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번

[GOAL 특별기획] (4) 1994, 칸토나의 쿵푸킥과 블랙번의 전설

[골닷컴 이성모 기자] 전세계 210개국에서 시청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콘텐츠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가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출범 25주년을 맞이했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이 ‘GOAL 특별기획’ 연재를 통해 현재의 EPL을 더 풍부하게 즐기는데 도움이 될만한 지난 25년 EPL의 중요한 흐름과 사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1994/95시즌, EPL은 피치 안팎에서 이어진 많은 논란속에 진행됐다. EPL 원년인 1992년 이후로 리그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맨유에는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쿵푸킥’ 사건이 있었고, 경기장 밖에서는 유명 선수의 알코올 중독 고백, 감독과 에이전트 간의 뇌물 사건 등 잉글랜드 축구팬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그 많은 일들이 진행되는 사이, 우승을 위해 경쟁한 팀은 지난 시즌 우승팀 맨유와 2위팀 블랙번이었다. 리그 최종전까지 이어진 두 팀의 경쟁은 결국 최종라운드 후반전 추가 시간에야 극적으로 결론이 났다.

블랙번

1. 블랙번 출신 사업가 잭 워커의 투자와 블랙번의 비상

앞선 2, 3편에서 살펴봤듯 맨유는 EPL 출범 초기 칸토나의 영입과 함께 리그 최강자로 올라섰다. 이 시기 맨유와 리그에서 경쟁했던 팀들 중에는 노리치, 아스톤 빌라 등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맨유에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던 것은 1993/94시즌 리그 2위를 기록했던 블랙번이었다.

블랙번은 1888년 세계 최초의 축구리그인 ‘풋볼리그’ 원년 창설멤버 중 하나인 유서깊은 구단이었지만 1913/14시즌 우승 이후 80년 이상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채 1970/80년대를 2, 3부 리그에서 전전하고 있었다.

그런 블랙번에 터닝포인트가 찾아온 것은 1991년, 블랙번 출신 사업가 잭 워커가 구단을 인수하며 거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부터였다. 자신의 고향팀을 잉글랜드 최고의 팀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품은 그는 리버풀 레전드 케니 달글리쉬 감독을 영입하고,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유망주 공격수이자 맨유의 퍼거슨 감독도 영입을 시도했던 앨런 시어러를 당시 영국 최고 이적료에 영입한다. 1993/94시즌, 노리치의 크리스 서튼이 맹활약하자 그를 블랙번으로 데려오면서 블랙번에 ‘SAS’(Shearer and Sutton) 파트너를 구성한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블랙번은 1993/94시즌 한 때 맨유를 승점 3점까지 추격하는 등 진지하게 우승을 넘봤으나 결국 우승에 실패했고, 1994/95시즌은 시즌 초반부터 두 팀 간의 경쟁으로 이어졌다.

2. ‘49골’ SAS 파트너의 맹활약과 칸토나의 쿵푸킥

직전 시즌 각각 31골, 25골로 득점왕 순위 2, 3위에 올랐던 시어러와 서튼의 투톱은 시즌 초반부터 불을 뿜어댔다. 이 시즌 블랙번의 리그 첫 골의 주인공은 시어러였고(1라운드 vs 사우스햄튼) 그 골을 어시스트한 것이 다름 아닌 서튼이었다.(그 이전에 주장 팀 셔우드의 패스가 있었다) 그리고 서튼은 3라운드 만에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홈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선수는 이 시즌 둘을 합해 49골을 합작하며 훗날까지 기억되는 전설적인 투톱 콤비로 남게 된다.

한편, 지난 두 시즌 맨유의 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에릭 칸토나는 다른 의미에서 전설적인 장면을 탄생시켰다. 시즌이 중반으로 접어들던 무렵인 1995년 1월의 일이다.

