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 튀랑박성재 디자이너

발롱 드림팀 DF 후보 '프랑스 명품 수비수' 릴리앙 튀랑[축구계슈가맨을찾아서#36]

▲ 프랑스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 이끈 수비수
▲ 오른쪽 풀백 그리고 센터백에서도 정상급 활약 펼친 릴리앙 튀랑
▲ 최근에는 아들인 묀헨 글라드바흐 공격수 마르쿠스 튀랑도 좋은 활약 보여줘

[골닷컴] 박문수 기자 = 발롱도르 2020 드림팀에 선정된 오른쪽 측면 수비수, 그러니까 라이트백은 총 10명이다. 왼쪽 측면 수비수 후보도 10명이다. 풀백 후보는 도합 20명이다.

팬들에게 유명한 선수는 오른쪽을 기준으로 하면 카푸와 필립 람이 있을 것이다. 인테르 레전드 쥐세페 베르고미와 유벤투스 전설 클라우디오 젠틸레도 유명한 선수다. 브라질 역대 최고 풀백으로 꼽히는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도 마찬가지. 왼쪽에는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파울로 말디니 그리고 마르셀루 등이 유명할 것이다. 인테르 전설인 브레메와 파케티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 자리는 말디니가 가장 유력할 것이다.

총 20명의 선수 중 한 명의 선수를 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왕이면 최근 선수를 대상으로 했다. 그리고 좀 더 화제성이 있으면서, 축구계와 약간은 거리를 둔 선수로 선정했다. 카를루스와 카푸는 이미 유명하니까. 말디니와 람도 마찬가지.

이번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측면 수비수는 프랑스 역대 최고의 풀백으로 불리는 튀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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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랑은 누구?
1972년생이다. 포지션은 그냥 수비수다.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나와 프랑스의 98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지만, 2000년대부터는 센터백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준우승을 도왔다. 파르마와 유벤투스에서는 칸나바로와 호흡을 맞췄고, 독일 월드컵에서는 갈라스의 파트너로 나섰다. 물론 갈라스보다는 튀랑이 레블뢰 군단 수비 리더였지만.

풀백으로 나섰던 시기만 해도 전진적인 수비수였다.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좋았다. 주력도 빠른 편이었다. 득점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후술할 크로아티아와의 98 프랑스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멀티 골을 가동하며 프랑스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파르마와 유벤투스의 레전드로 불린다. 다만 유벤투스에서의 마무리가 좋지는 않았다.

# 선정 이유
앞서 말한 대로다. 발롱도르 드림팀 측면 수비수 20인데 선정됐다. 정확히는 오른쪽 풀백 10명의 후보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앞선 후보 중 상대적으로 유명하면서도, 소식을 접하기 힘든 선수여서 선정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아들은 마르쿠스 튀랑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현역 시절 튀랑의 활약상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 다만 아버지 튀랑과 달리, 마르쿠스 튀랑의 포지션은 공격수다. 2019년부터는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뛰고 있으며, 지난 레알 마드리드와의 맞대결에서는 멀티 골을 가동하며, 존재감을 어필했다.

Cartoon Buffon, Thuram and WeahOmar Momani
참고로 마르쿠스 튀랑의 경우 갱강 소속이었던 2018/2019시즌 한 시즌 PSG에서 활약했던 부폰과 유니폼을 교환하며 화제를 모았다. 부폰의 경우 파르마 그리고 유벤투스에서 튀랑과 호흡을 맞춘 동료다. 그리고 그 시즌 부폰은 선수 생활 초기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쳤던 조지 웨아의 아들인 티모시 웨아의 동료이기도 했다.

# 주요 커리어는?
커리어 대부분은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보냈다. 시작은 파르마였고, 마무리는 유벤투스였다. 은퇴는 바르셀로나에서 했다.

1990년 모나코에서 프로 데뷔했고, 1992/1993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나코 사령탑은 벵거였다. 그리고 튀랑 이외에도 조르카예프와 클린스만 여기에 티그아나가 모나코 소속으로 활약했다. 에마뉘엘 프티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퓌엘 또한 모나코 선수였다.

모나코에서의 활약상을 발판 삼아, 1996년 파르마에 입성했다. 당시 파르마에는 부폰과 칸나바로가 있었다. 엔리코 키에사(페데리코 키에사 부친)과 마리오 스타티치,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임대도니 90년대 초,중반 스웨덴 간판 공격수 브롤린도 파르마 소속이었다. 최전방 공격수로는 크레스포가 있었고, 1998/1999시즌부터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또한 파르마에 합류했다.

파르마 자체가 1998/1999시즌 가장 좋은 시즌을 보냈다. 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했고, 부폰과 디노 바죠, 크레스포 그리고 베론과 칸나바로, 키에사, 튀랑 등, 구단 최고의 선수진을 보유하며 세리에A 7공주 일원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000/2001시즌까지 파르마에서 뛰었던 튀랑의 차기 행선지는 유벤투스였다. 유벤투스에서 호흡을 맞췄던 부폰과 같은 시기 파르마를 떠나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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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이적 후, 네 차례 세리에A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2006년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두 번의 우승컵이 박탈됐다. 사실상 노장이 된 튀랑인 만큼, 유벤투스의 세리에B 강등과 함께 그는 잠브로타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조금 물음표였다. 은퇴를 앞둔 시기인 만큼 활약상 자체가 좋진 않았다. 그렇게 2007/2008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던 튀랑이다.

튀랑 커리어 정점은 클럽보다는 프랑스 대표팀에서였다. 1994년에 대표팀에 첫 발탁 됐고, 체코와의 친선전을 통해 레블뢰 군단 데뷔전을 치렀다. 유로 96에서도 그는 5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모로코전을 제외한 나머지 친선 경기에서 센터백으로서 그리고 풀백으로서 프랑스 대표팀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당연히 주전이었다. 3차전 덴마크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리고 정점을 찍은 경기가 바로 크로아티와의 준결승 맞대결이었다. 티와의 경우 지금까지 프랑스 대표팀 일원으로 142경기를 소화했고, 이는 프랑스 대표팀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이다.

Lillian Thuram Didier Deschamps France World Cup 1998Getty
득점은 두 골이 전부였다. 근데 그 골이 크로아티아전이었다. 수케르에게 선제 득점을 내주며 위기를 맞이했던 프랑스는 티와의 멀티 골에 힘입어 경기를 뒤집었다. 선제 실점 과정에서 티와의 위치 선정이 문제였다. 튀랑이 너무 뒤에 있던 탓에 수케르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피해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역적이 될뻔했지만, 오른쪽 측면에서부터 과감하게 돌파한 이후 득점에 성공하며 1-1을 만들었다. 그리고 앙리와의 원투 패스를 통해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튀랑은 절묘한 왼발 슈팅으로 다시 한번 크로아티아 골망을 흔들었다. 그리고 튀랑의 멀티 골 덕분에 프랑스 대표팀은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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