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인천국제공항] 서호정 기자 = K리그 복귀 불발을 뒤로 하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라리가)로 새로운 도전을 떠나는 기성용은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다. FC서울, 전북현대와의 협상 종료를 알리는 보도자료와 이후 자신의 SNS에 올린 의미심장한 문구로 느껴졌던 감정은 그가 스페인으로 출국하며 가진 약식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기성용은 2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스페인으로 출국했다. 그의 에이전트인 C2글로벌은 라리가 팀과의 계약 협상 및 메디컬 체크를 앞두고 있다고 20일 발표했다. 기성용은 출국하며 새로운 소속팀 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RCD마요르카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밤 다수 매체가 보도한 레알 베티스는 사실무근이라고 에이전트 측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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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라리가를 동경해왔다는 기성용이 30대 초반의 나이에 다시 세계 최고 무대로 향하는 데 대한 기대감과 들뜸도 있었지만 인터뷰 중반부터는 K리그 불발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기성용은 K리그 복귀 시 최우선 조건이라 믿었던 서울이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데 대한 허망함, 이후 전북 이적을 위해 추진했던 노력마저 저지되고 사실이 아닌 보도가 이어진 상황에 대한 실망감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그는 K리그 복귀 추진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여기서 다 설명드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라리가 클럽이 자신을 원할 만큼 여전히 경쟁력이 있지만 K리그 복귀를 추진했던 배경부터 설명했다. 기성용은 “나이를 먹고 K리그에 와서 은퇴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젊고 퍼포먼스에 자신 있을 때 팬들에게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스무살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른 모습이니까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줄 알았다. 다른 옵션도 있었지만 K리그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많이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K리그로 복귀한다면 당연히 서울 유니폼을 입게 될 거라 믿었던 기성용은 “거기서 데뷔를 했고, 팬들이 응원해주시고 현재도 많은 분들이 여러 격려를 보내주셨다. 너무 감사하다”라며 팬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서울에 아쉬운 부분은, 기사를 보니까 팀 구성이 완료되고 그때서야 내가 입단을 추진했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이야기다”라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로 잡아가기 시작했다.
“12월부터 서울에서 얘기를 했다. 최종적으로 코칭스태프와 상의한 뒤 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전북이라는 좋은 팀에서 내 가치를 인정해줬고, 그래서 위약금을 내지 않고 전북을 보내달라고 한 뉴스도 있었지만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 서울이 나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북행이라는 K리그에서 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위해 위약금 문제를 서울과 해결하려고 했다. 드러눕거나, 떼쓰지 않았다. 계약서는 계약서니까 존중해서 잘 해결하려 했다. 그조차도 서울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전북으로 가기도 쉽지 않았다. 2주 동안 정말 힘들었다.”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뉴캐슬에서 3~4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해서 서울은 그에 대한 의구심도 있어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팀과 협상을 해 보고 여러 감독님을 만나 봤는데 이 팀이 나를 정말 원한다는 걸 느껴야 하는데 (서울에서) 그걸 못 느꼈다. 또 속상한 것은 팩트를 넘어서 언론에 거짓된 정보가 나왔다. 마음이 힘들었다. 답답하기도 했다. K리그 팬, 특히 서울 팬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있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분명 한국으로 올 거라 생각했고 최종적으로 다 결렬이 돼 안타깝다. 팬들도 아쉽겠지만 그보다 내가 더 마음이 힘들었다.”
기성용은 서울 복귀를 위해 협상했지만 구단이 진심으로 원한다는 마음을 받지 못했고, 코칭스태프까지 거친 결정으로 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된 내용을 처음으로 밝혔다. 차선책으로 추진한 전북행도 서울이 위약금과 관련된 협상을 거부함으로써 무산됐다. K리그 불발 못지않게 이런 사실이 왜곡돼 알려진 데 대한 섭섭함도 상당해 보였다.
마음의 상처가 있지만 후일 K리그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부정적인 늬앙스였다. 기성용은 “이번에 많은 걸 느꼈다”라는 표현으로 K리그 복귀를 위한 현실적 장벽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K리그 복귀를 결심해도 결국 서울과 우선 협상, 그리고 위약금 문제를 풀어야 하는 만큼 지난 3주 동안 자신을 괴롭힌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협상을 하며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느꼈다. 돈을 좇았다면 한국에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돈의 가치보다 팬, 구단과 목적의식을 같이 하며 뭔가를 이뤄낸다는 가치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랑 다르게 비쳐졌다. 앞으로 한국에 올 지 안 올 지 모르겠다. 협상을 하며 많은 걸 느꼈다. 어떤 기회가 올 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국에 올 수 없다. 해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많은 걸 느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 지 좀 더 명확해진 부분이 있다.”
기성용이 우려하는 부분은 자신이 아닌 다른 선수들이 K리그로 돌아올 때 K리그, 그리고 구단들이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선수와 구단이 K리그 발전, 팬들을 위한 경기력이라는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청용, 구자철과 같은 또래, 그리고 유럽에 있는 다른 선수들이 K리그 복귀를 선뜻 결정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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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게 있다.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다. 소송 얘기, 위약금 얘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송 갈 생각도 없었다. 서울 구단과 원만하게 얘기해서 내가 K리그에서 많은 팬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본보기가 될 거라 봤다. 해외에서 뛰던 선수들이 K리그 돌아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그에 준하는 퍼포먼스가 안 나오면 실망할 수 있다. 금전적인 부분도 있다. 내가 걱정하는 건 선수들이 모든 걸 알고, 봤다는 것이다. 그들이 언제까지 유럽에서만 뛸 순 없다. 나이가 들고, 어느 시점에서 내려올 때가 있을 텐데 그때 선수들이 과연 K리그로 복귀하려고 하겠느냐는 걱정이 생긴다. 은퇴하기 직전이 아닌 지금 K리그에 오고 싶었던 건,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다들 은퇴하기 전 한국에서 온다는 인식이 있는데, 더 젊고 팀에 도움이 될 때 구단과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굉장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늬앙스더라. 그게 아쉽다. 구단이 여건이 안 되고,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선수에게 마음을 담아 얘기할 부분도 있는데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청용, 구자철, 그리고 K리그에서 데뷔하고 해외로 간 선수들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할 지 모르지만 썩 좋은 모습이 아니어서 아쉽고 안타깝다.”
기성용은 그런 와중에도 서울 팬들, 그리고 K리그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출국하는 공항에도 몇몇 서울 팬들과 개인 팬들이 나와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았다. 결국 기성용 사가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의 K리그 복귀를 기대했던 팬들이라는 것을 선수 자신도 느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