1995년 1월 22일, 맨유는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던 블랙번을 홈으로 불러들여 칸토나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면서 양팀의 승점 차이를 2점 차이로 줄였다. 이보다 조금 앞서 맨유는 지난 시즌 리그 득점왕이었던 앤디 콜을 뉴캐슬로부터 영입하며 블랙번을 제치고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1월 25일, 크리스탈 팰리스의 홈 셀허스트 파크 원정 경기 도중 칸토나는 상대 수비수리차드 쇼를 걷어찼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하고 홈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도중 돌연 관중석에 있던 한 관중에 날라차기를 날린 후에 주먹까지 휘두르며 완전히 자제력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경악스러운 장면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칸토나의 쿵푸킥’ 사건이다.  

이후 칸토나는 잉글랜드 FA로부터 8개월 출전 정지를 당하게 되고 이는 리그 3연패를 노리던 맨유에 치명타가 되고 만다. 이후, 그 사건이 있기 전 맨유에 합류했던 앤디 콜이 크리스탈 팰리스전 바로 다음 리그 경기부터 골을 터뜨리고 특히 입스위치 타운과의 홈 경기에서는 홀로 5골을 터뜨리며 팀의 9-0 승리를 이끄는 등 괴력을 발휘하지만 공격의 핵심이었던 칸토나를 잃은 맨유는 칸토나가 없이 치른 경기 중 5경기를 무득점으로 비기거나 패하면서 귀한 승점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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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즌 최종전, 안필드에서 결정된 블랙번 81년 만의 우승    

결국 리버풀 레전드 달글리쉬 감독이 이끌고 시어러와 서튼, 그리고 팀 셔우드가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블랙번과 칸토나 없이 앤디 콜과 기존의 선수들이 분전했던 맨유의 리그 우승 경쟁은 이 시즌 최종전에서 결정나게 됐다.

리그 마지막 한 경기를 앞두고 양팀의 승점은 블랙번 89, 맨유 87. 양팀의 최종 경기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우승팀이 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더욱 극적이었던 것은, 블랙번의 최종전이 리버풀 원정이었다는 것. 리버풀의 ‘킹’ 달글리쉬 감독이 이끄는 블랙번은 안필드 원정에서 맨유를 넘어 우승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블랙번은 리버풀 원정에서 시어러의 선제골로 앞서가고도 두 골을 내주며 패배를 기록하고 만다. 특히 후반전 추가 시간에 제이미 레드납(현 스카이스포츠 해설가)에 프리킥 추가골을 허용한 것이 뼈아팠다. 만약, 같은 시간 열린 리그 최종전에서 맨유가 승리한다면 달글리쉬 감독의 블랙번과 리버풀은 그들의 ‘합작’으로 맨유에 우승을 내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맨유 역시 최종전에서 1-1 무승부에 그치며 단 ‘한 골’만 더 기록했다면 역전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맨유로서는 만약 칸토나의 쿵푸킥으로 그가 시즌 후반기 전체를 결장하는 일이 없었다면, 이 시즌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됐을지를 두고두고 아쉬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승점 88(블랙번은 89), 골득실 +49(블랙번은 +41)을 기록한 맨유는 이 시즌 우승을 차지하는데 정말로 단 한 골이 부족했다. (만약 이 시즌 맨유가 리그 우승을 했다면, 그들은 초유의 리그 5년 연속 우승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참고로 맨유의 최종라운드 상대는 웨스트햄이었다. 웨스트햄은 이후에도 리그 최종전에서 토트넘의 발목을 잡으며 아스널이 리그 4위(토트넘은 5위)를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팀이 된다. (유명한 ‘라자냐 게이트’ 사건이 그것으로, 그는 해당 시즌에서 자세히 소개하겠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속에 달글리쉬 감독의 블랙번은 달글리쉬 감독이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활약했던 안필드에서 맨유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는 소식에 기쁨의 축제를 벌이게 됐다. 이 시즌 블랙번의 우승은 무려 81년 만의 리그 우승이었다.

