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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트-슈마허-리트바르스키' 쾰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은?

현재의 쾰른은 2부 리가와 분데스리가를 오가는 전형적인 약체 팀이라는 인식이 있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도시 쾰른을 연고로 하는 이 구단은 분데스리가 설립 이전 3시즌 서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강호로 군림하고 있었고,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초대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이후에도 쾰른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몇몇 부침이 있었던 시기를 제외하면 분데스리가 상위권을 줄곧 유지하면서 강호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는 이들이 분데스리가 우승은 2시즌(1963/64와 1977/78)이 전부이지만 해당 기간에 준우승 5회와 DFB 포칼(독일 FA컵) 우승 4회를 차지했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뛰어난 유스풀을 중심으로 볼프강 오베라트와 하랄트 슈마허, 토마스 해슬러,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하네스 뢰어, 하인츠 플로헤, 베른트 쿨만, 볼프강 베버, 보도 일그너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대거 배출하면서 오랜 기간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쾰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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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0년 초반 독일 통일과 함께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쾰른의 하향세가 이루어지면서 10위권 밖으로 추락했고, 결국 1997/98 시즌 끔찍했던 원정 성적(승점 9점)의 여파 속에 17위에 그치면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부 리가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후 쾰른은 2부 리가와 분데스리가를 오가면서 현재의 모습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쾰른하면 기본적으로 역대 최고의 선수로 4명의 선수들이 거론되는 경향이 있다. 볼프강 오베라트와 하랄트 슈마허, 칼-하인츠 슈넬링거, 그리고 한스 셰퍼이다. 슈넬링거는 독일 역대 최고의 왼쪽 측면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셰퍼는 1954년 월드컵 베른의 기적을 일군 독일 대표팀 주축 측면 공격수였다. 이들은 사이좋게 1962년(슈넬링거)과 1963년(셰퍼) 독일 올해의 선수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슈넬링거는 분데스리가가 설립되기 이전 세리에A로 진출해 전성기를 보냈고, 셰퍼는 분데스리가에서 단 2시즌만 소화하고 은퇴했다. 즉 분데스리가에서의 업적이 전무하다시피 하기에(물론 셰퍼는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초대 우승에 기여했지만) 이 둘을 제외한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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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하랄트 슈마허

제프 마이어, 올리버 칸과 함께 독일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는 인물. 1973년 1987년까지 14년 동안 쾰른에서 뛰면서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군림했다. 아직까지도 쾰른하면 볼프강 오베라트와 슈마허, 둘을 떠올릴 정도다. 그가 있는 동안 쾰른은 1977/7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포함 1976/77 시즌과 1977/78 시즌 포칼 2연패에 더해 1982/83 시즌에도 포칼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쾰른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1984년과 1986년엔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골키퍼임에도 거친 플레이를 불사하며 페널티 박스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슈마허였다. 쾰른 구단 역대 공식 대회(535경기)는 물론 분데스리가(422경기) 최다 출전 모두 그의 차지다. 현재 그는 쾰른 부회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CB 헤르베르트 침머만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선수. 바이에른 뮌헨에서 1972년 공격수로 프로 데뷔했으나 게르트 뮐러라는 역대급 공격수에게 밀려 줄곧 벤치를 지키다 1974년 쾰른으로 이적하면서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후 그는 쾰른 수비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1970년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황금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단단한 수비에 더해 공격수 출신답게 뛰어난 공격력을 백분 살려 쾰른 소속으로 공식 대회 261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넣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분데스리가 202경기 22골). 하지만 그는 유로 1980 본선 개막전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독일 대표팀의 우승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고(그래도 개막전까지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우승 멤버로 이름을 올리긴 했다), 이후 고질적인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1983/84 시즌을 마지막으로 수비수로는 다소 이른 나이인 만 29세에 선수 생활과 작별을 고했다.


