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마크의 미친개로 불렸던 터프가이 토마스 그라베센
▲ 함부르크 거쳐 에버턴에서 좋은 기량 뽐내 / 유로 2004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 레알에서 평범했던 그라베센 이후 셀틱 거쳐 에버턴에서 2009년 1월 현역 은퇴
▲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화려한 삶. 모델 페르세와 결별 이후에는 덴마크로 건너가 축구 패널로 활약중
[골닷컴] 박문수 기자 = 탄탄한 체구를 앞세워 그라운드를 주름 잡았던 덴마크 간판 미드필더. 그렇게 레알 마드리드 입성까지.
토마스 그라베센은 2000년대 초,중반 덴마크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큰 키는 아니지만 탄탄한 체구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장기였다. 터프했고, 단단했다.
은퇴는 조금 빨랐다. 후술할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커리어가 꼬였다. 팀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적응에 실패했다. 두 시즌 만에 셀틱으로 떠났고 재기를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은퇴 후에는 성공한 사업가로 불렸지만, 다시금 축구계로 돌아와 패널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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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베센은 누구?
별명부터 남다르다. 덴마크산 미친개였다. 샬케와 유벤투스, 세비야 등에서 활약한 폴센과 함께 2000년대 초,중반 덴마크 간판 미드필더로 꼽혔다.
Pitoh기본적으로 터프했다. 활동량 좋고, 상대에 대한 압박도 상당했다. 그렇다고 마냥 투박하진 않았다. 패싱력도 준수했다. 마켈렐레의 첼시 이적 후 밸런스를 잃은 레알 마드리드가 영입하며, 이름값을 알렸지만 결국 악수였다. 레알 이적 후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팬들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셀틱을 거쳐 에버턴으로 복귀하며 도약을 노렸지만, 그렇지 못했다. 2009년 1월에는 무적 신분인 상태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33살에 은퇴했지만, 대표팀 커리어는 제법 되는 편이다. 유로 2000부터 유로 2004까지 덴마크 대표팀 일원으로 세 차례나 메이저 대회에 나섰고 66경기에 나와 5골 3도움을 기록했다.
첫 메이저 대회는 유로 2000이었다. 다만 죽음의 조에 속했던 덴마크가 3전 전패를 당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덴마크 대표팀 일원으로 전 경기 선발 출전했다. 그렇게 덴마크는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밀어내며, 세네갈과 함께 대회 16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에 0-3으로 패한 건 함정. 유로 2004에서도 활약상이 좋았다. 덴마크의 8강 진출을 도왔지만, 이번에는 체코에 0-3으로 패했다.
다만 레알 이적 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인 탓에 대표팀 커리어도 2006년 9월 이후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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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이유 그리고 근황
실력 좋은 선수였지만, 레알에서의 실패가 뼈아팠다. 후술하겠지만 호비뉴와의 난투극(?) 그리고 베컴과의 마찰 등, 여러 구설수로 더 유명했다.
은퇴는 빨랐지만, 대신 이후 잘 풀린 케이스다. 라스 베가스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성공한 행보를 보여줬다. 모델 카밀라 페르세와 공개 연애를 선언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냈다. 이후 페르세와 결별 이후에는 덴마크로 건너왔다. 현재는 패널로 변신했다.
# 그라베센 관련 TMI
미친개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 카드 수집가였다. 터프했지만 때로는 과했다. 클럽 기준으로 함부르크 시절부터 마지막 에버턴 시절까지만 해도 총 75개의 경고를 받았다. 대표팀에서는 총 11번.
레알 입단 첫 시즌, 정확히는 반 시즌간 활약했던 2004/2005시즌 비교적 무난한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2005/2006시즌에는 팀에서 겉돌기 시작하며 주로 벤치를 지켰다. 21경기나 스쿼드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 시즌 그라베센은 훈련 중 호비뉴와의 마찰로 더 유명하다. 누가 보면 한 주먹도 안 될 선수겠지만, 당시 레알은 유난히도 브라질리언과 인연이 깊었다. 호비뉴와 그라베센이 으르렁거리던 사이, 밥티스타가 호비뉴를 지켜줬다는 설은 익히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