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나우두 이전 브라질 최고의 해결사
▲ 뛰어난 마무리 능력 자랑하는 호마리우, 24년 만에 브라질 WC 우승 이끈 슈퍼스타
▲ 현역 시절 악동으로 불렸던 호마리우, 은퇴 후에는 정치인으로 변신
[골닷컴] 박문수 기자 = 2020 발롱도르 드림팀에 선정될 전방 공격수는 한 명이다. 쟁쟁하다. 이름만 들어도 '헉'소리가 날 만한 각국 킬러들이 후보진을 채우고 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호나우두는 물론이고, 네덜란드 축구의 아이콘 크라위프와 전차군단 폭격기 게르트 뮐러 등이 후보에 올랐다. 이제는 대통령으로도 유명한 라이베리아의 아프리카 출신 유일무이 발롱도르 위너 조지 웨아도 발롱도르 최종 공격수 후보에 선정됐다.
하나 같이 전설들이다. 누굴 뽑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한 선수를 선택해야 한다. 이왕이면 당대 최고 선수를 선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대통령 웨아를 얘기할 수도 없고, 황제인 호나우두를 언급할 수도 없었다. 베르캄프는 사실 중앙 공격수보다는 좀 더 쳐진 공격수에 어울리는 선수다.
그래서 꼽은 선수가 바로 호마리우다. 천부적인 마무리 능력을 자랑하며, 24년 만에 브라질에 월드컵 우승을 선물한 호마리우.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발롱도르 특집'에서 다룰 마지막 선수는 브라질의 해결사 호마리우다.
# 호마리우는 누구
1966년생이다. 90년대 중반까지 브라질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린 해결사다. 미국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 길진 않았지만 바르셀로나 레전드로 불렸으며, 비교적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남다른 자기 관리를 보여줬다. 동시에 워낙 여러 클럽에서 활약한 탓에 저니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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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마리우가 유명한 이유는 축구 선수로서만이 아니다. 선수 시절 다소 불성실한 훈련 태도?에도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며 일명 '악동'으로 불렸지만,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사회당 의원으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2010년 정계에 입성한 호마리우는 하원 의원을 거쳐 현재는 브라질 히우 지 자네이루주의 상원 의원직을 역임 중이다.
# 선정 이유
여러 선수 중 상대적으로 접하기 힘든 공격수를 꼽았다. 그렇다고 라이베리아 대통령 조지 웨아를 소개할 수는 없으니. 호나우두와 나머지 선수들도 이미 너무 유명하다.
France Football호마리우의 경우 당대 최고 스타였지만, 오히려 호나우두 그늘에 가려 크게 회자되지 못하고 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호마리우 투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지만, 호마리우는 부상으로 낙마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예선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스콜라리 감독 부름을 받지 못했다.
브라질 레전드로 불리지만, 사실 어느 특정 클럽의 전설이라 하기에도 조금은 모호하다. 유럽에서는 에인트호번을 거쳐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에서 뛰었고, 바르셀로나 시절이 가장 고점으로 평가받지만 시기 자체가 짧았다. 그나마 가장 오래 뛴 클럽이 바로 에인트호번이다.
자국 리그에서도 바스쿠 다 가마를 시작으로 플라멩구와 플루미넨세에서 활약했다. 바스쿠 다 가마 유니폼만 세 번 갈아 입었고, 플라멩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루미넨세 또한 두 차례나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 주요 커리어
호마리우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회가 1994 미국 월드컵이다. 당시 베베투와 호흡을 맞춘 호마리우는 브라질 대표팀 일원으로 94 미국 월드컵 전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이 기간 호마리우는 5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대회 우승을 도왔다. 네덜란드전에서는 선제 득점으로 포문을 열었고, 스웨덴과의 준결승전에서도 결승포를 가동했다. 미국과의 16강전에서는 결승 골을 어시스트했다. 양 팀 모두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승패가 갈린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을 제외한 나머지 6경기에서 모두 공격 포인트를 가동했던 호마리우다.
France Football이외에도 호마리우는 브라질 대표팀 일원으로 70경기에서 55골을 가동했고, 총 4개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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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호마리우와 관련한 재밌는? 아니 다소 황당한 하나의 일화가 유명하다. 1994 미국 월드컵이 열리기 전, 호마리우의 부친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를 돌려 보내지 않으면, 월드컵에 나서지 않겠다'는 그의 한 마디에, 브라질이 들썩였고, 호마리우 부친은 무사히 귀환했다. 호마리우 또한 브라질에 월드컵 우승을 안겼고.
그 다음은 클럽이다. 조금은 애매하다. 물론 활약상이 안 좋았던 건 절대 아니다. 유럽과 브라질을 통틀어 호마리우는 총 10차례나 득점왕을 차지했다. 리그 우승도 5번이다. 저니맨 이미지가 강했다. 커리어 정점은 1993/1994시즌 바르셀로나 시절이다. 다만 이 시즌 바르셀로나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에 0-4로 대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월드컵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FIFA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지만, 발롱도르는 팀 동료 스토이치코프 몫이었다. 이 시기 발롱도르는 유럽 선수들만 차지할 수 있었기에, 불가리아의 월드컵 4위를 이끈 스토이치코프가 발롱도르 위너가 됐다.
은퇴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깜짝 변신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