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soo바야흐로 방학, 그리고 여행의 계절이다. 유럽 축구의 경우 비시즌 기간이기도 하다. 축구를 찾아 유럽 곳곳을 누빈 이범수 에디터가 골닷컴을 통해 [GOAL 축구여행]을 연재한다. 이 여름, 한국 축구팬들의 축구 여행 길라잡이가 되길 빈다.(편집자 주)
[골닷컴 이범수 에디터] 이탈리아 북부의 대표 도시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다. 그리고 이 곳의 축구는 이에 못지 않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한다.
세계 패션과 이탈리아 금융의 중심지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다. 거대한 국제 공항이 있는 밀라노는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여행의 관문 중 하나로 꼽힌다.
Bumsoo밀라노는 모던한 감각과 역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밀라노에 가면 ‘밀라노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밀라노 대성당,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쇼핑몰 엠마뉴엘레 2세 갤러리아 등 다양한 관광지가 여행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관광객이라면 AC 밀란과 인터 밀란의 홈구장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산 시로)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두 축구 팀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명문 클럽으로 전세계 축구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는 밀라노에 위치한 초대형 축구 전용 경기장이다.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과 인터 밀란이 오랫동안 이 경기장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1926년 개장한 이 경기장에서는 두 차례의 월드컵 경기(1934, 1990 월드컵)가 펼쳐졌으며, 네 차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다. (유러피언 컵 포함). 2015/16 시즌에는 이 곳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의 이전 이름은 산 시로였다. 그러나 1980년에 이탈리아의 축구 영웅 주세페 메아차를기리기 위해 명칭을 변경했다. 주세페 메아차는 이탈리아의 두 차례 월드컵 우승을 이끈 선수다. (1934, 1938 월드컵). 메아차는 AC 밀란과 인터 밀란 두 팀에서 모두 뛰기도 했지만 인터 밀란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AC 밀란의 팬들은 이를 거부하고 아직까지 이 경기장을 산 시로라고 부른다. 비록 경기장의 공식 명칭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지만 편의에 따라 보다 더 글자수가 적은 산 시로가 더 많이 쓰이기도 한다.
산 시로는 1926년부터 AC 밀란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산 시로는 AC 밀란의 회장 피에로 피렐리의 도움으로 완공 되었다. 경기장은 1935년 시 의회에 팔리기 전까지 구단의 소유였다. 이후 1947년부터는 인터 밀란이 이 경기장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함께 경기장을 사용하고 있다.
(11.1) AC 밀란

* 팀명: 아소시아지오네 칼치오 밀란
* 창단년도: 1899
* 스타디움: 산 시로
* 주소: Piazzale Angelo Moratti, 20151 Milano MI, Italy
* 감독: 빈첸조 몬텔라
* 주요 선수: 지안루이지 돈나룸마, 안드레아 콘티, 리카르도 몬톨리보, 이그나치오 아바테, 레오나르도 보누치 (이탈리아), 카를로스 바카, 크리스티안 자파타 (콜롬비아), 프랑크 케시에 (코트디부아르), 히카르도 로드리게스 (스위스)
밀란은 현재까지 총 7회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 (12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우승 횟수다. 이처럼 밀란은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펼치는 팀이다.
밀란의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1962/63 시즌이다. 밀란은 결승에서 에우제비우가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벤피카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당시 밀란은 체사레 말디니,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지아니 리베라 등 쟁쟁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밀란은 1980년대 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회장으로 부임한 후부터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대 축구의 근간을 만들어낸 아리고 사키 감독이 있었다.
사키 감독은 팀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사키의 밀란은 선수 전원이 하나가 되어 공격과 수비의 과정에 모든 선수가 가담했다. 또한 수비 시에는 지역 방어와 압박을 적절히 사용하여 공간을 지배했다. ‘혁명가’ 사키 감독의 밀란은 유럽을 장악했다. 그는 ‘오렌지 삼총사’와 함께 두 차례의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렸다. (1988/89, 1989/90 시즌).
이후 밀란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지휘 하에 활약을 이어나갔다. 카펠로 감독은 네 차례의 리그 우승과 한 차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1993/94 시즌). 2000년대 초반에는 안첼로티 감독이 팀을 맡아 두 차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2/03, 2006/07 시즌).
하지만 현재의 밀란은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몇 시즌간 밀란은 과거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여름, 리용홍 신임 회장의 주도 하에 적극적인 선수 영입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산 시로에서 열린 밀란과 나폴리의 경기를 관전했다. 산 시로 스타디움은 8만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어서 티켓을 수월히 구할 수 있었다. 티켓 가격은 25유로 (한화 약 3만 3천원)이었다. 이는 일부 잉글랜드 2부리그 경기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시 나폴리는 막강한 화력을 뿜고 있었다. 나폴리는 12월과 1월에, 인테르를 상대로 3대 0 승리를 거뒀고, 칼리아리와 토리노를 상대로는 다섯 골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화력을 과시했다. 밀란 역시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나폴리를 만났다.
경기가 시작되자 나폴리는 카예혼, 메르텐스, 인시녜가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밀란을 괴롭혔다. 밀란은 추스를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나폴리의 공격을 마주했다. 당시 최상의 공격력을 자랑하던 나폴리는 눈이 즐거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조르지뉴, 알란, 함식으로부터 시작되는 빠른 역습은 밀란의 수비를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득점은 매우 이른 시간에 나왔다. 전반 6분, 수비지역에서 볼을 탈취한 나폴리는 한 번에 카예혼이 있는 측면으로 공을 전달했다. 카예혼은 경기장 반대 측면에 있는 인시녜에게 와이드하게 연결했고, 인시녜는 지체 없이 슈팅을 하여 골을 만들어냈다. 수비지역부터 득점을 만들어내기까지 단 8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 앉아있었던 나폴리의 팬들은 이에 열광했고, 밀란의 팬들을 도발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리의 추가골이 나왔다. 전반 9분, 메르텐스가 두 명의 수비를 가로지르는 쓰루패스를 성공시켰고, 이를 이어 받은 카예혼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카예혼의 추가골이 나오자 장내는 술렁였다. 대패의 기운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나폴리는 이후에도 수 차례 밀란의 골문을 위협했다.
