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파서블!" 김기희, MLS 첫 코리안 더비 주인공

마지막 업데이트
Bob Frid / Vancouver Whitecaps FC

[골닷컴, 미국 뉴욕] 한만성 기자 = 북미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역사상 최초로 성사된 '코리안 더비'에서 두 한국 선수의 희비가 엇갈렸다.

황인범(22)이 활약 중인 밴쿠버 화이트캡스와 김기희(29)의 소속팀 시애틀 사운더스가 격돌했다. 두 팀이 31일(이하 한국시각) 밴쿠버의 홈구장 BC 플레이스에서 치른 2019년 시즌 MLS 4라운드 경기는 치열할 공방전 끝에 0-0 무승부로 종료됐다. 시즌 초반 3연승을 시애틀은 연승행진이 종료됐으나 3승 1무로 무패 기록을 이어갔다. 반면, 밴쿠버는 1무 3패로 아직 승리가 없다.

득점 없이 팽팽히 맞선 양 팀의 균형을 깰 뻔했던 건 황인범이었다. 그는 경기 종료를 앞둔 92분 문전 경합 상황 도중 상대 골대 바로 앞에서 슈팅 기회를 잡았다. 이 순간 황인범 주변에 시애틀 선수는 없었다. 황인범은 자신의 MLS 진출 후 첫 골이자 올 시즌 밴쿠버의 첫 승을 이 슈팅 하나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지체없이 강력한 오른발슛을 날렸다. 그러나 불과 1~2초 만에 시야에 없던 시애틀 수비수 한 명이 나타나 황인범의 슈팅을 가로막았다. 황인범이 슈팅 동작을 가져갈 때만 해도 최소 5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이 수비수가 득달같이 달려와 몸을 던져 실점이나 다름없던 상황을 막아냈다.

황인범에게는 야속하게도 그의 첫 골, 소속팀의 첫 승을 저지한 시애틀 수비수는 선배 김기희였다. 김기희는 황인범이 왼쪽 골포스트 부근에서 슈팅 기회를 잡았을 때 반대쪽 포스트에서 밴쿠버 공격수 호아퀸 아르다이스(31)를 맨마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황인범이 득점 기회를 잡게 되자 눈 깜짝할 사이에 반대쪽 포스트를 향한 슬라이드 태클로 몸을 던져 슈팅을 차단했다.

코리안 더비의 마지막 순간에 연출된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슈팅을 저지당한 황인범은 슬라이드 태클을 시도한 김기희의 몸에 걸려 쓰러졌고, 로버트 시비가 주심은 즉시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이어 시비가 주심은 김기희에게 옐로우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그는 곧 판정 확인을 위해 비디오 판독(VAR)에 나섰다. 확인 결과 시비가 주심은 김기희의 태클이 공을 먼저 건드렸고, 이후 발생한 그와 황인범의 접촉은 파울을 선언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VAR 확인 후 페널티 킥 판정과 김기희의 경고는 나란히 취소되며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김기희는 경기가 끝난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황인범과의 경합 상황에 대해 "태클이 들어갈 때 볼을 먼저 막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페널티 킥이 선언됐을 때도 내가 항의를 하기도 전에 동료들이 먼저 주심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해줬다. 주심도 결국 VAR을 보고 판정을 번복했다. 이 판정 하나로 승부가 결정된다는 사실 때문에 초조함은 있었다"고 말했다.

# 시애틀에서 김기희가 얻은 새 별명…"KIMpossible"

김기희가 황인범의 슈팅을 막아낸 수비 장면이 담긴 영상은 경기가 끝난 후 트위터, 레딧, 페이스북 등을 통해 퍼지며 현지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시애틀 팬들은 팀을 첫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낸 김기희를 칭송했고, 그의 호수비에 첫 승을 놓친 밴쿠버 팬들은 실망감을 내비쳤다.

이 중 가장 눈에 띈 반응은 골이나 다름없는 황인범의 슈팅을 막아낸 김기희를 가리킨 한 시애틀 팬이 그에게 붙여준 'Kimpossible'이란 별명이다. 이는 '킴파서블'은 상대의 득점을 저지한 김기희의 영문 이름(Kim Kee-hee)과 '불가능'을 뜻하는 단어 '임파서블(Impossible)'을 결합한 합성어다. 김기희가 막아서면 상대의 득점이 불가능하다는 뜻에서 팬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 외에도 시애틀 팬들은 "오늘의 맨 오브 더 매치(최우수 선수)", "김기희를 영입해줘서 구단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다", "어메이징 김(Amazing Kim)!"이라며 열광했다.

