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제르소골닷컴 홍재민

[홍재민] 힘 모아 때리는 인천과 ‘크로스 원툴’ 서울

[골닷컴] ‘드래곤볼’ 주인공들은 기를 모은다. 지구든 우주든 뭐든 막 모은다. 상대는 기를 모으는 동안 타격하지 않는 매너를 뽐낸다. 화염이 화르르 타오르고 나면 주인공의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상대는 “으아니??”라면서 놀라고 결국 강해진 주인공에게 얻어터진다. 흐이구, 기를 모으느라 주인공이 웅크릴 때 공격했어야지.

22일 FC서울은 ‘드래곤볼’의 상대편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인천유나이티드는 한껏 웅크렸고, 서울은 그런 상대를 연신 두들겼다. 공간을 강조하는 안익수 감독의 바람처럼 서울 공격진은 고정된 포지션 없이 열심히 돌아다녔다. 전반 17분 윌리안이 페널티킥을 얻을 때까지만 해도 서울은 인천의 수비 축구를 파괴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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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호의 페널티킥이 인천 수문장 김동헌의 팔과 크로스바를 연달아 맞고 튕겨 나왔다. 판 뒤집었으니까 인천이 전진했을까? 그런 일은 없었다. 인천은 계속 저 아래서 블록을 쌓고 기다렸다. 인천의 공격은 간단했다. 볼을 탈취하면 옴포쿠, 에르난데스, 제르소에게 빠르게 연결한다. 그리곤 뒤에서 두손 모아 ‘제발 어떻게 좀 해봐’라고 기도한다. 에르난데스는 부상에 쓰러졌지만, 제르소와 음포쿠는 ‘치달’할 때마다 서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리곤 전반전 종료 직전, 인천은 세트피스에서 선제골을 터트렸다.

인천의 로우블록은 단단했다. 땅굴을 팔 만큼 ‘로우’했고 인천 앞바다의 대형 화물선 갑판만큼 단단했다. 경기 전, 취재진에 배포되는 포메이션은 분명히 3-4-3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인천의 모양새는 5-4-1에 가까웠다. 5와 4가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웠으니 9-1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K리그 지도자들은 “작정하고 내려서서 막으면 들어갈 틈이 없다”라고 입을 모으곤 한다. 딱 그런 경기 계획이었다.

후반전 들어서도 승부의 여신은 서울을 노골적으로 외면했다. 서울의 빌드업은 하프라인을 넘자마자 멈췄다. 패스할 곳, 받아줄 사람, 빠른 연결 모두 없었다. 서울의 유일한 기회 창출 방법은 크로스였다. 한 골 앞선 인천은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볼을 빼앗는 대로 “제르소오오오오”라면서 볼을 길게 내차면 그만이었다. 제르소의 체력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인천 원정 서포터즈의 “이겼다” 연호로 가득했다.

인천은 스타일을 버리고 결과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경기 후, 조성환 감독은 “시즌 초반에 라인을 올려 전방 압박하면서 지배하는 경기를 준비했는데 그게 잘 안 먹혔다”라면서 “지난해 같은 스타일로 경기를 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웅크리고 지키다가 뛰어난 외국인 공격수의 한 방을 승리한다는 방정식은 과거 K리그의 전통처럼 인식되었다. 뛰는 선수들은 재미가 없겠지만, 승률을 높일 수 있는 특효를 지도자가 거부하긴 어렵다.

올 시즌 들어 인천의 점유율과 경기 결과는 반비례한다. 인천의 월별 점유율은 2월부터 5월까지 평균 50%를 상회했다. 4월 1일 대구전에서는 73.2%를 기록하면서 경기를 지배했다. 그런데 5월까지 인천은 3승에 그쳤다. 6월과 7월 들어서 점유율은 평균 42%로 하락했다. 7월에 치렀던 5경기 중 3경기에서 30%대 점유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 인천은 5승을 챙겼다. 스타일을 버리고 결과를 얻어야겠다는 조성환 감독의 노림수가 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말과 글로만 축구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런 플레이스타일을 ‘안티풋볼’이라고 묘사한다. 먼저 움직이지 않고 상대에 반응한다고 해서 수동적(reactive)이라고도 부린다. 하지만 결과만 잘 나오면 그런 말은 어느새 ‘끈끈한 축구’로 바뀐다. FIFA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팀들(2022년 모로코, 2014년 코스타리카 등)은 수동적 축구로 약점을 최소화해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디에고 시메오네는 ‘어둠의 마법’으로 세계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지금 인천의 선택과 결과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서울은 인천의 3연승 제물이 되었다. 시즌 초반 긍정적 축구를 구사하며 선두권을 형성했던 서울은 갈수록 힘을 잃는 모양새다. 파이널서드에서 드러나는 창의력 부족은 안익수 감독에게 큰 고민일 것이다. 새로 영입한 비욘 존슨이 얼마나 해줄지 모르겠지만, 인천전의 서울은 존슨까지 볼을 보내는 과정이 문제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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