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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 특별기획] (3) 1993, 로이 킨의 입단과 맨유의 더블

[골닷컴 이성모 기자] 전세계 210개국에서 시청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콘텐츠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가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출범 25주년을 맞이했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이 ‘GOAL 특별기획’ 연재를 통해 현재의 EPL을 더 풍부하게 즐기는데 도움이 될만한 지난 25년 EPL의 중요한 흐름과 사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프리미어리그의 첫 시즌이었던 1992/93시즌, 새로 영입한 에릭 칸토나와 마크 휴즈, 스티브 브루스를 비롯한 기존 선수들의 맹활약 속에 퍼거슨의 맨유는 26년 만의 리그 우승을 거뒀다.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퍼거슨 감독은 맨유 역대 최다 이적료를 지불하고 1980년대 맨유를 지탱했던 ‘캡틴’ 브라이언 롭슨의 후계자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이후 10여 년 간 맨유 중원을 책임지게 되는 그 남자의 이름은 로이 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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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이 킨 맨유 역대 최다이적료로 맨유 이적

앞선 1992/93시즌 칸토나의 영입으로 팀 전체의 운명을 바꾼 퍼거슨 감독은 새 시즌을 앞두고 많은 선수를 영입하지 않은 채 새 시즌을 시작했다. 그에겐 이미 주전 자리를 꿰찬 라이언 긱스를 필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맨유가 직접 키워낸 유소년팀 선수들(스콜스, 베컴, 네빌 형제 등 ‘클래스 오브 92’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당시의 유소년팀 소속 선수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과 맨유는 많은 선수를 영입하는 대신 한 선수를 영입하는데 당시까지 맨유 역대 최다이적료(약 375만 파운드)를 투자했다. 당시 맨유의 고민은 이미 36세가 된 팀의 주장이자 미드필더인 브라이언 롭슨의 대체자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지난 시즌 소속팀이 강등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영플레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렸던 젊은 미드필더를 올드 트래포드로 데려온다.

그렇게 맨유 유니폼을 입게 되는 선수가 훗날 맨유 주장이 되는 로이 킨이다. 처음 그가 맨유 유니폼을 입을 당시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으나 이 영입은 곧 지난 시즌 칸토나의 영입과 더불어 또 하나의 대성공으로 귀결이 난다.

2. 맨유의 독주와 블랙번의 맹추격

그렇게 시작된 새 시즌, 맨유는 5라운드까지 리버풀 아스널과 1~3위의 선두권을 형성하며 리그 2연패를 향해 순조로운 출발을 한다. 지난 시즌 맹활약했던 긱스는 팀의 리그 첫 골의 주인공이 됐고 킨은 2라운드에서 선제골을 포함 두 골을 터뜨리며 일찍부터 맨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리그가 중반에 다다랐던 17라운드에는 이미 맨유가 2위권 팀들보다 승점 14점을 앞서며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대로 싱겁게 맨유의 2년 연속 우승이 확정되는 것 같던 시즌은 두가지 요소에 의해 한 때 리그 2위 팀 블랙번이 승점 3점까지 쫓아오는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즌 후반기에 들어 거친 몸싸움 끝에 상대 선수의 가슴을 밟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이어가던 칸토나가 5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것이 한가지, 리버풀 레전드 달글리쉬 감독이 이끌고 시어러가 뛰고 있던 블랙번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사를 보였던 것이 또 한 가지였다. 이후 1위 맨유, 2위 블랙번 두 팀이 이 해 4월에 가진 맞대결에서 맨유는 시어러에게 두 골을 내주며 0-2로 패하고 만다.

그 후로 칸토나의 복귀 속에 맨유가 분위기를 다시 찾으며 리그 우승을 확정 짓게 되지만, 맨유와 블랙번의 경쟁은 그 다음 시즌에 또 한 번 이어지게 된다.

3. ‘올 해의 선수’ 칸토나와 맨유의 더블 달성

시즌 후반기 5경기에서 돌아온 칸토나는 맨체스터 더비의 상대인 맨시티 전에서 홀로 두 골을 터뜨리며 복귀하자마자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칸토나가 복귀한 후 맨유는 남은 5경기에서 4승 1무를 기록했고 칸토나는 5경기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 시즌 종료 후 선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다.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맨유는 1994년 5월 14일, 글렌 호들 감독의 부임 속에 FA컵 결승까지 올라온 첼시를 맞아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더블’에 도전하게 된다. 양팀은 전반전을 0-0으로 마쳤고 후반전 20분까지도 득점없는 경기를 이어갔으나 이후 터진 칸토나의 두 골, 휴즈와 맥클레어의 골까지 더해 4-0 완승을 거두며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서 맨유는 토트넘(1960/61 : 빌 니콜슨 감독), 아스널(1970/71 : 버티 미 감독), 리버풀(1985/86 : 케니 달글리쉬 감독)에 이어 20세기 잉글랜드에서 네 번째로 더블(잉글랜드 축구계에서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더블로 보고 위 세 팀 모두 그러한 경우다)을 차지한 팀이 됐다. 19세기까지 합하면 6번째 더블이었다.(1888/89의 프레스턴, 1896/97의 아스톤 빌라)

한편, 이 시즌 맨유는 리그컵에서도 결승에 진출해 마크 휴즈가 골을 터뜨렸지만 아스톤 빌라에 세 골을 내주며 준우승에 그쳤다. 맨유로서는 자국 리그 트레블을 달성할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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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4시즌, 우승 팀 외 주요 선수들

이 시즌, 잉글랜드 축구계를 제패한 팀은 맨유였지만 선수로서 가장 압도적인 활약을 한 선수는뉴캐슬의 앤디 콜이었다. 그는 이 시즌 뉴캐슬에서 리그에서만 34골 1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모두 차지했다. 모든 대회를 통틀어 이 시즌 그는 41골을 기록했다.