# '코리안 더비'를 리그 역사의 한 순간으로 여기는 MLS

사실 이날 MLS의 첫 코리안 더비를 앞두고 국내보다는 오히려 북미(캐나다, 미국) 언론이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황인범의 소속팀 밴쿠버는 이날 경기 전부터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각종 컨텐츠를 통해 지난 1996년 출범한 MLS 역사상 최초로 두 한국 선수가 맞대결을 펼치게 된 사실을 조명했다.

Korean Derby MLS

[사진] 밴쿠버가 지난 31일 MLS 역사상 최초의 코리안 더비를 앞두고 구단 홈페이지에 게재한 경기 광고. 밴쿠버 구단 홈페이지에 코드 'KOREA'를 입력한 후 이날 경기 티켓을 구매한 팬들에게는 입장권 할인 혜택과 한국인 응원석에서 황인범과 김기희를 응원할 기회가 주어졌다.

황인범의 득점이나 다름없는 슈팅을 막아낸 김기희 또한 경기 후 "축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백이면 백 골을 먹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니라 우리팀 누구라도 그때 내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내가 막은 선수가 (황)인범이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어 김기희는 "과거 MLS에서 홍명보 감독님, 이영표 선배님이 뛴 적이 있다. 그러나 두 한국 선수가 한 MLS 경기에서 같이 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인범이는 더 잘해서 한국, 아시아 축구를 세계에 더 잘 알렸으면 한다"며 피치 위에서는 자신과 치열하게 싸운 후배에게 덕담을 건넸다.

황인범도 MLS 역사상 처음으로 성사된 코리안 더비의 상징성에 대해 한마디를 보탰다. 그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에서도 김기희 선배님과는 아직 같이 뛰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K리그에서는 상대로 만나봤다. 김기희 선배님은 수비, 피지컬 능력이 강하다. 장점이 많은 선수다. MLS의 첫 코리안 더비인 만큼 나 또한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인범은 팀 성적과는 별개로 밴쿠버 이적 후 자신의 경기력이 찬사를 받고 있는 데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여기서 나는 외국인 선수이자 DP(샐러리캡 대상자에서 제외된 지정 선수) 신분이다. 나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게는 경기 결과를 가져와야 할 책임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Canada Express

[사진] 약 일주일간 MLS 코리안 더비를 광고한 캐나다 밴쿠버 지역 일간지 '캐나다 익스프레스(Canada Express)'

# MLS는 더 많은 한국인 선수를 원한다

MLS 연맹 공식 홈페이지, 밴쿠버 구단 홈페이지 등은 황인범과 김기희의 맞대결을 앞두고 리그 역사상 첫 코리안 더비가 성사됐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MLS 홈페이지는 "(밴쿠버의 홈구장) BC 플레이스에서 리그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며, "밴쿠버와 시애틀의 캐스캐디아 지역 라이벌전 외에도 MLS 역사상 처음으로 두 한국인 선수가 맞붙게 됐다"고 보도했다.

밴쿠버 구단 홈페이지 또한 "지난 1996년 출범한 MLS에서 첫 번째 코리안 더비가 성사됐다"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MLS 연맹과 밴쿠버 구단 측이 동시에 나타낸 의문점은 "왜 그동안 MLS가 더 많은 한국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나?"였다. 심지어 밴쿠버 구단은 코리안 더비 프리뷰 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MLS에 진출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올해로 23년자 리그로 성장한 MLS는 지난달 A매치 기간에 무려 80명이 넘는 선수가 미국과 캐나다는 아르헨티나, 폴란드, 한국 등 총 31개국 대표팀에 차출돼 활약했을 정도로 '글로벌 리그'로 발돋움하고 있다. MLS는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도 유연하다. 북미 축구 관계자와 언론은 이런 이점을 활용해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더 많은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크 도스 산토스 밴쿠버 감독은 최근 현지 언론을 통해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한국과 일본 선수들에게 본받을 점이 있다. 그들은 헌신적이고, 규칙을 어기는 법이 없다. 그들은 늘 온 힘을 다하는 데다 에너지가 넘친다. 그들의 국가대표팀 경기만 봐도 이런 점이 경기력에 고스란히 잘 드러난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선수들만 존재하는 팀을 이끌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가 지난 2~3월 밴쿠버의 프리시즌 현장 취재 중 만난 도스 산토스 감독은 당시에도 사석에서 "한국에서는 우리가 황인범을 영입한 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은 뒤, "우리는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축구를 대하는 한국 선수들의 태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Hwang In-beom

[사진] 홈에서 열린 코리안 더비를 맞아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는 황인범.

