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에서 가장 꾸준한 팀 중 하나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바이에른 뮌헨 다음으로 꼽히는 구단이 다름 아닌 브레멘이다. 1980/81 시즌 2부 리가로 강등된 걸 제외하면 전시즌을 분데스리가에서 보내면서 가장 오랜 기간 분데스리가에 머물고 있는 구단으로 군림하고 있다. 당연히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경기 수(1890경기, 2위는 함부르크 1866경기)를 자랑하고 있고,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분데스리가 최다 승 2위와 최다 승점 2위는 물론 최다 득점 2위도 모두 브레멘의 차지였다(지금은 도르트문트에게 밀려 3위로 주저앉았다).
주요 뉴스 | "[영상] 카타르 조직위원장 "월드컵 준비 문제 없다""
1964/65 시즌, 분데스리가 2호 챔피언(초대 챔피언은 쾰른)에 등극한 브레멘은 1970년대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결국 1979/80 시즌 분데스리가 17위와 함께 강등의 아픔을 맛보았으나 오토 대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명장 오토 레하겔의 지도 하에서 곧바로 2부 리가 1위를 차지하면서 승격한 이후 줄곧 상위권을 달리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레하겔 하에서 무려 15시즌을 보내면서 분데스리가 우승 2회(1987/88, 1992/93)와 DFB 포칼 우승 2회(1990/91, 1993/94)에 더해 DFL 슈퍼컵 3회 우승(1988, 1993, 1994)을 달성했다. 특히 1991/92 시즌엔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끌던 AS 모나코(당시 모나코엔 조지 웨아와 유리 조르카예프, 릴리앙 튀랑, 엠마누엘 프티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를 꺾고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구단 역대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레하겔이 떠나면서 잠시 주춤하던 브레멘은 유스 출신 원클럽 맨 토마스 샤프가 다시 지휘봉을 잡으면서 14시즌 동안 분데스리가 상위권을 구축했다. 특히 2002/03 시즌엔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포칼 우승도 3회(1998/99, 2003/04, 2008/09)를 달성하면서 2000년대 바이에른의 최대 대항마로 군림했던 브레멘이었다. 하지만 2008/09 시즌 UEFA 컵 결승전에서 샤흐타르에게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고, 2010년 여름에 공격 에이스 메수트 외질과 수비 에이스 페어 메르테자커가 동시에 떠나면서 브레멘의 시대는 종결됐다. 이후 브레멘은 하위권을 전전하면서 암흑기를 보내고 있고, 자연스럽게 분데스리가 2인자 자리도 도르트문트에게로 넘어갔다.
https://www.buildlineup.com/
GK 디터 부르덴스키
비록 우승은 1987/8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당시 후배인 올리버 렉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상태였다. 즉 브레멘 황금기와는 인연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1972년부터 1988년까지 무려 16시즌을 뛰면서 팀에 헌신했다. 당연히 구단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 출전(444경기)은 물론 공식 대회 최다 출전(616경기) 모두 그의 차지다. 심지어 브레멘이 강등됐을 때에도 팀에 남아서 헌신했다. 이것이 그가 브레멘 팬들의 사랑을 받은 주된 이유이다. 독일 대표팀에도 꾸준하게 차출되었으나 당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던 하랄트 슈마허에게 밀려 A매치 12경기에 만족해야 했다.
CB 호어스트-디터 회트게스
브레멘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선수. 기본적으로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였으나 리베로는 물론 왼쪽 측면 수비수까지 모두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수비수였다. '강철의 발(Eisenfuss)'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거친 태클을 구사하던 선수로 지치지 않는 활동량과 끈질긴 수비를 자랑했다. 하지만 수비에 능한 수비수라는 인식과는 달리 개인 통산 76골 20도움을 올릴 정도로 공격력도 뛰어난 편에 속했다. 1964년 브레멘에 입단하자마자 구단에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선사했고, 14시즌을 뛰면서 핵심 수비수로 오랜 기간 군림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퇴 후 브레멘 명예 주장으로 임명되는 영예를 얻었다.
CB 페어 메르테자커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만 22세의 나이에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면서 독일의 3위 등극에 크게 기여한 그는 곧바로 바이에른 뮌헨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브레멘으로 이적해왔다. 이후 그는 2011년까지 5시즌 동안 뛰면서 브레멘의 핵심 수비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나마 그가 버티고 있었기에 브레멘이 2000년대 후반부터 구장 확장으로 재정 악화에 시달리면서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가 떠나면서 곧바로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그의 가치는 수비진 전체를 조율한다는 데에 있다. 그가 있고 없고에 따라 수비에서의 안정감 자체가 달라진다.
Bundesliga Twitter
CB 루네 브라제트
노르웨이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거론되는 선수. 메르테자커의 선배격에 해당하는 리베로형 수비수로 로젠보리를 떠나 1987년 1월, 브레멘에 입단한 이후 8년 6개월 동안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다 브레멘에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실제 그가 있는 동안 브레멘은 분데스리가 우승 2회와 포칼 우승 2회에 더해 1991/92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브레멘 시절 3차례나 노르웨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1991, 1992, 1994).
