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김현민 기자 =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를 경질시키고 키케 세티엔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이와 함께 세티엔이 어떤 감독인지에 대한 축구 팬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바르사가 지난 13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베르데 경질과 함께 세티엔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022년 6월 30일까지다.
세티엔은 스페인에선 제법 유명세를 떨쳤으나 국내 축구 팬들에겐 생소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제 만 61세로 제법 나이가 든 감독이지만 감독 경력의 상당 부분을 줄곧 하부 리그에서 보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스페인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5년 10월 19일,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이하 라 리가) 승격팀 라스 팔마스 지휘봉을 잡으면서부터이다. 2015/16 시즌 당시 라스 팔마스는 세티엔이 부임하기 이전까지 라 리가 8경기에서 1승 2무 5패로 강등권인 19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부임한 이후 11승 6무 13패의 호성적을 올리면서 11위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승격팀을 라 리가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호평을 들은 세티엔이었다.
2016/17 시즌 역시 그는 라스 팔마스를 28라운드까지 9승 8무 11패로 이끌며 12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회와의 마찰로 인해 중도 경질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그가 경질된 이후 라스 팔마스는 시즌 마지막 10경기에서 1승 1무 8패라는 끔찍한 성적을 보이면서 14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결국 2017/18 시즌엔 5승 7무 26패로 19위에 그치면서 강등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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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팔마스를 떠난 그는 2017년 여름, 레알 베티스 신임 감독에 부임했다. 베티스는 안달루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이지만 2014/15 시즌만 하더라도 세군다 리가(2부 리그)에 있었고, 2016/17 시즌엔 하위권인 15위에 그쳤을 정도로 몰락한 명가에 가까운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베티스는 세티엔 부임 첫 시즌에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올리면서 6위로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함께 2013/14 시즌 이후 5년 만에 다시 유럽 대항전에 참가하게 된 베티스였다.
2018/19 시즌에도 세티엔의 베티스는 상반기만 하더라도 유로파 리그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라 리가에서도 5위에 오르면서 돌풍의 팀으로 떠올랐다. 특히 바르사와의 1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4-3 짜릿승을 거두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바르사 전임 감독 발베르데가 라 리가 캄프 누 홈에서 유일하게 당한 패배이다. 공식 대회를 모두 합치더라도 2017년 수페르코파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당한 1-3 패배와 함께 두 번 밖에 없는 패배이다.
경기가 끝나자 바르사 선수들은 입을 모아 세티엔을 칭찬하고 나섰다. 심지어 바르사 수비형 미드필더 세르히 부스케츠는 유니폼에 싸인과 존경의 문구를 적어 세티엔에게 선물을 해 화제가 됐다. 자연스럽게 세티엔의 베티스에겐 바르사보다 더 바르사같은 축구를 한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스페인 현지 언론들 역시 바르사 차기 감독 후보로 세티엔을 적극 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세티엔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2019년 들어 세티엔의 베티스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로파 리그에선 32강 조별 리그에서 스타드 렌에게 1무 1패로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했고, 라 리가 성적 역시 2019년 들어 7승 2무 11패의 부진에 빠진 것. 마지막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면서 10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긴 했으나 36라운드 한 때 13위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에 베티스 서포터들은 세티엔 퇴진 운동에 나섰다. 결국 세티엔은 시즌 종료와 동시에 또다시 경질 수순을 밟아야 했다.
이렇듯 베티스에서의 마지막은 그리 좋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바르사 차기 감독 후보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이유는 그가 바르사 축구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축구 영웅이자 유럽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추앙받는 전설로 바르사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바르사 축구 전술의 근간을 마련했다)의 추종자라는 데에 있다.
실제 그는 크루이프 신봉자를 여러 차례 자처한 바 있고, 상당히 오랜 기간 크루이프 축구를 분석하고 연구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과거 인터뷰에서 "선수 시절 크루이프의 바르사를 상대할 때 경기 내내 볼만 쫓아다녀야 했다. 그 때 속으로 이게 내가 원하는 축구고, 이런 팀을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크루이프 재단은 2018년, 그를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했다.
크루이프 전술의 기본은 '삼각 대형(트라이앵글)'과 원터치 패스에 기반한 점유율 축구 및 토탈 풋볼에 있다. 실제 그는 극단적인 점유율 축구를 구사했다. 이는 그가 지도했던 라스 팔마스와 베티스의 점유율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부임하기 전인 8라운드까지만 하더라도 라스 팔마스는 점유율 최하위였으나 결과적으로 2015/16 시즌을 라 리가 전체 점유율 4위(53.9%)로 마무리했고, 2016/17 시즌엔 56.9%로 바르사에 이어 당당히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2017/18 시즌 베티스에서 점유율 55.9%로 바르사와 레알 마드리드에 이어 3위를 기록한 데 이어 2018/19 시즌엔 59.4%로 바르사에 이어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특히 전반기만 하더라도 라 리가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었던 베티스였다.
당연히 그의 축구에선 기본적으로 미드필더들이 빛을 발했다. 라스 팔마스 서질엔 로케 메사가 세티엔의 '페르소나(연극에서 쓰이는 용어로 감독이 본인의 분신처럼 애용하는 배우를 지칭한다)'나 마찬가지였다. 베티스에선 후안 과르다도를 중심으로 파비안 루이스(2017/18 시즌)와 지오반니 로 셀소(2018/19 시즌)가 세티엔 축구에서 빛을 발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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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고려하면 바르사의 전술적인 지향점은 세티엔과 결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티엔은 부스케츠의 광팬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바르사가 2019년 여름, 베티스에서 영입한 주니오르 피르포는 세티엔의 애제자로 그의 지도 하에서 라 리가 정상급 왼쪽 윙백으로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프랭키 데 용과 아르투르 멜루도 세티엔 취향의 미드필더들이고, 유스 출신 미드필더 리키 푸츠가 중용될 것이라는 보도들이 스페인 현지에서 쏟아지고 있다.
다만 세티엔의 단점은 바로 전술적인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바르사보다 더 바르사다운 축구를 한다는 평가는 그에 대한 칭찬임과 동시에 비판점이기도 했다. 이것이 베티스 팬들이 그에 대한 인내심을 잃게된 주된 이유였다.
참고로 그는 선수 시절 라싱 산탄데르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에서 뛰었다. 하지만 그는 친정팀 아틀레티코를 지도하고 있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에 대해 "난 그에게 난 네가 우승 타이틀을 따기 위해 하는 일들을 높게 평가하지만 네가 팀을 전술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에 대해선 싫어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라고 비판한 적이 있을 정도다. 즉 본인의 전술 스타일이 아니면 철저하게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그는 감독 커리어 내내 구단 보드진들과 마찰을 빚은 전례가 있다. 보수적이면서도 자기 고집이 강한 성격으로 인해 라스 팔마스에서는 물론 베티스에서도 보드진들과의 관계가 나쁜 편에 속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바르사와 같은 빅클럽을 지도한 적이 없다. 빅클럽 감독은 전술적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성적 압박 속에서도 보드진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존심이 강한 스타플레이어들 관리가 필수다. 이 부분에서 세티엔은 검증이 되지 않은 걸 넘어서 실패를 거듭했던 감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소 리스크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바르사는 실리주의자에 가까운 발베르데(문제는 바르사에선 이 실리주의적인 성향마저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2017/18 시즌 로마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과 2018/19 시즌 리버풀과의 준결승 2차전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기적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와 결별하고 크루이프 추종자인 세티엔을 임명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겠다. 다소 파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선택이 성공으로 귀결될 지 여부는 앞으로의 경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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