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 Ballon d'Or 2007

밀란의 엄친아, 치달의 달인 카카 [칼치오위클리]

코로나 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이탈리아 세리에A가 일시 정지됐다. 그리고 오는 6월 20일부터 리그가 재개되는 만큼, 당분간 칼치오 위클리는 세리에A를 빛낸 최고의 선수들 11명과 팀에 대해 다루겠다. 기준은 1999/2000시즌 이후다.

[골닷컴] 박문수 기자 =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꽃미남 같은 외모. 그리고 빠른 발을 활용한 문전 침투 능력, 여기에 필요한 순간 정확하게 공격수를 향해 전달하는 패스 능력까지.

브라질 그리고 밀란의 레전드 카카는 21세기 이탈리아 세리에A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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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는 누구?
본명은 브라질식 포어로 히카루두 이제송 두스 산투스 레이치(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다. 카카는 예명이다. 브라질과 밀란의 간판스타 중 하나였다. 여기서 잠깐. 카카 선수 발음을 할 때 조심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Kaka'의 유니폼을 잘 보면 a 다음에 '점이 찍혀있다. Kaka라고 하면, 이탈리아어로 '대변'이다. 그래서 Kaka가 아닌 Kaka'로 불리며 이름을 부를 때도 그냥 카카보다는 카카아 정도로 불러줘야 한다. 정확히는 까까아다.

1982년생이며, AC 밀란의 레전드로 불린다. 상파울루 출신이며 밀란 이적 첫해부터 센세이셔널한 활약으로 세리에A 간판스타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2007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그리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 AC 밀란에서 뛰었다.

이 선수 별명은 엄친아다. 일명 엄마 친구 아들을 뜻하는 엄친아라는 표현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람을 뜻한다. 축구도 잘하는데 인성도 좋다. 오해는 말자. 이 글 자체가 세리에A 기준이다. 레알에서는 아니었지만, 밀란에서의 카카는 엄친아였다.

두 번째는 치달이다. 일명 치고 달리기다.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다. 화려하진 않지만 간결한 드리블이 돋보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최전방 선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거나 혹은 선수 스스로 직접 쇄도해 득점을 넣기도 한다. 전자는 세브첸코의 첼시 이적 전, 후자는 세브첸코의 첼시 이적 후로 봐도 된다. 특히 2006/2007시즌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공격수 바로 아래 위치한 쉐도우 공격수로 위치를 바꿨고, 밀란의 7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Kaka cartoonOmar Momani
# 선정 이유
네드베드 그리고 칸나바로와 마찬가지로, 세리에A 출신 21세기 세 명의 발롱도르 위너 중 한 명이다. 발롱도르 위너라는 표현 하나만으로 이 선수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 부상이라는 악재가 있었지만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당시만 해도 잘 나갔던 AC 밀란의 핵심 멤버였다. 브라질 대표팀으로 세 차례나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이 중 두 번은 핵심 멤버 중 하나였다.

다음 편에서 다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21세기 기준 세리에A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꼽힌다. 이제는 과거형이지만, AC 밀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에이스임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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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 주요 커리어
2001년 프로 데뷔해, 2017년 현역 은퇴했다. 첫 클럽은 상파울루였고, 마지막은 올란도 시티였다.

카카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팀은 AC 밀란이다. 대신 반드시 빼야 할? 팀은 레알 마드리드다. 밀란 팬들 입장에서는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복덩이지만, 레알 팬들 입장에서는 악몽이다. 기껏 비싼 돈 주고 데려왔더니, 부상 탓에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오히려 2013년 밀란 임대 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 탓에, 레알 대표 먹튀 중 한 명으로 불리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 일원으로 코스타리카전에 출전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카카. 당시만 해도 그는 브라질 기대주 중 한 명이었다. 오히려 실력보다는 외모 때문에 주목받은 케이스다.

2003년에는 바이엘 레버쿠젠 이적이 유력했지만, 레오나르두 전 스카우트의 권유로 밀란 유니폼을 입었다. 주전급보다는 로테이션이 유력했다. 그러나. 밀란 입성 후 카카는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후이 코스타를 밀어내며 주전으로 우뚝 섰다.

카카 영입으로 안첼로티 감독의 크리스마스트리 전술 또한 더욱 빛을 볼 수 있었다. 일명 세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투입하는 안첼로티의 크리스마스트리 전술은, 피를로를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레지스타로, 그리고 세도르프를 공수를 조율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두면서 좀 더 공격적이고 높은 곳에서 뛸 수 있는 카카를 활용해 화룡점정을 찍었다.

다만 명성 대비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2003/2004시즌에는 세리에A에서 우승했지만, 이후에는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이스탄불 참사 그리고 리아조르참사 등, 오히려 안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

Kaka Ballon d'Or 2007
이런 점에서 2006/2007시즌은 카카와 밀란 모두에 잊지 못할 시즌이었다. 직전 여름 세브첸코를 첼시에 내준 밀란은 카카를 중심으로 공격진을 재편했고, 카카 스스로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럽을 제패했다. 덕분에 카카는 2007년 발롱도르 위너로 우뚝 섰다. 이후 활약상이 나쁘진 않았지만,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밀란과의 관계도 종지부를 찍었다. 레알 이적 후 선수 스스로의 커리어도 꼬였고.

# 최근 근황은?
AC 밀란 구단 보드진 부임설 등, 여러 설이 있었지만. 일단 카카 스스로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 축구계를 떠난 상태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는 13살 연하인 모델과 재혼했다. 그리고 해당 여성의 임신 소식이 알려졌다. 카카 자신도 이전에 밀란 보드진 부임설에 대해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는 재혼 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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