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 감독골닷컴 홍재민

[GOAL 현장인터뷰] 김기동은 오늘도 뼈를 갉아 새우 몸집을 키운다

[골닷컴=베트남] 김기동 감독은 항상 싱싱하다. 에너지가 느껴진다.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면서 하하 웃는다. 주위에선 칭찬이 쏟아진다. 그러다가 한 시즌의 문이 닫히면 얼굴이 굳는다. 한숨이 나오고 다음 시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육중한 고민이 밀려든다.

2023년 1월 포항스틸러스는 베트남 하노이에 있다. 많은 K리그 구단이 선택한 태국과 달리 하노이의 1월 날씨는 낮 기온이 20~25도로 알맞게 유지된다. 미리 섭외했던 훈련장을 갑자기 사용할 수 없는 변수가 발생했는데, 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해결사로 나섰다. 사정을 접한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국가대표팀 전용 훈련장을 포항에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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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항의 프레시즌 패턴은 뻔하다. 에이스가 갑자기 사라진다. 감독은 마음이 잘 통하는 베테랑과 함께 넋두리한다.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은 김기동식 체력 훈련에 혀를 내두른다. 첫 프로계약자들은 ‘쎈 세상’에서 눈치 보기 바쁘다. 그 와중에 주축들은 포항 축구의 자존심을 연료로 사용한다. 김기동 감독은 이번에도 “뼈를 갉고 있다”라고 말한다. 달력과 장소만 달라질 뿐, 2019년부터 시작된 ‘김기동의 포항’은 늘 그랬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지 않으려면 새우가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말이 생각난다.

Q: 높은 목표를 잡을 수 있는 국내외 클럽에서 제안도 받았을 텐데 포항과 재계약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해달라.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팀에서 나를 선택해준다면 고려해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구단에서 조금 더 투자해서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선수를 데려오게 해달라는 간접적인 요구이기도 했다. 나는 포항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서 명예의 전당에 오른 13명 중 한 명이다. 항상 포항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애정을 품고 있다. 감독으로서 4년을 지냈다. 좀 더 이 팀에 대한 축구, 내 축구를 정립하고 여기서 뭔가 하나라도 더 얻어내고 싶다.

Q: 유혹이 많을 텐데?

하하, 솔직히 많이 있었다. 올림픽 대표팀 제안도 있었고, 다른 클럽에서도 있었다.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선뜻 지금 상황에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고 축구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올해 선수들과 ‘우리라고 해서 K리그 우승하지 말라는 법 있느냐. 목표를 좀 더 높이 잡아보자’라고 얘기했다. 선수 시절, 유공에서 포항으로 돌아갈 때도 명분을 좀 더 찾았다. 감독으로서도 비슷하다. 명분이 중요하다.

Q: 감독으로서 제일 해보고 싶은 축구가 있다면?

모든 감독이 스페인이나 맨체스터시티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좋은 스쿼드가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나는 큰 틀만 잡아놓고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약간 리버풀에 가까운 형태인 것 같다. 모든 선수가 공격하고 수비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뛴다. 그런 팀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특정 선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축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Q: 감독의 생각이 코치와 다를 때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항상 코치의 의견을 물어본다. 임상협을 예로 들면, 영상을 아무리 봐도 위치가 너무 안 좋았다. ‘내가 보기엔 선수가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식으로 코치들에게 물어본다. 코치들도 각자 의견을 낸다. 연습경기 때 그 자리에서 뛰게 해보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또 뛰게 해본다. 그런 다음에 다시 미팅에서 의견을 모아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Q: 감독 혼자 준비하고 판단하면 버겁지 않은가?

첫 2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다 했다. 정말 너무 힘들더라. 죽을 것 같았다. 2021년부터 분석관, 코치들에게 영상을 보고 각자 생각을 내게 제출하는 식으로 했다. 그러면 나는 내 생각과 대조하면서 정리했다. 그러고 나선 비교적 편해졌다. 첫 2년 동안은 훈련할 때도 내가 뛰어다니고 내가 시범도 직접 다 했다. 2021년부터는 훈련 전 미팅에서 계획을 전달하고 수석코치에게 맡겨도 본다. 중간에 포인트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 않으면 내가 잠깐 들어가서 설명한 다음에 나와서 다시 지켜보는 식으로 하고 있다.

Q: 구단 예산이 늘어나 코칭스태프 분야에도 투자가 이루어지면 도움이 될까?