Bumsoo밀란은 거센 공격을 막아내어 위기를 극복하고, 전반 37분에는 추격골을 넣었다. 상대의 호흡 미스를 통해 기회를 얻은 밀란의 유라이 쿠츠카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쿠츠카는 고전하던 밀란에게 희망의 불씨를 댕겼다. 밀란의 팬들도 열광했다. 일부 팬들은 2층 난간에 올라 득점 순간을 만끽하는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후반전에도 양 팀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나폴리의 공격은 골키퍼 돈나룸마에 의해 제지되었고, 밀란의 공격은 골대를 맞았다. 경기는 2대 1 나폴리 승리로 끝났다. 밀란은 나폴리전 이후 5위에서 7위로 떨어졌고, 6위로 시즌을 마쳤다.
(11.2) 인터 밀란
Bumsoo* 팀명: 풋볼 클럽 인테르나지오날레 밀라노
* 창단년도: 1908
* 스타디움: 주세페 메아차
* 주소: Piazzale Angelo Moratti, 20151 Milano MI, Italy
*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
* 주요 선수: 안토니오 칸드레바, 안드레아 라노키아, 다닐로 담브로시오 (이탈리아), 이반 페리시치 (크로아티아), 사미르 한다노비치 (슬로베니아), 밀란 스키니아르 (슬로바키아), 마우로 이카르디 (아르헨티나), 스테판 요베티치 (몬테네그로), 나가토모 유토 (일본), 개리 메델 (칠레), 주앙 마리오 (포르투갈), 주앙 미란다 (브라질)
인터 밀란은 1908년 AC 밀란의 자국민 보호 정책에 반발하여 설립되었다. 인터 밀란은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tional 의 이탈리아어)’라는 구단 이름처럼, 세계의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받아들이겠다는 목표 하에 창단했다.
외국인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는 인터 밀란의 철학은 당시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어울릴 수 없었다.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인터 밀란은 이 시기에 강제적인 합병과 팀 명칭의 변경을 요구 받았고,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나 팬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인테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시기에 주세페 메아차는 인테르의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다. 메아차는 30년대 말에 팀의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컵 우승을 이끌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터 밀란은 본연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카테나치오’로 명성을 날리던 1960년대는 인터 밀란의 전성기로 여겨진다. 인터 밀란은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하에 유럽 무대를 휩쓸었다. 그는 팀의 주장 아르만도 피치를 스위퍼로 기용하여 수비 전술을 완성시켰다. 이외에도 과학적인 선수단 관리와 적절한 동기부여를 통해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인터 밀란은 2회 연속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리며 (1963/64, 1964/65 시즌) 황금기를 맞이했다.
또한 만치니와 무리뉴 감독이 재임한 시기도 인터밀란의 전성기로 불린다. 이 시기에 인터 밀란은 세리에 A 연속 우승 기록을 세워나갔고, 2009/10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이후 리빌딩에 실패하고, 재정적 페어 플레이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으며 부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스팔레티 감독이 새롭게 부임한 올 시즌은 출발이 좋다. 프리시즌에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서 리옹, 뮌헨, 첼시를 꺾고 3연승을 기록하며 다가올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주세페 메아차 스티다움으로 가는 대표적인 방법은 지하철이다. (20분 소요). 긴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으나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동행할 경우 시간을 따로 내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다. 그러나 밀라노 시내에는 이를 달래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밀라노 시내 중심에 있는 산 바빌라역 인근에는 AC 밀란, 인터 밀란의 공식 스토어가 있다. 이 곳에서 경기장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시내에 위치한 메가 스토어에는 많은 사람이 찾았다. 특히 두 스토어가 매우 가까이 있어서 시간적 부담이 없다. 이 두 팀의 매장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있다. 시내에 위치한 두 팀의 매장은 유럽 내 다른 팀들의 매장과 비교했을 때에도 매우 큰 규모였다. 방문 당시에는 인터 밀란보다 AC 밀란의 메가 스토어에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렸다.
Bumsoo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들 근처에 유벤투스의 메가 스토어도 있다는 점이다. 비록 토리노에 위치한 스토어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여행 일정으로 인해 토리노에 들르지 못하는 유벤투스의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연고지 외의 지역에 메가 스토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주세페 메아차 (산 시로)에서는 경기가 없는 날에는 박물관과 스타디움 투어를 제공한다. 가격은 17유로(한화 약 2만 3천원)다. 이 곳에서는 두 팀의 드레싱 룸, 벤치, 터널 등을 경험 할 수 있으며, 박물관을 통해 두 팀의 역사를 공부 할 수 있다.
Bumsoo이외에도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50분을 가면 베르가모에 도착할 수 있다. 베르가모는 지난 시즌 돌풍의 팀 아탈란타 BC의 연고지다. 특히 유럽 내 이동 시 베르가모를 통해 밀라노에 가는 경우가 가끔 있다.
Bumsoo베르가모 시내에는 아탈란타의 메가 스토어가 있으며, 버스를 타고 15분을 더 가면 아탈란타의 홈구장 스타디오 아틀레티 아주리 디 이탈리아를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베르가모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산 위의 도시 시타 알타는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베르가모를 통해 밀라노에 올 경우, 아탈란타 BC의 홈 경기 일정을 확인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