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스페인 발렌시아] 배시온 기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축구 박물관, 한 구단 잔디 관리사의 애정과 열정이 담겨있는 공간이다.
발렌시아 시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엔 레반테의 홈 구장 시우닫 데 발렌시아가 있다. 약 2만6000여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으로, 지역 라이벌 팀 발렌시아에 비교하면 작은 규모이다. 하지만 레반테는 1909년 창단으로 발렌시아 지역 팀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시우닫 데 발렌시아 구장을 구석구석 보면 역사의 흔적이 보인다. 100년이 넘어 중축을 진행 중인 경기장은 낡았지만 무수한 세월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구단은 그 역사를 흘러 보내지 않고 경기장 구석구석 간직하고 있다.
levante100여년간 레반테의 활약, 트로피를 진열해 놓은 복도를 지나면 그라운드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작은 경기장 좌측엔 ‘엘 라코넷(El raconet)’이라는 통로가 있다. 발렌시아어로 모서리라는 뜻이다. 이 통로로 들어가면 레반테만의 작고 비밀스러운 축구 박물관이 나온다.
비공식적인 공간이다. 레반테 인터네셔널 비즈니스 디렉터 루카 도나티에 따르면 일반 관객들에게는 개봉하지 않는 곳이지만 이번에 특별히 취재를 허락했다. 무엇이 있길래 이토록 주의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파란 페인트칠을 한 외벽을 지나 문을 열면 다락방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을 거친 수많은 유니폼, 머플러, 사진 등이 빼곡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레반테의 시즌 별 사진은 액자에, 팀을 거쳐간 선수들의 유니폼은 벤치에 놓여있다.

하지만 레반테의 것만이 아니다. 리오넬 메시, 마라도나 등 유명 선수들의 유니폼부터 2018/19시즌 UEFA챔피언스리그 리버풀과 토트넘 결승 경기 머플러까지 있다. 또한 빛 바랜 흑백 신문 기사 스크랩, 경기장 준공 과정이 담긴 흑백 사진까지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축구 박물관인 셈이다.
도대체 누가 프리메라리가의 한 구단, 레반테 홈 구장 한 쪽에 이런 공간을 꾸민 것일까? 놀랍게도 이 공간의 주인은 구단주도, 감독 혹은 선수도 아닌 구단의 잔디 관리사 라이몬 페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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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르는 잔디 관리사로 일하던 30년 전 이 곳을 만들었다. 그리고 꾸준히 축구와 관련된 것들을 수집하며 공간을 채워 나갔다. 셀 수조차 없이 무수한 유니폼, 머플러, 축구화, 사진과 기사 스크랩 등이 모두 그의 소유인 것이다. 그렇기에 곳곳에서 페레르를 상징하는 잔디 장식과 밀짚모자, 잔디 깎는 개구리 장식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30년간 꾸준히 보존된 것은 아니다. 그간 두 번의 화재로 많은 역사적인 물품들이 불에 탔다. 그렇기에 페레르는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을 개방하지 않고 관리하며 레반테 속 작은 축구 박물관을 보존하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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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구단은 페레르의 레반테, 축구에 대한 사랑을 존중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잔디를 관리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페레르 역시 여전히 잔디 및 경기장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일하는 중이다.
여기서 레반테가 발렌시아라는 명문 팀을 같은 연고에 두고도 두터운 로컬 팬층을 자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클럽의 역사, 세월을 기억하는 방법, 그리고 레반테를 사랑하는 이들과 묵묵히 함께 가는 것. 레반테가 간직한 작은 축구 박물관은 이 점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사진=배시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