CB 베른트 쿨만

쾰른 역대 최고의 리베로형 수비수.  안정적인 수비력과 라인 컨트롤 능력에 더해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실제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 당시 조별 리그에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담당한 선수가 다름 아닌 쿨만이었다(리베로에는 위대한 프란츠 베켄바워가 있었기에 전진 배치된 것). 1980년 유로에선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면서 월드컵과 유로 우승을 동시에 달성한 선수로 등극했다. 1969년 쾰른에서 프로 데뷔해서 1984년 은퇴까지 무려 15년 동안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면서 쾰른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그의 아들 카르스텐 쿨만 역시 쾰른 유스 출신으로 1998년 프로 데뷔해 2010년까지 12년 동안 쾰른에서만 뛰었고, 은퇴 후 쾰른 2군팀 코치를 거쳐 현재 쾰른 유스 팀 감독을 수행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마치 AC 밀란이 자랑하는 말디니 가문처럼 대를 이은 원클럽맨 가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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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 볼프강 베버

쾰른이 자랑하는 중앙 수비수. 196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연장전까지 승부를 끌고 갔던 것으로 유명하다(결국 연장전에서 잉글랜드 공격수 제프리 허스트에게 연속 골을 실점하면서 2-4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독일 대표팀 소속으로 A매치 53경기에 출전했음에도 아쉽게 우승과는 인연이 없다. 하지만 쾰른에선 1962년 프로 데뷔하자마자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초대 우승의 영광을 안았고, 1978년까지 16년 동안 쾰른 원클럽맨으로 뛰면서 분데스리가 우승 2회와 포칼 우승 3회를 달성했다. 쾰른 선수로 분데스리가 우승 2회를 차지한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황소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터프한 수비를 펼치던 선수이다.


RM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리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독일 역대급 측면 미드필더. 168cm의 단신이지만 독일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비록 쾰른에선 구단의 황금기가 저물어가는 시점이었던 1978년에 프로 데뷔했기에 1982/83 시즌 포칼 우승이 전부이지만 쾰른 소속으로 통산 공식 대회 501경기(구단 역대 3위)에 출전해 142골(구단 역대 5위), 57도움(구단 역대 3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큰 족적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1990년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우승을 영광을 얻었다. 1982년 월드컵에선 5도움으로 도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CM 토마스 해슬러

아마도 국내 축구 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한국과의 경기에서 위르겐 클린스만의 2골을 모두 어시스트한 선수가 바로 해슬러이다. 한국전 2도움 포함 미국 월드컵 5경기에서 5도움을 올리면서 도움왕을 차지했다. 이미 1990년 월드컵 우승 멤버였고, 유로 1996 우승에도 크게 기여하면서 독일 전성기를 장식한 플레이메이커였다. 쾰른에선 구단의 전성기가 막을 내린 1984년에 프로 데뷔해 1990년까지 6시즌을 뛰면서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1989년, 쾰른 소속으로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쾰른 선수로 독일 올해의 선수에 뽑힌 건 칼-하인츠 슈넬링거(1962)와 한스 셰퍼(1963), 슈마허(1986, 1988), 해슬러(1989) 4명 밖에 없다. 그는 이후 1992년 AS 로마 소속으로 한 번 더 독일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CM 볼프강 오베라트

쾰른의 상징 그 자체. 바이에른 뮌헨에 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 베르티 포그츠(+귄터 네처), 함부르크에 우베 젤러가 있다면 쾰른엔 오베라트가 있다. 1974년 월드컵 우승 당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하면서 독일의 우승에 있어 중책을 담당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묀헨글라드바흐가 자랑하는 천재 플레이메이커 네처가 1972년과 1973년 독일 올해의 선수 2연패를 달성하고도 벤치를 지켜야 했다. 그의 업적은 독일 대표팀에서도 위대하지만 쾰른에선 한층 더 빛을 발하고 있다. 1962년 프로 데뷔해 1977년까지 15년 동안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면서 분데스리가 초대 우승(1963/64) 및 포칼 우승 2회(1967/68, 1976/77)에 크게 기여했다. 슈마허에 이어 구단 통산 최다 출전 2위(531경기)에 더해 111골 82도움으로 구단 역대 최다 도움 기록자로 아직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쾰른 회장직을 역임했다.


LM 하네스 뢰어

쾰른이 자랑하는 공격 자원. 측면 미드필더부터 최전방 공격수까지 공격 전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슈포르트프로인데 자브뤼켄을 거쳐 1964년 쾰른에 입단한 그는 1978년까지 14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팀의 주포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특히 포칼에서만 무려 4차례 득점왕에 오를 정도로 컵 대회의 사나이로 명성을 떨쳤다. 괜히 쾰른이 그가 있는 동안 3차례 포칼 우승을 차지한 게 아니다. 게다가 1967/68 시즌엔 분데스리가에서 27골을 넣으면서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쾰른 소속으로 공식 대회 498경기에 출전해 230골 52도움으로 구단 역대 최다 골 기록자로 아직까지도 군림하고 있다.


