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정재은 기자=
쉽지 않은 시즌. 지난 시즌 입단하자마자 주전으로 뛰었던 백승호에게 2020-21시즌은 까다로웠다. 새로 부임한 마르쿠스 안팡 감독의 구상에서 밀려나고, 부상 등의 문제로 좀처럼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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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지난 9라운드부터 선발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벌써 네 경기 째 선발로 나선 백승호는 15일 저녁(현지 시각), 마침내 시즌 첫 공격 포인트를 세웠다. 2020-21 2.분데스리가 그로이터 퓌어트전에서 어시스트를 두 차례나 올리며 팀의 4-0 대승을 도왔다.
전반 45분과 후반 4분이었다. 상대 수비를 바로 앞에 두고 화려한 발기술을 뽐내며 볼을 지켜낸 백승호는 문전으로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두 크로스 모두 동료 세르다르 두르순(29)이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했다. 두르순은 백승호에게 뽀뽀하고, 어깨동무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백승호에겐 득점 기회도 있었다. 전반 34분 왼쪽 사이드 질주 후 페널티 에어리어에 도달했다. 퓌어트 수비 2인을 앞에 두고 또 자신의 장기인 발기술로 공을 지켜낸 백승호는 직접 슈팅했다. 공은 아쉽게도 골대 왼편으로 빗나갔지만, 백승호의 공격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Getty Images그가 반짝거릴 수 있던 이유는 포지션에 있다. 백승호는 지난 시즌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올 시즌 안팡 감독은 백승호를 공격적으로 세운다. 선발로 출전한 최근 네 경기서 함부르크전을 제외하고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로 섰다. 이날 보인 전방에서의 위협적인 모습은 안팡 체제의 공격 자원으로 적응한 결과다.
백승호가 안팡 체제서 포지션 변화를 가진 건 여러 이유가 있다. 안팡 감독의 전술, 자원 변화 등이다. 여기에 디미트리오스 그라모지스 전 감독의 지난 시즌 막판 백승호 활용법도 힌트가 됐을 수 있다. 시즌 막판 그라모지스 전 감독은 시험에 한창이었다. 선수들을 다양한 포지션에 세워보며 새로운 능력이 나오는지 지켜봤다. 그는 백승호를 33라운드 베헨 비즈바덴전에서 ‘깜짝’ 우측 윙어로 세웠다. 거기서 백승호는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시험 결과는 합격이었다.
Goal Korea백승호가 ‘윙어’로 빛난 15일, 누구보다 그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다. 차범근 감독이다. 지난해 11월, 필자는 다름슈타트의 메어크 슈타디온에서 차범근 감독을 만났다. 그는 자주 다름슈타트의 홈경기를 찾아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팀에서 후배가 적응하는 모습을 살폈다. 입단 초기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한 백승호를 대견하게 여겼다.
그가 딱 하나 아쉽게 여긴 건 백승호의 공격력이었다. “승호가 어릴 때는 공격수였다. 그때는 스피드가 빨랐다. 골도 많이 넣었다”라며 백승호의 과거를 회상한 차 감독은 “어느 순간 애가 훅 크더니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라며 그의 공격력이 덩달아 무뎌진 점을 아쉬워했다. 대신 백승호의 장점인 “기술력과 패싱력”으로 다시 예전과 같은 공격적인 모습을 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골을 넣는 선수와 못 넣는 선수는 가치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백승호는 퓌어트전에서 차 감독이 콕 찝어 말했던 ‘기술력’으로 상대 수비를 눈앞에 두고도 공을 잘 지켜냈고, ‘패싱력’으로 두르순의 두 골을 전부 도왔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뽐내기 어려웠던 제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낸 날이었다. 백승호는 공격적으로 뛰어야 한다던 ‘차붐’의 말이 옳았다.
백승호의 덕을 톡톡히 본 두르순은 경기 후 “두 번째 상황에서 그 공을 골대 앞으로 패스할 수 있는 선수는 별로 없을 거다. 그가 괜히 바르셀로나 출신이 아니다”라며 한국인 동료를 극찬했다. 입단 초기부터 ‘바르셀로나 출신’이라는 이유로 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백승호는 이날 동료들에게 그 내공을 제대로 선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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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출전 시간이 터무니없이 적어지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백승호는 퓌어트전에서 훌훌 털었다. 안팡 감독 역시 “커다란 찬사를 보낸다”라며 박수를 쳤다. 제 ‘진짜’ 능력을 유감없이 뽐낸 백승호는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전반기 마지막 홈경기, 뷔어츠부르크 키커스전도 선발로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분데스리가의 전반기는 곧 끝나지만 백승호의 시즌은 지금부터다.
사진=골닷컴, Getty Images, 정재은, 다름슈타트 S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