코치나 나나 외국에 나가서 훈련을 보는데 바깥에서만 지켜보는 수준이다. 그래서 외국의 정말 좋은 코치들을 초빙해서 많은 걸 배워보고 싶다. 외국인 코치를 데려와서 퀄리티를 높이고 싶은 마음은 있다.

Q: K리그 감독을 하면서 뭔가 새롭게 배울 시간적 여유가 있는가?

솔직히 거의 없다. 유럽 축구를 보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시즌 때는 불가능하다. 우리 영상뿐 아니라 상대 영상까지 보고 난 다음에 훈련 계획을 세워야 한다. 휴가 때나 A매치 기간 때 아니면 다른 축구 영상을 보기가 어렵다. 그나마 팀 성적이 안 좋으면 생각할 여유가 없어져 그러기도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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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유럽 리그, 카타르월드컵 등에서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팀을 꼽자면?

글쎄, 축구는 힘들다. 아르헨티나가 결승전까지 갈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때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서 변수가 많다. 조별리그부터 프랑스가 시원시원했다. 빠른 선수들이 있으니까 축구가 ‘익사이팅’했다. 팬들은 그런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우리 선수들에게 항상 빠르게 앞으로 가서 해결하는 방법을 주문한다.

Q: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은 봤는가?

우리끼리 내기를 했다. 나는 아르헨티나에 걸었다. 실력만 봐서는 프랑스가 이기겠지만, 아르헨티나는 결승 진출 자체가 리오넬 메시에게 우승을 선물을 주자는 뜻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진짜 아르헨티나가 우승하더라. 와 진짜, 하하.

Q: 그 결승전도 승부차기였다. 연습하면 승부차기 승률이 높아질까?

답이 없는 것 같다. 경기 전일 훈련에서 골키퍼 없이 승부차기를 연습하는 팀도 있다고 들었다. 골키퍼도 동료이니까 서로 잘 안다. 내가 원하는 코스로 찼는데 골키퍼가 먼저 움직여 막아버리면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골키퍼 없이 키커가 원하는 곳으로 자신 있게 차서 자신감을 키우는 목적이다. 그래도 승부차기는 심리 싸움이다. 승률을 높이는 연습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상대의 킥 방향은 미리 파악한다. 누가 페널티킥을 몇 번 찼는지, 어느 방향으로 차서 성공률이 어땠는지 등을 데이터로 뽑은 다음에 선수들에게 영상까지 다 보여준다.

Q: 감독의 촉이나 감도 심리적 부분인데, 감독을 하면 할수록 그런 부분도 좋아지는가?

촉이 늘어난다는 느낌은 없지만, 경기 흐름에서 시야는 확실히 넓어지는 것 같다. 선수 교체 타이밍 등이다. 동해안 더비에서 2-1로 역전시켰을 때, 내가 막판에 22세 선수 두 명을 넣었다. 이호재가 헤딩한 걸 노경호가 때려서 역전골을 넣었다(*). 경기 흐름에 따라서 나온 과감한 선택 사례였다. (Q: 그럴 때 감독 기분은 진짜 좋을 것 같다.) 그림 보지 않았는가? 셀러브레이션하다가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다, 하하. (* 2022년 9월 11일, K리그1 31라운드 울산 1-2 포항 / 90+3분 노경호 2-1 득점)

Q: 감독으로서 가장 큰 꿈이 있다면?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매년 팀을 위해 노력했다. 내가 팀에 있는 한, 좋은 스쿼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냈다. 우승에 대한 열망은 항상 있다. 포항에서 꼭 우승해보고 싶다. 희열을 느끼고 싶다. (홍: FIFA월드컵은?) 그건 모든 감독의 꿈 아닐까? 과정에서 목표를 이루면서 그곳까지 간다고 생각한다. 발전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면 그런 기회도 장차 오지 않을까?

Q: 포항이 잘한다고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가, 아니면 ‘나 정말 힘들어 죽겠다’라는 기분인가?

딱 그 기분이다 하하. 지금 뼈를 갉아서 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선수들에게 ‘나랑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너의 가치를 높여라. 포항에서 안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보내주겠다. 그 대신에 여기서 성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가 없다. 좋은 결과를 내면 너희는 분명히 더 좋은 팀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구단에 얘기해도 위쪽에서 돈이 내려오지 않으면 사실 어렵다. 주어진 상황에서 정말 뼈를 갉아서 하고 있다.

