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김현민 기자 = 리버풀이 비커리지 로드 원정에서 열린 2019/20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28라운드에서 강등권팀 왓포드에게 졸전 끝에 0-3 대패를 당하면서 무패 우승 꿈이 물거품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리버풀의 EPL 무패 행진이 44경기에서 마감됐다. 자연스럽게 리버풀의 무패 우승 도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것도 상대는 리버풀과 경기 이전까지 19위로 강등권에 위치했던 왓포드였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단순한 패배도 아닌 0-3 대패였다는 데에 있다. 리그 1위 팀이 강등권 팀에게 0-3으로 대패한 건 EPL이 설립(1992년)되기도 이전인 1985년 11월 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레스터 시티에게 0-3으로 대패한 이후 무려 3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결과만이 아닌 내용 면에서도 리버풀은 졸전을 면치 못했다. 물론 점유율에선 71대29로 리버풀이 압도했으나 이는 말 그대로 무의미한 점유율이었다. 슈팅 숫자에선 7대14로 왓포드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던 리버풀이다.
이 경기 이전까지 리버풀의 EPL 경기당 슈팅 횟수가 16회였다. 즉 시즌 평균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슈팅에 그친 셈이다. 반면 리버풀의 경기당 슈팅 허용 횟수는 9.4회였으나 이 경기에선 5회 가량을 더 허용했다. 무엇보다도 유효 슈팅 허용은 5회로 시즌 평균(2회) 대비 2.5배 이상을 내주었다. 대패는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마저도 전반 내내 슈팅은 1회 밖에 되지 않았고, 90분 풀타임 기준 유효 슈팅도 1회가 전부였다. 이렇다할 득점 찬스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셈이다. 리버풀이 위르겐 클롭 감독 체제에서 EPL 172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전반전 슈팅이 1회에 그친 건 2017년 1월 첼시와의 홈경기와 이번 왓포드전, 단 두 경기 뿐이다.
당연히 리버풀의 기대 득점(xG: Expected Goals의 약자로 슈팅 지점과 상황을 통해 예상 스코어를 산출하는 통계)은 0.2골이 전부였다. 반면 왓포드의 기대 득점은 2.73골에 달했다. 즉 기대 득점에 맞게 결과도 나왔다고 볼 수 있겠다.
리버풀의 왓포드전 부진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일단 슈르스버리와의 FA컵 이후 1달 만에 그라운드를 밟은 리버풀 중앙 수비수 데얀 로프렌이 왓포드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 트로이 디니와의 몸싸움에서 지속적으로 패하는 문제를 노출했다. 게다가 기존 리버풀 주전 수비수들도 평소와 달리 몸이 무거운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디니의 패스를 받으러 빠른 스피드로 침투해 들어가는 왓포드 측면 공격수 이스마일라 사르와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압둘라예 두쿠레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왓포드의 3골이 모두 터져나왔다. 먼저 후반 8분경, 아담 마시나의 스로인을 디니가 머리로 받아내려는 척하다 그냥 뒤로 넘겨주면서 미끼 역할을 담당했고, 이를 두쿠레가 크로스로 연결한 걸 골문 앞으로 쇄도해 들어간 사르가 발을 쭉 뻗어 선제골을 넣었다. 이어서 59분경 사이드 라인에 붙어있었던 왓포드 수비형 미드필더 윌 휴즈가 힐패스를 연결한 걸 디니가 스루 패스로 찔러주었고, 이를 받은 사르가 빠른 스피드로 치고 들어가 골키퍼 키 넘기는 슈팅으로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마지막으로 72분경 사르가 리버풀 오른쪽 측면 수비수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의 백패스를 가로채선 알리송 베케르 골키퍼를 본인쪽으로 유인한 후 패스를 내주었고, 이를 디니가 논스톱 슈팅으로 골을 추가하면서 3-0 대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3실점이 모두 리버풀 수비들의 집중력 부족과 방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선제골 장면에선 로프렌이 이전까지 디니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계속 열세를 보인 탓인지(참고로 디니는 이 경기에서 공중볼 획득 8회로 출전 선수들 중 최다를 기록했다) 지나치게 디니에게 시선이 쏠리다가 뒤에서 들어오는 두쿠레를 너무 편하게 놓아주었다. 두번째 실점에선 리버풀 선수들은 사이드라인을 넘어갔다고 지레짐작하고선 심판에게 스로인을 불러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다 역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마지막 실점은 명백한 아놀드의 실수였다.
