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is Hernandez MexicoMONICA M. DAVEY

[GOAL LIVE] 20년 전 韓 무릎 꿇린 금발 공격수와의 재회

[골닷컴, 미국 텍사스주 할톰 시티] 한만성 기자 = 루이스 아르투로 에르난데스. 매서운 눈매로 긴 금발 머리를 찰랑이던 그는 20년 전 프랑스 리옹에서 한국 축구를 피눈물 흘리게 한 장본인이다.

한국과 멕시코가 오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F조에 편성되는 순간, 수많은 국내 축구 팬들은 20년 전 프랑스 리옹에서의 가슴아픈 승부를 떠올렸을 것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벨기에, 멕시코와 함께 E조에 편성된 한국은 아시아 최종예선을 압도하며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 감독이 이끈 당시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사상 첫 월드컵 1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당시 한국이 1승 제물로 삼은 팀은 첫 경기 상대 멕시코. 실제로 한국은 경기 시작 27분 만에 하석주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꿈에 그린 '월드컵에서의 1승'에 가까워지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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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에 닿을 것만 같았던 '1승'의 꿈은 악몽이 돼 돌아왔다. 선제골의 주인공 하석주는 득점 후 3분 만에 백태클로 퇴장을 당했고, 한국은 가까스로 1-0 리드를 지키며 전반전을 마쳤으나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결국, 멕시코는 후반 시작 5분 만에 리카르도 펠라에스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어 에르난데스가 75분과 84분 연속골을 터뜨려 멕시코의 대역전극을 연출해냈다.

Luis Hernandez MexicoGetty Images

당시 한국이 선제골을 지켜 멕시코를 잡았다면, 오늘날 두 팀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끝내 멕시코에 패하며 또 4년 뒤를 기약해야 했다. 반면 한국을 꺾으며 사기가 오른 멕시코는 벨기에, 네덜란드와 나란히 2-2로 비기며 16강에 올랐다. 에르난데스는 한국전에 이어 네덜란드전에서는 멕시코가 1-2로 뒤진 추가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팀의 16강행을 이끌었다. 독일과의 16강전에서도 한 골을 추가한 그는 멕시코 축구 역사상 월드컵 최다 득점자로 역사에 남아 있다. 멕시코는 그 덕분에 현재까지 월드컵 6회 연속 16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이 멕시코와 월드컵 본선에서 20년 만의 재대결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7일, '골닷컴 코리아'는 에르난데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에르난데스는 멕시코와 크로아티아의 평가전이 열리는 미국 텍사스주를 방문하던 도중 '골닷컴 코리아'와 만났다. 그는 여전히 한국의 러시아 월드컵 F조 상대국 멕시코가 배출한 최고의 골잡이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어느덧 만 49세가 된 에르난데스는 '골닷컴 코리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멕시코가 세계 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는 비결, 20년 전 한국전,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지난 한국과 멕시코 축구의 오늘을 얘기했다.

골닷컴: 멕시코는 유럽이나 남미가 아닌 대륙의 나라 중 월드컵에서 가장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는 팀이다. 그러나 대다수 아시아, 북중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국가에게는 유럽이나 남미 국가와 꾸준히 경쟁할 기회가 없어 FIFA 랭킹조차 올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타 대륙 국가가 멕시코처럼 국제무대에서 경쟁력를 발휘하려면 어떤 준비부터 하는 게 좋을까?

에르난데스: 곧 월드컵에서 우리(멕시코)를 상대해야 할 팀한테 그런 것까지 알려줄 수는 없다(웃음)! 한국 축구는 계속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일단 한국은 매번 월드컵에 출전하는 나라다. 그렇게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는 건 나라 전체의 축구를 발전하게 할 만한 기회가 꾸준히 주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통해 조금씩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처럼 월드컵에 계속 진출한다는 건, 이미 이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국 대표팀이 발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선수들도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골닷컴: 1998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넣은 두 골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그때 한국전 두 골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

에르난데스: 당연히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국전은 여전히 내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 월드컵을 떠올리면 여전히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쁘다. 한국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이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우리 팀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두 골을 넣으며 멕시코 전체가 자신감을 얻어 16강까지 갈 수 있었다. 당시 기분은 당연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골닷컴: 20년 전 당시 한국과 멕시코 축구 사이에는 분명히 간격이 있었다. 그러나 1998년 이후 한국은 성인 월드컵은 아니지만 연령별 월드컵, 올림픽 등에서 멕시코를 만나 곧잘 이기기도 했다. 두 팀간 격차가 20년 전과 비교할 때 좁아졌다고 보는가?

