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윤진만 기자=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 ‘드록神’ 또는 ‘드멘’으로 불린 디디에 드로그바(40)가 지난여름 예고한 대로 은퇴한다. 유럽 축구와 아프리카 축구계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그는 21일 “꿈을 크게 가지시라”는 말을 남기고 20년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었다. 드로그바의 커리어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원톱
드로그바는 원톱의 정의를 다시 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상대 진영에서 수비수들과 잘 싸워주고, 공을 잘 따내며, 골을 잘 넣으면 좋은 원톱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4년 첼시에 입성한 드로그바는 세 가지 능력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했다. 여기에 빠른 발, 쉴 새 없는 압박, 2선 플레이어와의 연계 플레이를 더 했다. 뤼트 판 니스텔로이 또는 앨런 시어러와 같은 유형보다는 다재다능한 드로그바와 같은 원톱이 선호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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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게임
드로그바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첼시에 머물면서 매시즌 기본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두 차례 프리미어리그 득점상도 차지했다. 그는 이 득점력을 큰 경기에서도 발휘할 줄 알았다. 4번의 FA컵 결승에서 득점한 유일한 선수이고, 서로 다른 10번의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골맛을 봤다. 2012년 첼시에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안긴 바이에른뮌헨과의 결승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은 선수도 드로그바였다. 프리미어리그와 FA컵에서 각각 4회 우승했고, 리그컵도 3회 거머쥐었다. 코트디부아르 소속으로 두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에는 실패했다.
아스널
드로그바는 빅매치에도 물론 강했다. 특히 런던 라이벌 아스널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오죽했으면 전 아스널 수비수 윌리엄 갈라스가 “공포스러웠다”고 했을까. 아스널전에 15경기 출전해 13골을 기록했다. 첼시를 떠나 미국 몬트리올 임팩트에서 활약하던 2016년 7월, MLS 올스타 일원으로 아스널과 친선경기에 나섰는데, 그날도 아스널에 고통을 줬다. 축구선수로 활동 중인 아들 아이삭은 아스널의 티에리 앙리 팬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도 못지않게 훌륭한 선수였다.
[이미지1]
F
드로그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2008-09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나왔다. 첼시는 바르셀로나와의 홈경기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통한의 실점을 하며 탈락했다. 분을 삭이지 못한 드로그바는 터널 앞에서 방송 카메라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대상은 경기 주심이었다. 편파 판정을 했다고 생각한 그는 “수치스러운 X끼”와 같은 발언을 쏟아내 결국 6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드로그바는 “시청자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선보여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설
드로그바는 첼시 뿐 아니라 코트디부아르, 나아가 아프리카 축구계의 전설이었고, 전설 현재 진행형이다. 5년 동안 지속된 전쟁을 멈춘 일화(“적어도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읍시다.”)는 너무도 유명하다. 직접 자선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의 전염병 퇴치, 의료서비스 개선에도 힘썼다. 축구선수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해온 그는 축구선수 출신으로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된 조지 웨아와 달리, 정치계에 입문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조국에 기여할 뜻을 밝혔다.
::: FACT FILE
이름 디디에 드로그바
생년월일 1978년 3월 11일 (40세)
출생지 코트디부아르
포지션 스트라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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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경력
르망 (1998~2002)
갱강 (2002~2003)
마르세유 (2003~2004)
첼시 (2004~2012)
상하이선화 (2012~2013)
갈라타사라이 (2013~2014)
첼시 (2014~2015)
몬트리올 임팩트 (2015~2016)
피닉스 라이징 (2017~2018)
대표팀 경력
코트디부아르 104경기 65골
사진=게티이미지/타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