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로 말디니보다 더 사랑받는 밀란의 레전드
▲ 밀란 원클럽맨 그리고 새로운 부회장 프랑코 바레시
▲ '작은 거인' 바레시, 명품 수비력으로 밀란과 이탈리아의 전설로 불려
[골닷컴] 박문수 기자 = 발롱도르 2020 드림팀에 선정된 센터백은 총 10명이다. 그리고 이들 중 단 한 명만이 베스트 11 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워낙 쟁쟁하다. 수비수 출신 발롱도르 위너 칸나바로와 베켄바워 그리고 잠머가 이름을 올렸다. 누굴 뽑아도 어색하지 않을 쟁쟁한 후보군이다.
총 10명의 선수 중 단 한 명의 후보를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유명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식을 접하기 어려운 선수로 추렸다. 초기 후보는 바레시와 드사이였지만 밀란 원클럽맨 그리고 최근 친정팀의 명예 부회장으로 선정된 바레시를 꼽았다.
이번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중앙 수비수는 밀란과 이탈리아의 전설인 프랑코 바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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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레시는 누구?
1960년생이다. 1972년 밀란 유소년팀에 입성해, 현역 은퇴한 1997년까지 밀란에서만 뛰었다. 센터백이자, 팀의 주장이었다. 밀란 주장하면 말디니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오히려 현지에서는 말디니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는 선수가 바로 바레시다. 밀란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인물이다. 그래서 바레시의 등번호 6번은 현재도 영구결번 중이다.
Getty Images별명은 작은 거인이다. 센터백치고 큰 키는 아니다. 대신 단단하다. 수비력은 물론이고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통해 팀 후방을 책임졌다. 바레시 장기 중 하나는 빌드업 능력이다. 수비력도 좋은데 발밑도 좋은 편이다.
특이점 중 하나는 형 주세페 바세이다. 프랑코 바레시가 밀란의 레전드라면, 주세페 바레시의 경우 인테르 레전드다. 동생 프랑코 그늘에 가려졌지만, 주세페 바레시 또한 인테르 레전드로서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선수다.
# 선정 이유
앞서 말한 대로다. 발롱도르 드림팀 센터백 후보 10명 중 한 명이다. 워낙 쟁쟁하면서 현재까지도 축구와 연을 맺은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너무 과거 선수를 조명할 수는 없었다.
Goal때마침 바레시는 최근 밀란의 명예 부회장으로 선임되며, 말디니-바레시로 이어지는 레전드 보드진을 완성했다. 이들 모두 밀란 영구 결번 주인공이다. 바레시가 친정팀으로 돌아오면서, 밀란의 강등과 승격 그리고 우승을 함께 한 그의 현역 시절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 주요 커리어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밀란이다. 앞서 말했듯 바레시는 말디니와 마찬가지로 밀란 원클럽맨이다. 다른 클럽에서는 단 1초도 뛴 적이 없다. 두 번째는 이탈리아 대표팀이다. 브라질의 통산 네 번째 우승으로 끝났던 1994 미국 월드컵 결승전, 단단한 창을 자랑했던 브라질이 끝내 이탈리아 수비진을 공략하지 못한 이유는 '레전드' 바레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도 명단을 올렸지만, 대회 당시 바레시는 벤치 멤버였다.
첫 번째는 밀란이다. 밀란 소속으로 세리에A에서만 6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1980/1981시즌과 1982/1983시즌에는 세리에 B에서 우승을 맛봤다. 한 번은 승부 조작 연루로, 두 번째는 성적 부진으로 밀란은 2부리그로 강등됐다. 구단 자체가 암울했던 상황에서도 바레시는 팀의 후방을 책임지며 우승을 도왔다. 선수로서 한창인 시기였지만 그는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이 아닌 밀란 잔류를 택했다.
바레시와 밀란의 전환점이 된 계기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구단주 부임 이후다. 굴리트와 판 바스턴 그리고 레이카르트로 이어지는 오렌지 트리오를 비롯해 굵직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 밀란이다. 그렇게 바레시는 1978/1979시즌 리그 우승 이후, 베를루스코니 구단주 체체에서 5번 더 세리에A 우승을 맛봤다. UEFA 챔피언스리그(유러피언컵)에서도 승승장구했던 밀란이다. 1988/1989시즌과 1989/1990시즌 대회 2연패에 성공했고, 94 미국 월드컵에 앞서 열린 1993/1994시즌에도 유럽 정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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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레시는 밀란 소속으로만 6번의 세리에A 우승 그리고 4번의 수페르 코파 이탈리아나, 3번의 유러피언컵과, 2번의 UEFA 슈퍼컵을 들어 올렸다. 참고로 바레시의 경우 밀란 소속으로만 719경기를 소화하며, 말디니 다음으로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 중이다.
그 다음은 이탈리아 대표팀이다. 대표팀 소속으로 총 81경기를 소화했다. 다만, 밀란 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월드컵 우승 기록은 있지만 냉정히 말해 대회 내내 벤치 멤버였다. 바레시의 이탈리아 선발 데뷔전 자체가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였다. 본격적으로 대표팀에서 입지를 굳힌 시기 또한, 1986 멕시코 월드컵 이후였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전 경기 풀타임 선발 출전했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이 아르헨티나와의 승부차기에서 패하면서,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참고로 이 대회 이탈리아 대표팀의 성적은 6승 1무(승부차기 포함)였지만, 단 한 번의 무승부에 발목이 잡히며 월드컵 정상 등극에 실패했던 조금은 아쉬운 대회였다.
Getty Images바레시가 다시금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94 미국 월드컵이었다. 다만 운이 없었다. 조별 예선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4강전까지 결장했다. 그렇게 브라질과의 결승전을 통해 복귀한 바레시는 명품 수비의 정점을 보여주며 호마리우와 베베투로 이어지는 브라질 투 톱을 꽁꽁 묶었다. 특히 호마리우를 상대로 적극적이면서 정확한 클리어링을 보여줬다. 바레시의 미국 월드컵 결승전 하이라이트 영상은 현재까지도 수비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