그나마 이러한 실수들에 의한 실점은 단지 한 경기에서만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다. 로프렌은 어차피 주전 선수가 아니기도 하다. 이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공격에서도 무기력했던 데다가 리버풀 선수들의 압박 및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데에 있다.
이는 리버풀의 전력 질주 횟수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시즌 리버풀의 전력 질주 횟수는 경기당 평균 122.4회로 EPL 전체 1위에 해당했다. 클롭 감독의 '게겐프레싱(독일어로 Gegenpressing. 직역하면 역압박이라는 의미로 상대팀에게 소유권을 내주었을 시 곧바로 압박을 감행하는 강도 높은 전방 압박을 지칭)' 전술이 성립되기 위해선 스프린트는 기본 요소에 해당한다. 하지만 왓포드전 리버풀의 전력 질주 횟수는 63회로 지난 시즌 대비 반토막으로 떨어졌다. 지난 27라운드 웨스트 햄전에서 119회의 전력 질주를 기록한 것과는 사뭇 차이가 나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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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리버풀이 자랑하는 공격 삼각편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뛰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제 호베르투 피르미누(8회)와 사디오 마네(7회), 그리고 모하메드 살라(7회) 모두 전력질주 횟수에서 10회를 넘기지 못했다. 왓포드에선 두쿠레가 16회, 사르가 14회의 전력 질주를 기록하면서 리버풀의 후방을 끊임없이 침투했던 것과는 사뭇 차이가 나는 지표이다.
무엇보다도 스피드가 현격히 떨어진 모습이다. 마치 모래주머니라도 찬 듯 느리게 움직였다. 그나마 피르미누만이 최고 속도 31.26km/h로 평소 대비 살짝 떨어지는 수치를 기록했을 뿐 마네의 최고 속도는 30.03km/h로 평소 대비 3km/h 가까이 떨어졌고, 심지어 에이스 살라의 최고 속도는 30km/h에도 채 미치지 않는 모습(29.04km/h)이었다. 왓포드 공격 3인방 디니(34.90km/h)와 사르(33.47km/h), 두쿠레(32.53km/h)와는 비교하기 민망한 수치였다.
공격 3인방이 모두 부진에 빠지다 보니 당연히 리버풀은 이렇다할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슈팅은 단 2회가 전부였다. 결국 리버풀은 2019년 3월 3일 에버턴전 0-0 무승부 이후 1년 만에 EPL에서 무득점 수모를 겪어야 했다(경기 수로 따지면 36경기).
리버풀은 이번 시즌 EPL과 챔피언스 리그, 리그 컵, FA컵까지 총 4개 대회를 병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 시즌 EPL 2위 자격으로 커뮤니티 실드를 치렀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UEFA 슈퍼 컵과 FIFA 클럽 월드컵까지 소화해야 했다. 당연히 여태까지 소화한 공식 대회 경기 수가 45경기로 유럽 5대 리그(UEFA 리그 랭킹 1위부터 5위까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1부 리그가 이에 해당한다) 팀들 중 최다에 해당한다.
게다가 리버풀은 EPL 무패 우승에 도전하고 있었기에 매경기 최정예로 나서는 경향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주축 선수들의 피로는 누적이 되어갔고, 경기력도 요즘 들어 상당히 떨어지는 문제를 노출했다. 이는 최근 4경기를 돌아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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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하위 팀 노리치 시티와의 EPL 26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고전 끝에 1-0 신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선 유효 슈팅을 단 한 차례도 때리지 못하는 졸전 끝에 0-1로 패했다. 지난 27라운드에선 또 다른 강등권팀 웨스트 햄을 상대로 그것도 홈에서 1-2로 지고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즉 위험 신호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흘러 나왔던 셈이다. 이것이 이번 왓포드전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대패로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리버풀이 EPL에서 2경기 연속 2실점 이상을 허용한 건 버질 판 다이크가 팀에 입단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리버풀의 EPL 무패 도전은 끝났다. 어차피 EPL 우승은 리버풀이 9부 능선 이상을 넘어선 상태다. 남은 EPL 10경기에서 승점 12점(4승)만 올리면 자력으로 우승이 가능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리버풀은 남은 기간 동안 EPL에선 적극적으로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 주축 선수들의 체력 관리 및 부상 방지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당장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이전까지 침체된 팀 분위기와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