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nan Crespo 100th goals in SerieAOpta

바티골만 아니었다면.. 세리에A 레전드 아르헨 골게터 크레스포[축구계슈가맨을찾아서#53]

▲ 크레골로 불렸던 이탈리아 세리에A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레전드 에르난 크레스포
▲ 당대 정상급 공격수였던 크레스포 그러나 바티스투타에 밀린 이인자 이미지 강해
▲ 지도자 변신 이후 현재는 브라질 리그 명문 상파울루 감독으로

[골닷컴] 박문수 기자 = 아르헨티나 대표팀 출신 공격수 에르난 크레스포는 일명 크레골로 불렸던 이탈리아 세리에A 레전드 공격수다.

별명부터 남달랐다. 그 만큼 득점력이 좋았다. 한 때 잠시나마 세계 최다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기도 했다. 양발 모두 뛰어났고, 문전에서의 활동량도 우수했다. 제공권에서도 준수했고, 공격수라면 갖춰야 할 모든 재능을 갖춘 일면 만능현 공격수로 불렸다.

뛰어난 선수였다. 그래서 무언가 아쉽다. 특히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 소속팀 만큼의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확히는 기회가 적었다. 간단하다. 크레스포가 한창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시기, 아르헨티나에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있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초,중반까지 세리에A 간판 포워드로 불렸던 크레스포는 어떤 선수였을까?

# 크레스포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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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아르헨티나를 대표한 해결사. 찰랑이는 머리결, 별명부터가 '골'인 선수. 위에 크레스포라는 말이 없었다면 대다수 축구 팬이 떠올릴 선수는 바로 바티스투타일 것이다.

그래서 팬들은 크레스포를 이인자 공격수로 불린다. 그 때야 그랬지만 지금 아르헨티나에 가장 필요한 유형의 공격수 또한 바로 크레스포다. 크레스포가 한창 전성기를 누렸을 당시, 아르헤헨티나에 메시는 없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호흡을 맞췄지만, 크레스포는 노장 메시는 신예였다.

1975년생인 크레스포에게 6살 위 대표팀 선배 바티스투타는 지우기 힘든 그림자다였다. 시기 자체가 좋지 않았다. 바티스투타의 경우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메시 이전, 아르헨티나 역대 득점 순위 2위에 해당하는 레전드다. 

크레스포의 기록도 좋은 편이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메시와 바티스투타 그리고 아구에로에 이은 아르헨티나 역대 득점 순위 4위다. 포지션은 달라도 마라도나보다 한 골 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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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바티스투타 백업 자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자신의 첫 월드컵 무대인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잉글랜드와의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에서는 바티스투타를 대신해 교체 투입됐지만, 득점포 가동에 실패했다. 아르헨티나가 올라갔지만, 승부차기 실축도 오점 중 하나였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크레스포의 선발 출전이 유력했지만, 오히려 본선에서 중용 받은 건 바티스투타였다.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서만 9골을 가동했지만, 당시 비엘사는 경험이 풍부한 바티스투타를 중용했다. 이 대회에서 희비가 엇갈린 탓에 국내에서의 인지도 또한 크레스포보다는 로맨티스트 이미지까지 더 해진 바티스투타가 더 높다. 

바티스투타가 현역 은퇴한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페케르만 감독 중용을 받으며 주전 공격수로 나섰고, 세 골을 가동했다. 다만 아르헨티나는 독일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8강에서 떨어졌다. 하필 이 경기 아얄라의 선제 득점으로 포문을 열었던 아르헨티나는 크레스포 대신 크루스가 투입된 직후 아르헨티나가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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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클럽 커리어는 바티스투타 이상이다. 특히 세리에A 무대로 한정할 경우 4차례 우승에 성공(피오렌티나 세리에B 우승 기록 제외)한 바티스투타와 달리, 크레스포는 컵대회 포함 10차례에 걸쳐 세리에A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무임승차에 가깝지만 첼시 시절에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도 획득했다.

# 선정 이유 그리고 근황
현역 시절에는 이인자 이미지에 가깝지만, 최근까지도 아르헨티나에 가장 필요한 유형 중 하나로 꼽혔던 선수가 바로 크레스포다. 이 선수 기본적으로 만능형 공격수에 가깝다. 골만 잘 넣은 선수는 아니었다. 골도 잘 넣었지만, 기본적으로 활동량이 좋았다. 바티스투타 만큼의 슛 파워를 자랑하진 않아도, 제공권도 좋고 위치 선정도 훌륭한 편이었다.

첼시 시절을 제외하면 유럽 무대 한정으로는 세리에A에서만 활약했다. 은퇴 클럽도 자신의 첫 세리에A 클럽인 파르마였다. 현역 은퇴 이후에는 파르마 연령별 대표팀을 지휘하며 지도자로 입문했다.

Crespo Sao PauloSao Paulo SNS
지난 2월부터는 브라질 명문 상파울루를 지휘 중이다. 기록도 좋은 편이다. 상파울루 부임 이후 치른 12경기 성적은 10승 1무 1패다. 승률만 해도 83%에 덜한다. 이전만 해도 감독으로서는 아직 물음표였지만, 상파울루에서 지도력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느낌표로 바꾸고 있다. 

특히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상파울루주 주리그)에서는 파우메이라스와 산투스에 모두 승리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 크레스포 관련 TMI
장신은 아니다. 그런데도 제공권이 상당했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에서 모두 활약했다. 밀란 시절 세리에A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리버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해 득점포를 가동하면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일명 '밀란 시절' 그리고 '말스네카(말디니,스탐,네스타,카푸로 이어지는 밀란 포백)'의 동료로. 다만 모두가 알겠지만 당시 밀란은 승부차기 끝에 리버풀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해당 시즌 크레스포는 인자기 대신 UEFA 챔피언스리그 밀란의 주전 공격수로 나와 맨유전에서도 1,2차전 모두 득점포를 가동하며 밀란의 대회 결승 진출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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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시즌에도 크레스포는 리그에서는 조금 주춤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인테르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다만 해당 시즌 인테르는 밀란에 원정 다득점에서 밀리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밀란은 유벤투스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며 6번째 빅이어를 품었다.

라치오와 인테르에서 임팩트가 강했지만, 세리에A 클럽 중에서는 파르마와 유독 연이 깊다. 첫 이탈리아 클럽도 파르마였고, 지도자로 지휘봉을 잡은 첫 클럽도 파르마였다. 모데나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파산 후 재창단한 당시 세리에B 클럽이었던 파르마 보드진도 역임한 바 있다.

바티스투타에 이은 이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기록만 보면 전체적인 기록은 바티스투타가 크레스포보다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바티스투타는 아르헨티나의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주역이다. 그리고 이 대회 이후 지금까지 아르헨티나는 메이저대회 우승 횟수가 0회다. 다시 말해 크레스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일원으로 우승컵을 달성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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