에르난데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본다. 한국 선수들은 그때보다 운동 신경이 더 좋아진 것 같다. 게다가 이제 그들은 예전과 달리 공격으로 뻗어나가는 축구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국제무대에 대비하는 자세도 발전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기술강국이라면 축구 대표팀도 그만큼 더 가파르게 성장한다. 지금 나는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을 포함해 예전에 내가 봤던 팀들이 그때와는 다른 축구, 더 긍정적인 축구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건 내게도 대단한 기분이다.

골닷컴: 멕시코는 월드컵에서 6회 연속으로 16강에 오르는 업적을 세웠다. 그 비결이 궁금하다. 동시에 6회 연속으로 16강에 오르면서도 한 끗 차이로 8강에는 오르지 못한 원인이 있다면? 과거 당신이 뛴 멕시코와 오늘의 멕시코를 비교해달라.

에르난데스: 그때 멕시코와 지금 멕시코를 비교대상으로 삼는 건 무리다. 그당시 우리가 물려준 멕시코 대표팀의 좋은 점을 젊은 선수들이 그대로 물려받고, 반대로 과거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의 멕시코 대표팀은 예전보다 더 젊어졌다. 이 젊은 선수들은 당시 나와 달리 유럽에서 뛰고 있다. 그들에게는 더 좋은 월드컵을 치를 만한 경험과 능력이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우리가 16강에 오르고도 그 자리에 머무르다 보니 이미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선수들이 예전의 우리에게는 없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멕시코 대표팀의 문화와 태도를 한층 끌어 올려줘야 한다.

골닷컴: 멕시코 내에서는 과거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달성한 카를로스 벨라,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 등이 아직 젋은 나이에 유럽을 떠나 거액 연봉을 주는 미국 MLS로 가는 데 비판이 많다고 들었다. 중국, 중동 등으로 이적하는 많은 한국 선수들도 비슷한 비판을 받는다. 당신도 지난 2000년 멕시코 강팀 티그레스에서 활약하다가 LA 갤럭시로 이적했었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에르난데스: 프로 선수, 그것도 국가대표라면 비판은 언제나 따라오는 게 아닐까? 젊은 선수들이 유럽이 아닌 타 대륙으로 가는 것 또한 그들이 가진 직업의 생태계일 뿐이다. 팬들이 이런 점을 이해해줘야 할 필요는 있다. 게다가 카를로스 벨라와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는 큰 환대를 받으며 미국으로 이적했다. 이제 그 안에서 좋은 축구를 해야 하는 게 그들의 몫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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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멕시코의 열정적인 축구 팬들을 보면, 그들이 생각하는 월드컵은 정말 특별한 대회라는 생각이 든다. 멕시코에게 월드컵이란 어떤 존재인가?

에르난데스: 월드컵이 멕시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설명해주겠다. 멕시코에게 월드컵이란 희망이자, 행복이다. 멕시코 사람에게 월드컵이란 나라를 응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희망과 행복을 얻게 되는 기회라는 뜻이다. 우리는 월드컵에 나가는 멕시코 대표팀을 위해 전 세계 어디까지 따라갈 준비가 돼 있다. 멕시코 대표팀이 있는 곳이라면, 멕시코 국민들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문화가 계속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월드컵에서 우리가 성적을 내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월드컵에 출전한 멕시코를 응원하는 것, 그 자체가 멕시코에게는 희망이자 행복이다.

골닷컴: 당신이 생각하는 '멕시코 축구'란? 멕시코 축구의 스타일, 철학을 설명해달라.

에르난데스: 나는 멕시코 축구를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표현하고 싶다. 멕시코에게 축구는 곧 결속력을 의미한다. 우리 대표팀의 최대 장점도 이런 응집력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유럽이나 남미의 몇몇 팀처럼 '슈퍼스타' 선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팀이 있다. 서로 연대하기를 바라는 선수들이 그 팀을 만든다. 그 팀 안에 있는 선수들과 팬들 사이의 유대감은 매우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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