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은 세계적인 명장 하인케스의 75번째 생일이었다. 이에 맞춰서 하인케스의 애제자에 해당하는 현 바이에른 감독 플릭과 하인케스 밑에서 수석코치 역할을 수행했던 헤어만이 하인케스와의 추억을 회고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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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케스가 누구인가? 그는 광복 이전이었던 1945년 5월 9일, 독일 서쪽에 위치한 도시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출생했다. 이후 그는 게르트 뮐러-클라우스 피셔와 함께 분데스리가 당대 최고의 공격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독일 공격수들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 그는 개인 통산 220골로 게르트 뮐러(365골)와 클라우스 피셔(268골), 현 바이에른 간판 공격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227골)에 이어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골 4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각종 대회에서 득점왕만 6회를 차지했을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팀 성적 면에서도 그는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분데스리가 우승 4회(1970/71, 1974/75, 1975/76, 1976/77)를 비롯해 1972/73 시즌 DFB 포칼 우승과 1974/75 시즌 UEFA 컵(유로파 리그 전신)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의 주역으로 군림했고, 독일 대표팀에서도 유로 1972와 1974년 월드컵 우승 멤버였다.
1978년 은퇴 후 묀헨글라드바흐 코치를 거쳐 곧바로 1979/80 시즌부터 묀헨글라드바흐 감독에 부임한 그능 이후 바이에른과 아틀레틱 빌바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테네리페, 레알 마드리드, 벤피카, 샬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총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면서 감독으로서도 선수 시절 못지않은 명성을 쌓아나갔다. 레알 마드리드(1997/98)와 바이에른(2012/13)에선 각기 다른 두 개의 구단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특히 2012/13 시즌엔 바이에른에서 독일 구단 최초로 트레블(자국 리그, 자국 컵 대회, 챔피언스 리그 3관왕을 지칭하는 표현)이라는 대위업을 수립했다. 이것이 그가 독일 역사에 손꼽히는 명장으로 불리는 주된 이유이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선수와 감독으로 최다 경기를 기록한 인물도 다름 아닌 하인케스(1,038경기)이다.
플릭은 하인케스의 애제자와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플릭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바이에른에서 미드필더로 뛰면서 하인케스 감독의 지도를 받은 바 있다. 플릭이 바이에른 정식 감독에 부임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큰 힘을 실어준 인물이 다름 아닌 하인케스였다(바이에른 보드진들에게 플릭이 구단 감독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플릭은 "나와 하인케스는 감독으로서 접근 방식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 선수 경력에 있어 최고의 감독이었다. 그는 당시에도 이미 특별했다. 난 그가 선수들을 다루는 방식에 항상 큰 감명을 받았었다"라며 하인케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하인케스의 업적과 관련해 "트레블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트레블을 하려면 강력한 선수단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코치진이 필요하다. 특히 당시 바이에른은 1년 전 알리안츠 아레나 홈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패하고도 곧바로 이를 이겨내고 우승한 건 상당히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하기에 하인케스의 트레블은 더 놀라운 업적이다"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난 2012/13 시즌 바이에른 트레블이 독일 대표팀의 2014년 월드컵 우승의 초석이 됐다고 생각한다. 필립 람과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마스 뮐러,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토니 크로스 세대가 바이에른에서 트레블을 따냈고,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월드컵도 우승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즉 하인케스의 업적은 단순히 바이에른을 넘어 독일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인케스가 자신을 바이에른 정식 감독으로 추천해줬던 사실에 대해 "도움을 받는 건 항상 좋은 일이다. 하인케스가 날 긍정적으로 봐주어서 매우 기쁠 따름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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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만은 2009년, 하인케스가 레버쿠젠 지휘봉을 잡을 당시 그의 밑에서 처음으로 수석코치로 인연을 맺었고, 곧바로 바이에른에서도 수석코치 직을 이어가면서 하인케스와 트레블의 영광을 함께 했다. 하인케스의 1차 감독 은퇴 이후 그는 샬케와 함부르크,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수석코치를 거쳐 하인케스가 2017/18 시즌 도중에 소방수로 바이에른 지휘봉을 잡자 곧바로 돌아와 하인케스 수석 코치를 수행했고, 현재는 독일 18세 이하 대표팀 수석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헤어만은 하인케스와의 첫 만남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히도 너무 늦은 건 아니었다. 우리의 협력은 이미 레버쿠젠에서부터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 시즌은 4위였고, 그 다음 시즌은 우승 경쟁을 했다(2위)"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하인케스의 트레블과 관련해 "그에게 정말 경의를 표한다. 그는 트레블 바로 이전 시즌에도 3개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을 기록했다. 분데스리가에서 2위를 차지했고, 포칼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패한 것도 것도 충분히 특별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바이에른 선수들에겐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트레블을 차지한 것이 정말 기뻤다"라고 전했다.
그는 하인케스의 가장 뛰어난 능력으로 동기부여를 꼽았다. 그는 "하인케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그들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감정이 들도록 만드는 뚜렷한 방법이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는 선수들만이 아니라 모든 코칭 스태프들은 물론 심지어 보드진에게도 동기부여를 가져다준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그는 하인케스와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전해주었다. 그는 "우리가 카타르 훈련 캠프에 있을 때 모친께서 돌아가셨다. 난 상을 치르기 위해 하루 전에 먼저 떠났는데 이미 하인케스가 어머니 무덤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예상 못한 일이었다. 장례식이 베스터팔트에 있는 우리 집에서 치러졌기에 카타르에서 비행기로 뮌헨을 경유에 쾰른 공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다시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는, 절대 오기 쉬운 길이 아니었다. 난 그 모습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이 그의 위대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면모라고 할 수 있겠다"라고 밝히면서 "분명 그와 함께 한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난 뮌헨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바이에른에서 일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를 꿈꾼다. 그 점에 있어 항상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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