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은 여기에서 멈춘다'
▲ 2006 발롱도르 위너 파비오 칸나바로
▲ 21세기 기준 파르마-인터 밀란-유벤투스에서 활약(세리에A)
[골닷컴] 박문수 기자 = '공은 여기에서 멈춘다'. 2006 발롱도르 위너. 빗장수비의 상징.
파비오 칸나바로에 대한 수식어는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게 발롱도르 출신 수비수라는 칭호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칸나바로는 수비수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냈다. 그리고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됐다. 수비수의 나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유일무이한 수비수 출신 발롱도르 위너다.
물론 칸나바로의 경우 대표팀에서와 달리, 200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클럽팀에서의 활약은 조금 부족하다. 파르마 시절에는 철벽으로 불렸지만, 인테르에서는 물음표였고 유벤투스에서는 칼치오폴리 때문에 두 번의 우승이 취소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발롱도르 위너라는 타이틀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만큼 칸나바로가 이탈리아 축구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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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칸나바로는 어떤 선수?
1973년생이다. 나폴리 출신이다. 유소년팀도 나폴리였다. 이름을 알린 건 파르마 시절부터다. 파르마에서의 활약상을 무기로 월드 클래스 센터백으로 올라섰다.
수비수치고 신체조건은 좋은 편은 아니다. 대신 개인 기량이 빼어나다. 176cm지만 기본적으로 점프력이 매우 우수하다. 거기에 하드웨어 자체가 뛰어나다. 발도 빠른 편이다. 그리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무기로 상대 공격수들을 밀착 마크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네스타가 좀 더 영리한 플레이를 즐긴다면 칸나바로는 대신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어냈다. 그렇다고 영리하지 못한 건 또 아니다.
커리어 정점을 찍은 건 2006년이다. 독일 월드컵 당시 칸나바로는 아주리 군단의 캡틴으로서 후방에서부터 수비진을 진두지휘하며 이탈리아의 네 번째 월드컵 우승컵을 이끌었다. 그리고 같은 해 발롱도르 위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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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이유
가장 어려운 항목 중 하나였다. 키엘리니와 보누치 또한 지난 10년간 유벤투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한 단어로 모든 게 설명된다. 칸나바로는 발롱도르 위너다. 칸나바로까지 포함해 이탈리아 출신 발롱도르 위너는 총 5명이다. 시보리와 리베라 그리고 파울로 로시와 로베르토 바죠가 그 주인공이다. 네 명의 선수 모두 공격 자원이다. 다시 말하면 빗장 수비 상징인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수비수 출신으로 발롱도르를 거머쥔 선수가 바로 칸나바로다.
# 칸나바로 주요 커리어
칸나바로는 나폴리 출신이다. 그래서 나폴리 유소년팀에서 축구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나폴리에서 프로 데뷔했다. 당시 나폴리는 지금과 다르게 재정적으로 조금은 위태로웠다. 그래서 1995년 칸나바로는 나폴리를 떠나 파르마에 입성했다. 그리고 월드클래스 수비수로 우뚝 섰다.
참고로 당시 파르마는 베론과 크레스포를 비롯한 대형급 선수들을 대거 보유한 강팀이었다. 칸나바로의 경우 유벤투스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튀랑과 파르마 센터백으로 나섰다. 다만 당시 파르마는 포백보다는 스리백도 자주 썼다. 튀랑 그리고 칸나바로와 호흡을 맞췄던 선수 중에는 무시와 센시니가 있었다.
Getty Images파르마에서의 성공을 계기로 칸나바로는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이탈리아의 큰손 인터 밀란에 입성했다. 당시 인테르 메인 타깃은 네스타였다. 13번까지 비워둘 정도였다. 그러나 네스타가 밀란행을 택하면서, 인테르는 칸나바로를 데려왔다. 공교롭게도 인테르에서의 칸나바로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2004년 여름이었다. 인테를 떠나 유벤투스에 입성한 칸나바로는 파르마 시절 호흡을 맞췄던 부폰 그리고 튀랑과 함께 유벤투스의 후방을 책임졌다. 다만 두 번의 우승 모두 승부조작 스캔들로 취소됐다.
2006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지만,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2009년에는 유벤투스로 돌아왔고 이후 알 아흘리를 거쳐 2011년 축구화를 벗었다.
Getty Images# 은퇴 후에는?
은퇴 이후 칸나바로는 유럽이 아닌 아시아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마지막 소속팀인 알 아흘리의 수석 코치를 시작으로 광저우 헝다와 알 나스르 그리고 톈진 취안젠의 사령탑을 역임했다. 2017년에는 다시금 광저우 헝다로 복귀해 지금까지도 광저우를 이끌고 있다. 참고로 2019년 3월에는 중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지만, 단 2경기 만에 물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