Q: 보는 눈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단 어린 선수들 중에는 내 픽(pick)이 많지 않다. 어린 선수를 보고 관찰하는 스카우트가 담당하고, 나는 특징 있는 선수를 뽑아달라고 요청만 한다. 예를 들어, 프로에서 뛰는 미드필더 중에서 기술 나쁜 선수가 어디 있는가. 볼을 못 차도 빠르거나, 느리지만 기술이 워낙 좋아서 볼을 빼앗기지 않고 연결해주거나, 그런 특징이 있어야 한다. 나이가 있는 선수들은 축구가 정립되어 있다. 내가 바꾸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그 선수가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하고, 그게 나와 맞으면 선택한다.

Q: 본인의 혜안에 자부심이 들었던 케이스가 있었다면?

우리는 젊은 선수를 뽑지 못한다. 이적료가 발생하니까, 하하. 자유계약, 나이 든 선수들이 주로 온다. 신진호는 사실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내가 구단에 부탁해서 어렵게 데려왔다. 모든 작업이 끝난 상황에서 내가 구단에 요청해서 데려왔다. 임상협은 본인이 포항에 오고 싶다고 얘기했다. 다른 팀도 얘기가 있었지만, 연봉을 줄여서라도 포항에 오고 싶다고 했다.

Q: 신진호는 아쉬운 결과가 나왔는데?

올해까지 계약이 되어있었다. 시즌 중에 재계약 이야기를 하든가, 올해까지 잘하면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린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니까 솔직히 나도 힘들다. 내가 어느 정도 중재해보려고도 했는데, 선수가 워낙 강하게 말했다. 나라고 마음 편하겠는가? 선수 스쿼드가 전부 끝난 상태였다. 이렇게 될 거면 내가 이수빈을 보내는 일도 없었다. 신진호, 오베르단(신규 영입), 이승모, 이수빈까지 있으면 솔직히 나는 좋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4명이 있으면 한 명은 엔트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선수로서 죽어버린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매년 벌어진다, 하하. 2021년 시작하는데 강상우 떠난다고 했고, 2020년에는 중간에 송민규가 그냥 가버리고, 와 정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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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럴 때 넋두리할 말벗은 있는가?

선수들, 하하, 주장들. 매일 방으로 한 명씩 불러서 ‘이렇게 됐다, 이놈들아’라면서, 하하. 밥 먹으면서도 얘기하고, 차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고. 그런 얘기를 하면 선수들도 재미있어한다. 신광훈은 나와 선수 생활을 같이했었다. 김승대도 편하고. (홍: 김승대는 특히 얘기가 잘 통할 것 같은데?) 그렇다. 잘 통한다. 이제 결혼하고 애까지 나오니까. 오늘도 ‘감독님,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아요. 그래도 참아내야죠’라고 하더라. 옆에 있던 심상민이 ‘와, 그건 가장의 무게에요, 아니면 주장의 무게에요?’라면서 놀렸다. 많이 바뀌었다.

Q: 그래서, 올 시즌은 어떨 것 같은가?

항상 힘들다. 지금도 뜻하지 않게 선수 구성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아쉽다. 훈련하는 선수들 태도, 분위기는 의욕이 보인다.(홍: 올해는 ACL이 정상 개최된다) 그렇다. ACL은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ACL을 나가야 아시아 전역에서 선수를 보면서 상품 가치를 판정한다. 거기서 인정받으면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런 쪽으로 동기부여를 시킨다. ACL 출전은 짐 싸는 것부터 힘들다. 더블스쿼드가 나오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우리가 혜택을 본 부분도 있다. 한곳에서 모여서 했으니까. 이동했다면 힘들 수 있었다.

Q: ’올해도 포항은 잘하겠지, 뭐’라고 생각하시는 많은 팬께 한 마디 부탁드린다.

항상 포항 축구를 좋아해 주시고 사랑, 기대해주시는 팬들께 감사드린다. 팬 눈높이를 맞추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와, 김기동 감독도 힘들겠구나’라는 생각도 한번쯤 해주셨으면 좋겠다, 하하. 올해도 좋은 축구를 보여드리려고 훈련 열심히 하고 있다. 좋은 성적과 결과로 여러분들 찾아뵙겠다.

* 2023시즌 포항 첫 경기 = 2월 26일(일) 오후 2시, 포항 vs 대구

글, 사진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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