아, 물론 제가 까불거리는 건 늘 똑같습니다! 하하”
GOAL: 처음 독일로 갈 때 세운 목표가 있을 텐데, 몇 퍼센트나 이룬 것 같나요?
“30~40%?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많이 이룬 것 같네요? 그래도 프로에서 뛰었으니까요. 가장 아쉬운 건, 분데스리가 1부에서 뛰고 싶었는데 그걸 못해서 아쉽죠. (GOAL: 언젠가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어요?)그때 제 나이가... 가능할까요? 재성이 형은 워낙 월드 클래스니까 가능했지만... 그래도 꿈은 잃지 않고 있어요!”
GOAL: 이제 대전하나시티즌의 선수가 돼요. 프로 데뷔를 유럽에서 했고, 유럽 경험이 많은 선수예요. 그런 선수에겐 어쩔 수 없이 많은 기대감이 쏠리는데, 부담은 없나요?
“부담감이 좀 있죠. 언론에서 주목도 많이 받고, 팬분들은 반신반의하시는 것 같아요. 일각에서는 ‘얘는 오면 못한다. 2부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답이 나온다’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킬 경기 보면 엄청 대단한 건 아니지만 준수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줄 것 같다’라고 하고. 다 외웠네요, 하하. 부담감 떨치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죠.”
GOAL: 뭘 보여줘야 할까요?
“저는 그동안 경기를 영리하게 풀어나가는 걸 제 장점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전에서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동안 인터뷰에서는 늘 ‘제2의 이영표’, ‘영리한 플레이’ 등의 수식어가 붙었는데 이번에는 ‘대전의 코뿔소’가 되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체격 장점을 살려서 다부지게 밀어붙이려고 해요.”
GOAL: K리그에서 꼭 만나보고 싶었던 선수가 있나요?
“홍철, 김진수. 같은 포지션이니까 보고 배우고 싶어요. 왜 국가대표인지. 보는 거랑 같이 뛰어보는 건 다르잖아요. 평소 두 선수의 영상도 많이 봐요. 너무 잘하더라고요. 둘 다 왼발이고. 실제로 보면 뭐가 다른 지 보고 싶어요. 그런데... 리그가 달라서 만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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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 마지막 질문입니다. 독일에서 무엇이 가장 그리울 것 같나요?
“함부르크 시절 저를 도와준 가족분들이요. 독일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제가 좀 아재입맛인데, 국밥도 괜찮겠죠?”
사진=정재은, 서영재 제공, Getty Im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