앤디 콜 이외에도 특히 눈여겨볼 선수는 2위에 오른 앨런 시어러와 공동 3위를 기록한 크리스 서튼이다. 이 시즌 노리치에서 활약했던 서튼은 다음 시즌 블랙번으로 이적해서 시어러와 함께 ‘원조 SAS 라인’으로 불리는 투톱을 이루며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최전방 공격수가 아님에도 리그에서만 25골을 터뜨렸던 사우스햄튼의 매튜 르 티시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아름다운 플레이와 수시로 터뜨리는 원더골로 사우스햄튼 팬들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선수들이 가장 존경하는 미드필더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사비 역시 가장 존경하는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매튜 르 티시에를 뽑은 바 있다.

1993/94시즌, 프리미어리그 외 주요 사항

1) ‘철의 포백’ 아스널 최소 실점(21실점) +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

이 시즌 프리미어리그 팀들 중 최소 실점(21실점)을 기록하며 4위에 올랐던 아스널이 컵 위너스 컵 결승에서 파르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골의 주인공은 앨런 스미스(과거 리즈, 맨유에서 뛰었던 선수와 동명이인이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에 레스터와 아스널에서 활약했고 아스널에서 뛰며 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던 레전드 공격수), 결승전 스코어는 당시 아스널의 많은 경기가 그랬듯 ‘1-0’이었다. 이 컵 위너스 컵 대회 우승은 현재까지 아스널의 가장 마지막 유럽 대회 우승으로 남아있다.

조지 그레엄 감독의 지휘 아래 윈터번, 아담스, 보울드, 딕슨으로 이어지는 ‘철의 포백’을 자랑했던 아스널은 수비지향적인 ‘지루한’ 축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일단 한 번 앞서 나가면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를 지켜내는 효율적인 축구를 했다. 그 덕분에 그레엄 감독 시절 아스널은 1992/93시즌 FA컵, 리그컵 우승의 경우에서 보듯 컵 대회에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 글렌 호들 감독의 첼시 부임과 첼시 개혁의 시작

이 시즌 첼시를 FA컵 결승까지 이끈 글렌 호들 감독은 첼시 공식 홈페이지로부터 첼시의 1990년대 개혁을 이끈 감독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첼시가 1990년대 매 시즌 리그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거두고 각종 컵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호들 감독의 후임자인 굴리트, 비알리 감독의 대에서 이뤄진 일들이었지만 그 변화를 시작한 것은 호들 감독이었으며 실제로 굴리트를 첼시로 영입한 것 자체가 호들 감독이었다.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 전체에서 널리 인정받던 선수인 호들, 굴리트의 첼시 입성은 첼시라는 구단 자체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고 이후로 첼시는 졸라, 비알리, 디 마테오 등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프리미어리그의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올라선다.

이후, 2003년에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EPL 구단들 중 첼시를 선택한 것 역시 호들로부터 시작한 개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 맨유를 명문으로 만든 주인공, 버즈비 감독의 별세

1950년대, ‘버즈비의 아이들’로 불리는 선수들을 이끌고 맨유라는 구단을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클럽 중 하나로 만들어낸 주인공인 맷 버즈비 감독이 이 시즌 중 별세했다. 향년 84세.

버즈비 감독은 맨유에 있어 단순히 우승 트로피를 안겨준 감독일 뿐 아니라, ‘뮌헨 참사’로 자신이 키워낸 선수들 중 다수가 사망하는 비극을 겪고 자신 역시 생사를 오고가는 사투를 벌였음에도 돌아와 그 후로 약 10년 만에 조지 베스트, 보비 찰튼, 데니스 로를 중심으로 한 맨유의 1968년 유로피언컵 우승팀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쓴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 1968년 맨유의 유로피언컵 우승은 잉글랜드 클럽이 처음으로 유로피언컵에서 거둔 우승이었으며, 그것은 곧 맨유라는 구단을 넘어 10년 넘도록 유럽 최고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잉글랜드 축구팬들 전체의 자부심이었다.

지금도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 앞에는 버즈비 감독의 동상과, 그와 함께 1968년 유로피언컵 우승을 이끌었던 세 선수의 동상(베스트, 찰튼, 로)이 서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버즈비 감독이 없었다면 이미 스코틀랜드에서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널리 인정 받으며 아스널 등 많은 클럽의 구애를 받았던 퍼거슨 감독이 맨유의 감독이 되는 일도, 그래서 오늘날 맨유가 잉글랜드 역사상 최다 1부 리그 우승팀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및 영상 자료

Complete History of British Football 150 years of season by season action (The Telegraph)

The Mixer, The Story of Premier League Tactics from Route One to False Nines (Michael Cox)

오피셜 프리미어리그 1993/94시즌 리뷰 비디오

오피셜 맨유 1993/94시즌 리뷰 비디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맨유, 첼시,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그래픽=골닷컴 박성재 디자이너

글=골닷컴 이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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