AM 하인츠 플로헤

플로케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선수로 뛰어난 기술적인 역량 덕에 독일 현지 언론들로부터 '슈퍼 테크니션(Super-Techniker)'라는 찬사를 얻었다. 1966년 쾰른에서 프로 데뷔해 1979년까지 13년 동안 활약하면서 황금기의 주역으로 명성을 떨치다(특히 1977/78 시즌 분데스리가-포칼 2관왕 당시 주장 직을 수행했다) 선수 생활 말년을 1860 뮌헨에서 보냈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시작으로 좌우 측면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하던 선수로 1974년 월드컵 우승 멤버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13년, 만 65세의 나이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했고, 이에 쾰른은 라인에네르기 슈타디온 남쪽 스탠드 입구 쪽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CF 클라우스 알로프스

통상적으로 알로프스하면 베르더 브레멘과 볼프스부르크에서 명단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장 이전에 위대한 공격수였다. 쾰른 더비 라이벌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출신으로 6시즌을 뛰면서 1978/79 시즌과 1979/80 시즌 포칼 2연패를 달성한 그는 1981년 쾰른으로 이적해 1988년까지 7시즌을 뛰면서 1982/83 시즌 포칼 우승을 추가했다. 이후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1988/89 시즌 프랑스 컵 우승을 차지(같은 시즌에 리그 앙 우승도 차지하면서 2관왕에 올랐다)한 데 이어 1990/91 시즌 베르더 브레멘에서 다시 포칼 우승을 달성하면서 컵 대회의 강자로 명성을 떨쳤다. 비록 1978/79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준우승에 이어 1985/86 시즌 UEFA컵 준우승에 그치면서 분데스리가 및 유럽 대항전과는 인연이 없는 듯싶었으나 선수 생활 말년 브레멘에서 1991/92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에 이어 1992/93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장식하면서 3-2 승리를 견인해 유로 1980 우승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선수 개인 기록을 살펴보자면 그는 1978/79 시즌 뒤셀도르프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득점왕(22골)을 차지한 데 이어 1984/85 시즌 쾰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득점왕(26골)에 등극했다. 쾰른에서 많은 기간을 뛴 건 아니지만 219경기에 출전해 116골을 넣으며 뛰어난 득점력을 자랑했다.


CF 디터 뮐러

게르트 뮐러의 뒤를 잇는 득점기계. 원래 그의 성은 카스터이지만 그를 입양한 양아버지의 성을 따라 뮐러로 개명했다. 키커스 오펜바흐 유스 출신으로 1973년에 쾰른으로 이적해온 그는 데뷔 시즌부터 17골을 넣으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2년 차(1974/75)에는 벌써 24골을 넣으면서 기대감을 높인 뮐러였다. 1975/76 시즌엔 장기 부상으로 전반기를 거의 통으로 날리다시피 했음에도 후반기 17경기에서 13골을 몰아넣는 괴력을 과시했고, 유로 1976에서 4골로 득점왕에 등극한 데 이어 1976/77 시즌 34골로 생애 첫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어서 1977/78 시즌 역시 24골로 분데스리가 득점왕 2연패를 달성한 뮐러였다. 특히 그는 1977/78 시즌 베르더 브레멘과의 3라운드에서 6골을 넣으며 분데스리가 역대 한 경기 최다 골 기록을 수립했다. 이후에도 그는 1979/80 시즌 21골과 1980/81 시즌 17골로 쾰른 간판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1981/82 시즌 슈투트가르트를 거쳐 1982/83 시즌 지로댕 보르도로 이적하면서 프랑스 리그 적응에 실패해 급격하게 득점력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악몽과도 같은 프랑스 생활 3년을 뒤로 하고 그라스호퍼 취리히와 자르브뤼켄을 거쳐 고향 오펜바흐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분명한 건 쾰른 시절의 그는 분데스리가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득점력을 자랑하는 선수였다는 데에 있다. 쾰른 소속으로 8시즌 동안 뛰면서 공식 대회 320경기에 출전해 219골로 뢰어에 이어 구단 역대 최다 골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것이 그가 쾰른 팬들로부터 '세기의 공격수(Sturmer des Jahrhunderts)'라고 칭송받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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