1994/95시즌, 우승 팀 외 주요 선수들

1993년, 리버풀 1군에 데뷔해서 데뷔 초기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고 훗날 리버풀 팬들로부터 ‘신’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게 되는 로비 파울러가 1994/95시즌부터 재능을 만개하게 된다. 그는 이 시즌 리그에서만 25골을 기록한 것을 포함해서 이 시즌 리버풀이 가진 57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1995년 리버풀의 리그컵 우승에 기여하게 된다.(리버풀 2 – 1 볼튼. 리버풀의 두 골은 모두 스티브 맥마나만이 기록)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환상적인 터닝골을 성공시켰던 위르겐 클린스만은 월드컵 직후 AS 모나코를 떠나 토트넘으로 이적한다. 그는 토트넘 입단 당시 잉글랜드 팬들로부터 ‘다이버’(그가 플레이도중 다이빙을 잘 한다는 뜻으로 생긴 별명)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자신의 토트넘 데뷔전이었던 셰필드 웬즈데이전에서 골을 터뜨린 직후 스스로 다이빙을 하는 세리머니를 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후 토트넘에서 셰링엄과 함께 멋진 호흡을 보여주며 여전히 프리미어릭에서 활약한 최고의 외국인 공격수들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 한 명 이 시즌 좋은 활약을 한 선수 중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는 지난 두 시즌에도 득점랭킹 상위에 올랐고 이 시즌에도 20골을 터뜨린 사우샘프턴의 매튜 르 티시에다. 그는 이 시즌 20골을 터뜨린 것 뿐 아니라 1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어시스트 1위에 올랐다.(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기록 기준)

1994/95시즌, 프리미어리그 외 주요 사항

1. 조지 그레엄 감독의 뇌물 스캔들과 경질

선수로서 아스널의 더블을 경험했고(1970/71시즌), 감독으로서 2차례의 리그 우승, 2차례의 리그컵 우승과 1차례의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 1차례의 FA컵 우승 등을 이끌었던 조지 그레엄 감독이 이 시즌 중 뇌물 스캔들(현지에서는 ‘bung’ scandal이라고 부르는)에 휘말리며 아스널 감독직에서 경질됐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은 그레엄 감독이 아스널 감독으로 일부 외국인 선수들의 아스널 영입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그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국 팀을 떠나게 됐다. 이후 많은 논란이 이어졌지만, 이 사건은 당시 그가 아스널에서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던 중에 터진 사건이라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레엄 감독이 떠난 직후, 아스널의 데이비드 딘 부회장은 AS 모나코 감독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아르센 벵거를 아스널의 새 감독으로 추천한다. 비록 당시까지 외국인(비영국인) 감독을 임명한 적이 없던 아스널이 그 제안을 물리치고 볼튼을 이끌던 브루스 리오치 감독을 선임하게 되지만, 그로부터 한 시즌 후 결국 벵거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레엄 감독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아스널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2. 폴 머슨의 음주중독 고백

이 시즌 중, 아스널 미드필더 폴 머슨이 자신이 심각한 음주중독에 빠졌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폴 머슨이라는 선수만이 그런 문제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초반 프리미어리그에 그런 문화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3. 머지사이드의 컵 우승

이 시즌 리그 우승은 블랙번에 돌아갔지만, FA컵과 리그컵의 우승 트로피는 머지사이드의 두 팀 에버튼(FA컵)과 리버풀(리그컵)에 각각 돌아갔다.

특히 이 시즌 에버튼의 FA컵 우승은 현재까지 에버튼이 거둔 가장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으며, 결승전에서 0-1로 에버튼에 패한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처음 ‘무관’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참고문헌 및 영상 자료


Complete History of British Football 150 years of season by season action (The Telegraph)
The Mixer, The Story of Premier League Tactics from Route One to False Nines (Michael Cox)
오피셜 프리미어리그 1994/95시즌 리뷰 비디오
오피셜 블랙번 1994/95시즌 리뷰 비디오
오피셜 맨유 1994/95시즌 리뷰 비디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맨유, 블랙번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그래픽=골닷컴 박성재 디자이너
글=골닷컴 이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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