# MLS, 작년에는 이승우 영입도 시도했었다

실제로 밴쿠버, 시애틀를 제외한 타 MLS 구단도 그동안 물밑에서 한국 선수 영입을 시도해왔다. 특히 한국인 이민자가 대거 거주하는 LA, 뉴욕 지역 MLS 구단은 경기력 향상은 물론 연고지 밀착을 취지로 한국 선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황인범 또한 밴쿠버 이적이 확정되기 직전까지 LAFC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 이민자 인구가 10만이 넘는 LA를 연고로 하는 LAFC의 선수단 운영을 책임지는 인물은 존 토링턴 단장이다. 토링턴 단장은 현역 시절 2011년과 2012년 밴쿠버에서 이영표 KBS 해설위원과 함께 활약했다. 그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황인범 영입을 추진했고, 이를 두고 옛 동료 이영표 위원과 접촉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토링턴 단장은 LAFC가 DP 선수 한도(MLS는 팀당 DP를 3명으로 제한한다)를 이미 다 채운 상태였던 탓에 영입을 포기해야 했다.

LAFC는 올 초 영입을 시도한 황인범 외에도 이승우(21)에게도 관심을 나타냈었다. 국내 언론에 알려진 소식에 따르면 당시 LA의 또다른 MLS 구단 LA 갤럭시도 지난 2017년 여름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적을 추진하던 이승우 영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럽 무대에서 도전을 원한 이승우는 헬라스 베로나 이적을 택하며 MLS 진출을 보류했다.

이 외에도 몇몇 MLS 구단이 한국 선수 영입을 타진하며 자국 축구 통계 전문업체와 접촉해 K리그, 한국 대표팀 분석 자료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예전부터 심심찮게 들려왔다. 현재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인 베테랑 기성용(30), 이청용(30), 구자철(30) 또한 모두 현재 수많은 MLS 구단의 영입 '위시 리스트'에 포함된 상태다.

밴쿠버 구단 홈페이지가 게재한 지난 31일 코리안 더비 프리뷰 기사의 제목은 "황인범의 활약이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을 MLS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였다. 이를 통해 밴쿠버 구단 전문기자 파르한 데비는 "한국에서 선수가 '엘리트'로 성장하는 방법은 크게 나눠 세 가지 경로가 있다. 황인범처럼 10대의 어린 나이에 바로 기량을 인정받고 K리그에 데뷔하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이영표처럼 대학무대를 거쳐 프로가 되는 방법이다. 한국은 정서적으로 운동 선수라도 대학 진학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손흥민처럼 아예 어린 나이에 해외로 나가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MLS 측은 어린 나이에 K리그에서 가능성을 인정한 20대 초반 선수, 혹은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 진출했으나 미국행에 흥미를 느낀 선수를 영입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 즐라탄 멀티골, 루니 1골 1도움, 벨라 해트트릭

약 2주 만에 부상에서 복귀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7)는 포틀랜트 팀버스를 상대로 페널티 킥을 두 차례나 얻어냈고, 이를 모두 자신이 직접 성공시키며 소속팀 LA 갤럭시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그는 후반 상대 수비 두 명 사이로 파고드는 드리블 돌파 후 골키퍼에게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 킥을 유도해내는 노련미까지 선보였다. 이어 그는 양 팀이 1-1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얻어낸 페널티 를 페넨카 킥으로 처리하며 골망을 갈랐다.

또한, 올랜도에서는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함께 활약한 루이스 나니(32)와 웨인 루니(33)가 맞대결을 펼쳤다. 이날 두 선수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건 루니였다. 루니는 경기 시작 6분 만에 스티븐 빈바움의 골을 도운 데 이어 30분에는 자신이 직접 득점하며 1골 1도움을 기록했고, DC 유나이티드는 2-1로 승리했다. 나니는 선발 출전했으나 78분 교체 아웃됐다.

LAFC의 간판스타 카를로스 벨라(30)는 이날 해트트릭은 물론 1도움까지 추가하며 올 시즌 5경기 6골 3도움으로 MVP 후보다운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 외에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34), 바카리 사냐(36)는 나란히 이번 라운드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 31일~1일 MLS 경기 결과

토론토 4-0 뉴욕 시티
시카고 1-0 뉴욕 RB(슈바인슈타이거 풀타임)
뉴잉글랜드 2-1 미네소타
스포르팅KC 7-1 몬트리올(사냐 풀타임)
산호세 0-5 LAFC(벨라 해트트릭, 1도움)

신시내티 0-2 필라델피아
콜럼버스 2-0 아틀란타
콜로라도 1-4 휴스턴
솔트 레이크 2-4 달라스
밴쿠버 0-0 시애틀(코리안 더비 성사)
올랜도 1-2 DC 유나이티드(루니 1골 1도움)
LA 갤럭시 2-1 포틀랜드(즐라탄 2골)

4라운드 6경기 평균 관중: 1만8498명
올 시즌 현재 리그 평균 관중: 2만25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