RM 토어스텐 프링스
많은 이들은 프링스가 이미 독일 대표팀에서도 중심축으로 자리잡으면서 2000년대 중반 브레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중후반, 브레멘에서 분데스리가 데뷔를 가진 선수였다. 1997년, 3부 리가 구단 알레마니아 아헨을 떠나 브레멘에 입단한 그는 5시즌 동안 브레멘에서 뛰면서 중앙 수비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최전방 공격수부터 좌우 측면 미드필더와 좌우 측면 수비수에 중앙 미드필더까지). 특히 2001/02 시즌엔 6골 9도움을 올리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이 덕에 독일 대표팀에도 측면 수비수로 승선했던 프링스였다. 이후 2002년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그는 2004/05 시즌 바이에른을 거쳐 다시 브레멘으로 돌아왔다. 브레멘으로 돌아온 다음부터는 많은 축구 팬들이 기억하는 모습대로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성실한 플레이를 펼치면서 팀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브레멘에서만 무려 11시즌을 뛰면서 공식 대회 449경기에 출전해 52골 62도움을 올리면서 구단 역대 최다 도움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CM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브레멘 황금기의 플레이메이커. 1992년 여름, 브레멘에 입단하자마자 10골 12도움을 올리면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견인했고, 이에 힘입어 1992년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에를 얻었다. 3시즌 동안 브레멘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덕에 1995년 여름, 독일 최강 바이에른으로 이적했으나 철저히 실패를 맛보았고(1994/95 시즌 브레멘에서 10골 16도움을 올렸으나 바이에른에선 28경기에 출전해 2골 3도움에 그쳤다), 1년 만에 다시 브레멘으로 돌아와 재기에 성공했다. 브레멘에서 9시즌을 뛰면서 72골 83도움으로 구단 역대 최다 도움 기록자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CM 디터 아일츠
브레멘이 배출한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브레멘 유스 출신으로 1986년,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그는 2002년까지 브레멘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면서 황금기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에 걸맞게 성실한 플레이로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했기에 누구보다도 감독이 신뢰하는 선수였다. 특히 수비에 강점이 있었기에 리베로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그가 있는 동안 브레멘은 분데스리가 우승 2회와 포칼 우승 3회, 그리고 컵 위너스 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핵심 역할을 담당하면서 유로 1996 우승에 있어 마티아스 잠머와 함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공식 대회 516경기 출전으로 브레멘 구단 역대 최다 출전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요 뉴스 | "[영상] 언변의 마술사 무리뉴의 첫 기자회견"
LM 마르코 보데
아일츠와 함께 브레멘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 브레멘 원클럽맨으로 1989년 데뷔해 2002년까지 13시즌 동안 뛰면서 브레멘의 측면 공격을 책임졌다. 기본적으로는 측면 미드필더였으나 브레멘에선 최전방 공격수까지 소화할 정도로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했다. 실제 공식 대회 135골로 브레멘 구단 역대 최다 골 3위이고, 101골로 피사로에게 역전을 당하기 이전까지 브레멘 유일의 100득점 선수였다. 어시스트 부문에서도 65도움으로 헤어초크에 이어 팀내 2위다. 다만 브레멘에서와는 달리 독일 대표팀에선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밀려 측면 수비 쪽을 담당하면서 본인의 장기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현재 보데는 브레멘 사장식을 수행하고 있다.
AM 요안 미쿠
2000년대 브레멘이 자랑하는 플레이메이커. 2002년 여름, 파르마를 떠나 브레멘에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에이스로 등극한 그는 2003/04 시즌 분데스리가 32경기에 출전해 10골 8도움을 올리면서 팀에 마지막 분데스리가 우승을 선사했다. 그의 활약 덕에 브레멘은 분데스리가와 포칼 2관왕을 차지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그가 브레멘에서 뛴 기간은 4시즌으로 그리 길지 않으나 169경기에 출전해 47골 57도움을 올리면서 구단 역대 최다 도움 4위에 이름을 당당히 올리고 있다. 이후 디에구와 외질이 플레이메이커 계보를 이어나갔으나 적어도 브레멘 팬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미쿠이다.
CF 루디 펠러
브레멘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 1982년 여름, 1860 뮌헨에서 브레멘으로 이적해온 그는 5시즌을 뛰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실제 그는 브레멘에서 공식 대회 174경기에 출전해 119골(분데스리가만 놓고 보면 137경기 97골)을 넣으며 경기당 0.7골에 달하는 득점력을 자랑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1982/83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고,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물론 브레멘에서 뛴 선수 중 메수트 외질과 미로슬라브 클로제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도 있었으나 브레멘 구단으로만 국한지어놓고 보면 그보다 더 강한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는 없었다.
CF 클라우디오 피사로
브레멘의 살아있는 전설. 브레멘 공식 대회 역대 최다 골 기록(153골)은 물론 분데스리가 최다 골 기록(109골)이 모두 그의 차지다. 브레멘에서 처음 유럽 무대를 시작한 그는 바이에른 뮌헨과 첼시, 쾰른 등으로 이적했으나 다시 브레멘으로 돌아오면서(브레멘 입단만 4번을 했다) 전성기를 구가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2010년대 브레멘이 급격히 하락세를 타면서 강등권을 전전할 때도 돌아와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면서 구세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것이 그가 브레멘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주된 이유이다.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령 득점자(만 40세 7개월 15일)이자 분데스리가 역대 조커골(교체 출전 골)에선 21골로 프라이부르크 주장 닐스 페터센(22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게다가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골 6위(197골)이자 외국인 선수 최다 출전 기록을 수립하고 있는 피사로이다(바이에른+쾰른 기록까지 포함). 단순히 브레멘의 전설을 넘어 분데스리가의 전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